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리뷰
[마이데일리 = 곽명동 기자]말 조련사 OJ 헤이우드(다니엘 칼루야)의 아버지 오티스 헤이우드 시니어(키쓰 데이빗)가 기이한 현상으로 인해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는다. 해명할 수 없는 의문의 상황으로 인해 아버지가 사망한 충격 소식을 듣고 헤이우드 목장으로 다시 돌아온 동생 에메랄드 헤이우드(케케 파머)는 내성적 성격의 그의 오빠와 달리 주목받길 원하며 하늘 위에 떠 있는 ‘그것’(진 재킷)에 맞선다. 어린 시절 할리우드에서 아역 스타로 유명세를 얻고 지금은 ‘주피터 파크’를 운영하는 리키 주프 박(스티븐 연)은 괴생명체를 쇼의 형식을 통해 통제하려한다. 처음에 UFO처럼 보였던 진 재킷은 시간이 지날수록 본색을 드러내고 헤이우드 남매는 카메라감독(마이클 윈콧), 마트점원(브랜든 페레야)과 함께 괴생명체와 사투를 벌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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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이 사라진다’는 공포감
조던 필 감독이 ‘겟 아웃’ ‘어스’에 이어 세 번째로 내놓은 ‘놉’은 내 몸이 사라진다는 ‘몸의 공포’를 구현하는 그의 성향을 압도적으로 그려낸다. ‘겟 아웃’은 흑인의 우월한 몸에 늙은 백인의 뇌를 이식시키는 이야기다. ‘어스’는 내가 누군가와 대체될 수 있다는 불안감을 복제인간으로 풀어냈다. 그러니까 조던 필 영화는 누구의 몸에 들어가고, 누구와 똑같이 생기는 것에서 발생하는 섬뜩한 스토리로 미국사회의 인종, 계급 문제를 파고들었다. ‘놉’의 진 재킷은 사람들을 빨아들인다. 진 재킷의 흡인력은 존재 자체를 사라지게 만든다. 내 몸에 누가 들어오고(‘겟 아웃’), 내가 누군가로 감쪽같이 대체되고(‘어스), 내 몸이 어느 순간 괴생명체의 몸으로 흡수되는(’놉‘) 공포가 조던 필 영화의 기본 동력이다.
하늘 위의 ‘죠스’와 ‘미지와의 조우’
조던 필 감독은 사전 인터뷰에서 ‘오즈의 마법사’ ‘죠스’ ‘미지와의 조우’를 언급했다. 주인공 이름 OJ는 오즈에서 따온 듯 보인다. ‘오즈의 마법사’의 회오리 바람은 ‘놉’에서 괴생명체가 사람을 흡입할 때마다 등장한다. ‘놉’의 하늘을 바다라고 가정하면, 진 재킷은 ‘하늘 위의 죠스’가 아닌가. 극 후반부까지 명시적으로 보여주지 않고 암시만하는 점도 닮았다. 가장 큰 영향을 받은 작품은 ‘미지와의 조우’다. 그는 “다른 세계에서 온 무언가가 우리와 함께 한다는 느낌을 주는 스필버그의 능력에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고 말했다. ‘미지와의 조우’의 UFO 역시 사람들을 품고 있었다. 괴생명체가 구름 뒤에 숨어있는 아이디어, 갑자기 일어나는 정전 등도 스필버그 영화를 연상시킨다.
스펙터클의 경외와 착취
조던 필 감독은 ‘놉’의 아이디어가 “스펙터클화와 착취”라고 말했다. 아역배우 시절 주프는 방송 프로그램 출연 도중 원숭이 고디가 포악하게 변하는 모습을 목격했다. 영화 ‘ET’처럼 둘이 손을 마주치려는 모습은 각각 백인과 인간의 구경거리로 전락했던 비슷한 처지에 대한 은유로 보인다. 성인이 된 그는 관객을 불러모아 말을 미끼로 진 재킷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모습을 보여주는 쇼를 펼치다가 비극을 맞는다. 진 재킷을 촬영해 돈을 벌려는 인물들의 욕망 역시 스펙터클에 경도된 채 착취 당하는 현대인의 속성을 드러낸다(‘죠스’에서도 생명의 위협을 받으면서 구경거리를 찾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이 영화는 목숨을 걸고 괴생명체를 촬영해 주목받길 원하는 소셜 미디어 시대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다.
말 타는 흑인 기수
착취는 영화산업에 종사하는 흑인에게도 적용된다. 1887년 에드워드 마이브리지는 말을 타고 달리는 흑인기수의 움직임을 담은 말 활동사진을 만들었다. 그러나 마이브리지, 말의 이름, 주인의 이름은 남아있지만, 흑인 기수의 이름은 역사에서 사라졌다. 흑인이 영화 탄생에 기여했음에도 불구하고 완벽하게 지워졌다. 헤이우드 남매를 그 흑인기수의 후손으로 설정한 것은 할리우드 영화산업의 착취를 끄집어내는 열쇠다. 실제 남매의 아버지가 타고 있는 말에 꽃힌 것이 열쇠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조던 필 감독은 역사에서 잊혀지고, 영화산업에서 배제된 흑인 말 조련사 남매를 내세워 인간과 동물을 빨아들이는 괴생명체에 맞서게 하는 전략으로 영화를 이끌고 나간다.
원초적인 영화의 쾌감
첨단 디지털 카메라는 진 재킷의 위력 아래에서 무용지물이다. ‘그것’은 모든 전자기기의 작동을 멈추게 하는 힘을 가졌다. 그렇다면 괴생명체를 어떤 장비로 담아낼 것인가. 손으로 필름을 돌리는 구식 수동 카메라는 진 재킷이 집어 삼켰다. 남은 것은 더 옛날에 사용됐던 기계 장치인데, 에메랄드가 극적인 상황에서 괴생명체를 담아내는 모습은 디지털 시대에 여전히 살아있는 아날로그의 활력과 쾌감을 일깨운다. 평화로운 마을에 나타난 악당을 물리치는 고전적 서부극 스토리에 SF와 호러를 버무리는 솜씨도 경탄을 자아낸다. ‘놉(Nope)’은 “아니”라는 뜻이다. 영화 제목은 스펙터클화된 세계와 거기에 착취 당하고 있는 현실에 대해 감독이 외치는 선언이다.
“놉!”
[사진 = UPI]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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