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사진설명:신세계가 3000억원에 인수한 미국 내파밸리 '셰이퍼 빈야드'. /셰이퍼 공식 홈페이지]
[마이데일리 = 김성호 기자]신세계그룹이 미국 나파밸리의 와이너리 ‘셰이퍼 빈야드’를 인수한 사실이 최근 알려지면서 국내 주류 업계뿐 아니라 전 세계 와인 업계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국내 유통 대기업이 미국 현지 와이너리를 인수한 건 처음이다.
신세계그룹의 부동산 개발회사인 신세계프라퍼티는 미국 자회사인 스타필드 프라퍼티스를 통해 ‘셰이퍼 빈야드’와 관련 부동산을 인수했다. 인수가는 모두 2억 5000만 달러(약 2996억원)다. 인수자금은 신세계프라퍼티의 유상증자로 마련된다.
조선일보에 따르면 셰이퍼는 내파밸리를 오늘날과 같은 미국 대표 와인 산지로 자리매김시킨 와이너리로 꼽힌다.
출판업에 종사하던 고(故) 존 셰이퍼는 1972년 오래된 와이너리를 사들여 셰이퍼를 창업했다. 그는 대학에서 와인 양조를 전공한 아들 더그 셰이퍼 현 대표와 1978년 빚은 첫 와인을 1981년 선보였다.
셰이퍼 와인은 시음회에서 호평을 받았다. 말 한마디로 와인 시장을 좌지우지하던 미국 와인 평론가 로버트 파커로부터 “경이롭다. 카베르네 소비뇽(포도 품종) 와인이 다다를 수 있는 최상의 맛”이란 극찬과 함께 한 번도 힘든 100점 만점을 여섯 차례나 받았다.
컬트 와인(cult wine) 반열에도 올랐다. 컬트 와인이란 놀랄 만한 맛과 구하기 힘들 만큼 적은 생산량으로 열광적인 추종자를 거느린 와인을 뜻한다. 프랑스나 이탈리아, 스페인 등 유럽 국가들처럼 공식적인 등급이 없는 미국에서 컬트 와인은 최상급 와인과 동의어로 통하기도 한다.
셰이퍼 와인은 풍부하고 농축된 과일·초콜릿 풍미와 비단처럼 매끄러운 탄닌에도 불구하고 장기 숙성이 가능한 견고함을 겸비해 ‘벨벳 장갑을 낀 강철 주먹’이란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셰이퍼에서 생산하는 최상급 와인 ‘힐사이드 셀렉트 카베르네 소비뇽’은 연도별로 차이가 있지만 병당 80만원을 호가한다. 국내에는 드라마 ‘펜트하우스’ 와인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소프라노 천서진(김소연 역)이 마신 와인이 ‘셰이퍼 릴렌트리스’였다.
[사진설명;미국의 컬트와인 브랜드 ‘셰이퍼 빈야드’의 대표 와인 힐사이드셀렉트. /셰이퍼 빈야드 홈페이지]
이번 거래는 ‘애주가’로 알려진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 적극 관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국내 와인 소매 시장이 급성장하자 현지 양조장을 통해 직접 와인을 생산하는 등 경쟁사와 차별화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그는 와인 감별 능력부터 양조 지식까지 두루 갖춘 와인 전문가로 2008년 와인 수입사인 신세계와인컴퍼니(신세계L&B)를 직접 설립한 바 있다.
이번 인수에 대해 와인 업계에서는 “잘 샀다”는 긍정적 평가가 지배적이다. 와인 전문가 A씨는 “와이너리가 투자처로 떠오르면서 프랑스 부르고뉴·보르도나 내파밸리처럼 유명 와인 산지 포도밭 가격이 급격히 오르고 있다”며 “셰이퍼 같은 컬트 또는 유명 와이너리는 돈이 있어도 사기 어렵다”고 했다. 신세계 측에서도 “프리미엄 와이너리 매물은 희소성이 높으며,
특히 내파밸리는 과거 연평균(2014~2020년) 9%의 부동산 가격 상승 추세를 보이고 있어 향후 지속적으로 가치가 높아질 것으로 기대된다”며 부동산 가치를 고려한 투자라고 설명했다.
돈 주고도 사기 힘든 컬트 와이너리를 신세계는 어떻게 인수할 수 있었을까. 내파밸리 와인을 주로 취급하는 와인 수입 업체 대표 B씨는 “최근 내파 와이너리 2세들이 상속세 등 문제로 와이너리를 시장에 내놓은 곳들이 몇 있다”고 했다.
1960~1970년대 내파밸리에 와이너리를 세운 창업자들의 은퇴와 사모펀드·기업·개인 자산가들이 대체 투자처로 와이너리에 갖는 관심이 맞물리며 일부 와이너리가 매물로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신세계프라퍼티는 이번 인수를 계기로 국내 유통, 상업시설 위주였던 부동산 포트폴리오를 해외 선진국의 우량 자산으로 다각화하며 사업 영역을 확대한다.
신세계프라퍼티 측은 “프리미엄 와이너리 매물은 희소성이 높다”면서 “특히 나파밸리는 부동산 가격이 2014∼2019년 연평균 9% 상승하는 추세로 향후 지속해 가치가 높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뉴욕타임스는 “와이너리를 구매할 때는 여러 목적이 있다”며 그중 하나로 위신(prestige)를 꼽았다.
와인 유통 업체 대표 D씨는 “아무리 우리나라에서 내로라하는 재벌이라도 해외 나가면 누군지 모르지만, 와이너리 그것도 유명 와이너리 소유주라고 하면 대번에 보는 눈이 달라진다”며 “이런 점도 와인 애호가로 소문난 정 부회장이 고려하지 않았을까 싶다”고 했다.
와인 칼럼니스트 E씨는 “와인 메이커라고 하면 단순히 부자가 아닌 문화적 소양을 갖춘 세련된 인물로 보인다는 점이 와이너리 소유욕을 자극하는 듯하다”고 했다.
와이너리는 오래전부터 신분 상승과 위상 과시의 수단이었다. 로스차일드 가문은 19세기 유럽 최대 금융 세력으로 등극했지만 유대인이라는 태생 때문에 상류사회 진출이 힘들었다.
프랑스 파리에서 활동하던 너새니엘 로스차일드는 당시 프랑스 귀족들처럼 자신의 와인으로 손님을 대접하려고 1853년 프랑스 보르도 ‘샤토 브란 무통’을 사들여 ‘샤토 무통 로칠드’로 이름을 바꿨다. 너새니엘의 삼촌 제임스도 1868년 ‘샤토 라피트’를 매입해 ‘샤토 라피트 로칠드’로 개명했다. 두 와인은 지금까지 프랑스를 대표하는 최고급 와인이다.
한편 국내 와인 시장 호조에 신세계그룹의 와인 관련 실적은 매년 커지고 있다. 신세계L&B는 2019년 매출 1000억원을 돌파한 이후 매년 최대 실적을 경신하고 있으며 이마트의 와인 매출도 연간 1000억원이 넘는다.
김성호 기자 shkim@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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