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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곽명동 기자]한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탐정은 셜록 홈즈일 것이다. 베네딕트 컴버배치의 ‘셜록’ 시리즈와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설록 홈즈’ 1, 2편은 흥행에도 성공했다. 그가 즐겨 사용하는 추리기법은 ‘가추법’이다. 가추법은 법칙(대전제)과 결과(결론)를 이용하여 사례(소전제)를 만들어낸다. 홈즈는 소매가 반들반들해진 여자를 보고 타이피스트라고 추리한다. 발소리만 들어도 레스트레이드 경감을 알아챈다. 경감이 어떻게 알았냐고 묻자, 홈즈(베네딕터 컴버배치)는 “발걸음이 명확하고 규칙적이었거든”이라고 답한다. 그는 치밀한 논리와 과학 수사로 대중을 사로 잡았다.
반면, 홈즈보다 40년 후에 등장한 포와로(케네스 브래너)는 ‘안락 의자형’ 추리 스타일을 선호한다. 용의자들의 말투, 식습관, 행동 양식을 파악하고 그 안에서 누구도 짐작하지 못한 사건의 결정적 단서를 찾아낸다. 용의선상에 오른 인물에게 질문을 던지고 반응을 살펴가며 추리를 완성한다. ‘오리엔트 특급살인’에서도 알 수 있듯, 그는 마지막에 모든 용의자들을 모아놓고 자신의 추리를 하나 둘씩 입증하며 범인을 색출한다. 기차, 유람선 등 폐쇄된 공간에서 여러 명의 용의자 가운데 누가 범인인지를 찾아내는 과정이 짜릿한 긴장감을 유발한다. ‘나이브스 아웃’ 역시 포와로 탐정 스타일의 ‘후더닛’(범인은 누구인가) 장르로 인기를 끌었다.
아가사 크리스티는 포와로 탐정을 창조한 뒤, 여러 작품에서 셜록 홈즈를 소환했다. ‘테이블 위의 카드’(1936)에서 포와로는 로버츠 박사를 향해 “셜록 홈스가 떠오르는 모양이죠?... 나는 다른 사람의 트릭을 훔치는 일 따위는 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한다. 그러니까, 포와로는 셜록 홈즈와는 다른 방식으로 추리한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셜록 홈즈가 길고 야윈 얼굴에 예리한 인상이라면, 포와로는 달걀 모양의 얼굴에 165cm의 키, “희극에 나오는 이발사 같은 모습”이다. 1978년작 ‘나일 강의 죽음’에서 포와로 캐릭터를 연기했던 피터 유스티노프가 원작 캐릭터에 가장 가까운 배우다.
한때 ‘셰익스피어 전문가’로 명성을 떨친 케네스 브래너는 이제 아가사 크리스티의 팬으로 돌아왔다. 2017년 ‘오리엔트 특급살인’에 이어 ‘나일 강의 죽음’에서 연출과 주연을 동시에 맡아 포와로 탐정의 매력을 현대에 되살려냈다. 앞서 피터 유스티노프가 원작에 가까웠다면, 케네스 브래너는 낭만을 더했다. ‘나일 강의 죽음’은 1차 세계 대전에 참가한 포와로의 활약상으로 시작한다. 그는 새의 움직임을 보고 바람의 방향을 예측한 뒤, 기습작전으로 승리한다. 이 과정에서 부상을 입고, 예기치 않은 사고로 사랑하는 여인과도 헤어진다. 영화 속 포와로는 첫사랑을 그리워하는 인물로 재탄생한다.
원작의 포와로는 오랜 세월 어떤 로맨스도 없이 독신으로 살았다. 연세대 설혜심 교수는 “아가사 크리스티가 포아로를 ‘고양이 같다’고 묘사하곤 했기 때문에 어떤 학자들은 포아로가 게이 캐릭터가 분명하다고 해석한다. 고양이는 역사적으로 항상 여성성·가정성과 연결되어왔기 때문이다”라고 전했다. 푸아로는 이상적인 남성상과는 거리가 먼 인물이다. “선생님은 너무 늙으셨어요”라는 말을 듣고 상처 받는 인물이다. 오죽했으면, 아가사 크리스티가 포와로를 너무 나이들게 설정했다면서 후회했을까. 케네스 브래너는 ‘나일 강의 죽음’에서 포와로에게 낭만적 로맨스의 분위기를 살려낸다.
‘나일 강의 죽음’의 배경음악은 재즈다. 끈적끈적한 재즈의 선율은 1937년 당시의 시대상을 불러오는 한편, 옛사랑을 그리워하고 새로운 사랑 앞에서 흔들리는 포와로의 심리를 드러낸다. 이 영화에서 벌어지는 살인의 배경 중 하나는 ‘사랑과 질투’다. 사랑에 눈이 멀고, 질투심에 사로잡힌 인물들이 벌이는 파국 앞에서 포와로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아가사 크리스티는 사랑이나 섹슈얼리티 측면에서 재미없고 무미건조하다는 평을 들었다. 케네스 브래너는 원작에 없는 ‘중년의 로맨스’를 어루만지며 포와로 캐릭터의 새로운 매력을 살려냈다. 나일 강의 잔물결처럼 은은하게.
[사진 = 디즈니]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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