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마이데일리 = 신문로 최병진 기자] 현역 은퇴를 선언한 구자철이 2014년 브라질 월드컵을 떠올리며 눈물을 흘렸다.
구자철은 14일 서울 광화문의 축구회관에서 현역 은퇴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또한 유소년 어드바이저 위촉식을 진행했다.
구자철은 2007년 신인 드래프트 3순위로 제주에 입단했다. 구자철은 빠르게 성장하며 제주의 핵심으로 자리 잡았다. 구자철은 2011년에 제주를 떠나 볼프스부르크로 이적하며 해외 진출에 성공했고 이후 마인츠, 아우크스부르크에서 뛰었다.
8년간 독일 무대를 누빈 구자철은 2019년에 알 가라파로 이적하며 카타르 리그에 입성했다. 2021-22시즌에는 알 코르에서 뛰었고 2022시즌을 앞두고 제주에 복귀하며 K리그로 돌아왔다.
국가대표로도 족적을 남겼다. 구자철은 2019년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U-20) 월드컵을 시작으로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동메달, 2012 런던 올림픽 동메달의 기적을 이뤄냈다. 구자철은 A매치 76경기 19골을 기록했고 2019년 아시안컵을 끝으로 대표팀에서 은퇴했다.
구자철은 제주 복귀 후 많은 경기를 소화하지는 못했지만 베테랑으로 헌신을 했다. 제주는 이에 보답하기 위해 은퇴 한 구자철을 유소년 어드바이저로 임명하며 동행을 이어간다.
구자철은 “제주에서의 은퇴가 꿈이었다. 그리고 나를 낳아준 구단에서 새로운 직책을 주셨다. 서두르지 않고 매듭을 지을 수 있는 일을 하겠다”고 밝혔다.
[구자철 기자회견 일문일답]
- 은퇴 소감
은퇴를 이전부터 생각을 했다. 축구화를 신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은퇴 후에도 한국 축구를 위해 제가 받은 사랑과 경험들을 나누고 싶었고 우리 세대는 한국 축구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역할을 하자는 마음이었다. 아우크스부르크에 있을 때 실제로 뮌헨에 가서 경험을 했다. 그러면서 저를 키워주고 낳아준 구단이자 마음이 항상 가는 제주가 직책을 주셨다. 서두르지 않되 매듭이 있는 일을 하자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목에 걸고 단상에 올라갔을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시상식에 올라가서 국기 모습을 보고 메달을 걸었을 때를 잊을 수가 없다.
- 2011년 한일전 0-3 패배 이후 절대 지지 않겠다는 각오를 표출했는데?
유럽에 진출하고 처음 아시아에 와서 하는 경기였다. 당시 볼프스부르크에서 하노버를 가고 프랑스에 간 뒤 인천에서 삿포로로 갔다. 경기 이틀 전에 도착했는데 몸이 너무 좋지 않았다. 경기를 어떻게 해야 하지 싶었는데 한일전에서 3-0으로 패했다. 한일전을 지면 안 된다는 정신을 가지고 있었는데 부끄러웠다. 한 순간도 잊지 못하면서 다음 한일전을 지면 축구를 그만두겠다는 각오를 했다. 진다는 생각이 안 들고 가로막는 사람을 용서하지 않겠다는 마음이 들 때가 있다. 1년전 패배의 부끄러움을 반성해야 했다.
- 기억에 남는 득점은?
2009년 이집트 청소년 올림픽 미국전 페널티킥 세레머니를 했는데 그때 전율을 느끼기 위해서 힘든 시간을 이겨냈구나 하는 생각이다. 또한 2011년 아시안컵 호주전 때 득점도 기억에 남는다. 첫 경기에 바레인전에 득점을 했을 때는 그저 좋았는데 두 경기 연속골을 기록해서 남달랐다. 2016년 우즈베키스탄과 2018 러시아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득점인데 홍철이 크로스를 올려주고 김신욱이 볼을 내줬을 때 왼발 슈팅으로 득점을 한 것도 인상적이었다.
물론 런던 올림픽 한일전 득점도 마찬가지다. 그 대회에서 자꾸 득점이 나오지 않았다. 필요할 때 골을 넣겠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 브라질전때 득점을 하고 싶었다. 남자 축구 최초 결승이라는 대기록을 쓰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지만 일본전에서 귀중한 득점이 나왔다.
- 아쉬운 순간은?
2014년 브라질 월드컵이다. 아쉬운 걸 떠나서 그때 너무 어렸다. 최연소 주장, 월드컵 주장이라는 타이틀이 따라오는데 개인적으로는 자랑스러운 부분은 아니다. 축구 선수란, 특히 월드컵에 나가는 선수란 사회적 책임이 따른다고 생각한다. 당시에는 사회적 책임에 대해 생각하지 못했다. 경험을 통해 많이 성장했지만 저의 부족함 때문에 결과가 좋지 않아서 아쉬웠다. 월드컵을 통해 덕을 볼 수 있던 분들에게 죄송한 마음이다. 제주 후배들에게도 항상 이야기를 한다. 제주라는 사회에 꿈이 되고 어린 선수들에게 동경이 되는 선수가 됐으면 좋겠다고 한다.
- ‘절친’ 기성용(FC서울), 이청용(울산 HD)의 존재는?
큰 힘이 되는 친구들이다. 세 명의 단톡이 있는데 사소한 것까지 이야기를 나눈다. 은퇴를 한다고 했을 때도 아쉬워해주고 고생했다는 말을 많이 해줬다. 같은 선수로서 그들을 존경하고 따라가려고 노력했다. 너무나 훌륭한 선수이자 동료다. 한국 축구를 사랑하는 마음도 저보다 훨씬 크다. 지금 여러 조언도 해주고 있다. 은퇴를 먼저 하니까 잘하고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도 하더라. 친구들이 은퇴를 하기 전까지 잘 기다리고 있겠다는 말을 하고 싶고 함께 선수를 할 수 있어 영광이었다고 이야기를 하고 싶다.
성용이는 유럽을 다니면서 지도자 수업을 받고 있고 행정도 준비를 하고 있다. 행정, 지도자 다 배우자고 했다. 기회가 있다면 꼭 배우고 함께 공유하자고 한다. A와 P급 지도자 자격증을 따야 하고 구단을 위해서도 더 노력을 해야 한다. 욕심을 내서 일을 그르치고 싶지 않다. 한국 축구를 위해 긍정적인 일들을 해야 한다고 공유하고 있다.
- 은퇴 이후 어떤 역할을 하고 싶은지?
급하게 바꿀 생각은 없다. 기존에 하시던 분들을 존중해야 한다. 제가 더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올해 1년은 옆에서 지켜보며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하고 제가 할 일이 늘어났을 때 적극적으로 하려 한다. 유소년 시스템이 더 발전했으면 좋겠다는 확고한 생각이 있다. 매듭을 지을 때까지 현명하게 해보려 한다.
- 한국 축구에 어떤 도움을 주고 싶은가?
K리그에서 유럽으로 나가는 선수들이 많아졌고 전반적으로 수준이 높아졌다고 생각한다. 행정적인 부분도 마찬가지다. 축구 시장의 가능성이 무한하다고 생각한다. 가야 할 길이 더 많다. 축구판에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를 생각하면 설레서 잠을 못잘 정도다. 할 수 있는 것과 잘할 수 있는 게 많다. 한국 축구가 전반에 걸쳐 더 발전을 해야 한다. 변화가 필요한 부분도 물론 있다. 특히 잔디에 대한 보완이 필요하다. 저도 팀에 많이 이야기를 했다. 그래도 저희 구단 상태가 좋아서 감사한 마음이다. 잔디는 파고 들어서 제도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생각한다. 날씨를 핑계 삼아 방치해서는 안 된다. 피해 보는 건 선수들이고 경기를 보러 오는 건 팬들이다.
- 주장 출신으로 본 손흥민의 리더십은?
흥민이의 주장으로서의 리더십은 제가 보지 못했기 때문에 이야기하긴 어려울 것 같다. 저는 주장이 워낙 오래전 일이다. 최대한으로 선수들이 부담과 압박에서 벗어나 편안함을 느낄 수 있도록 집중했다.
- 은퇴를 결심한 이유는?
근육과 무릎, 발목이 버텨주지 못한다. 이전 같았으면 데미지가 있으면 회복이 돼야 했는데 한국에 들어와서는 회복 기간이 감을 잡을 수 없을 정도로 늘어났다. 부상이 반복되면서 이제는 미련 없이 축구화를 벗어야 할 시기가 왔다고 생각했다. 제 꿈은 한국에 돌아와서 제주에서 은퇴하는 것이었다. 꿈을 이뤄 감사하다. 은퇴 후의 꿈은 아직은 마음속에만 간직하고 싶다.
- 은퇴한 스스로에게 하고 싶은 말은?
저보다는 여기까지 저를 만들어준 아버지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싶다. 결혼을 일찍 했는데 아내한테 너무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 고생을 정말 많이 했다. 독일에 있을 때 첫째를 낳고 대표팀 경기를 하면 자리를 비울 때가 있는데 행복한 가정을 이룰 수 있게 해 준 아내와 도움을 준 처제에게도 너무 고맙다. 가정이 생기면 책임감이 더 커졌다. 오늘은 가족들이 주목을 받았으면 좋겠다.
- 어떤 선수로 기억되고 싶은지?
우리나라 축구 최초로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딴 선수로 기억됐으면 좋겠다. 2014년 월드컵에서는 아픔을 드렸지만 그때는 기쁨을 선사했기 때문에 긍정적인 선수로 남았으면 좋겠다.
신문로 = 최병진 기자 cbj0929@mydaily.co.kr
- ⓒ마이데일리(www.mydaily.co.kr).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댓글
[ 300자 이내 / 현재: 0자 ]
현재 총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