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ESG 경영컨설턴트 심준규] 지구 미래를 위협하는 기후 위기는 온실가스 배출 증가 단일 요인만으로 촉발되지 않는다. 주지하다시피 환경은 대기뿐 아니라 모든 생물에까지 광범위하게 연결돼 있다. 탄소 규제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의미다.
지금 지구는 도시화와 산업화로 인해 생태계가 파편화되고, 무분별한 개발로 야생동물의 서식지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한번 생태계가 망가지기 시작하면 그 속의 생물종은 복원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사전 예방적 보호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 때문에 최근 전 세계는 생물다양성을 지키는 데도 보다 관심과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지난 2024년 자연 관련 재무정보공시체계(TNFD)에 참여하는 기업이 직전년 동기 대비 57%나 증가했다. 기업이 생물다양성을 새로운 경영 과제로 인식하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
특히 생물다양성 크레딧(Biodiversity Credit)을 주목할 만하다. 1970년대 미국 습지 보전에서 시작된 이 제도는 이제 전 세계 생물다양성 보호를 위해 확산되고 있다.
‘재규어 크레딧’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 있는가? 중남미에서는 재규어 서식지를 보호하기 위해 이 독특한 제도를 운영한다. 재규어가 서식하는 멕시코에서 아르헨티나에 이르는 18개국이 이 제도에 참여하고 있다.
정부에서 발행하고 관리하는 이 크레딧은 재규어 서식지가 포함된 지역에서 광산 개발, 도로 건설, 관광단지 조성 등 사업을 하려는 기업이 반드시 구매해야 한다. 정부는 크레딧을 통해 조성된 기금으로 재규어 보호구역을 확대하고 서식지를 복원한다. 이는 개발과 보전의 상생을 도모하는 현실적 대안이 됐다.
생물다양성 크레딧은 각 나라 생태적 특성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도입되고 있다. 호주에서는 코알라 서식지 보호를 위한 크레딧이 거래되고, 영국에서는 농작물 수정에 꼭 필요한 꿀벌을 보호하기 위한 크레딧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특히 영국은 한발 더 나아가 개발 사업을 진행할 때 해당 지역 생물다양성을 오히려 10% 이상 높이도록 의무화했다. 생물 서식지에 대해 단순한 보호를 넘어 생태계 회복을 위한 적극적인 의지를 보여주는 정책이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도 생물다양성 보전을 위한 제도적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현재 운영 중인 대체산림자원조성비와 생태계보전협력금 제도는 산림과 생태계 훼손 이후 복구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사전예방적 적극적 복원을 유도하는 데 한계를 지니고 있다.
앞으로는 우리나라에서도 산천어나 반달곰과 같은 우리 고유 생물종을 보호하기 위한 한국형 생물다양성 크레딧이 등장할 수 있지 않을까?
산천어 크레딧이 도입된다면, 수질 오염에 민감한 산천어 서식지를 선제적으로 보호하는 데 활용할 수 있겠다. 상류 지역 개발 사업자에게 크레딧 구매를 의무화하고, 조성된 기금으로 수질 개선 사업을 통해 산천어뿐 아니라 다양한 수생 생물이 서식하는 청정 생태계를 유지해야한다.
반달곰 크레딧 역시 우리나라 주요 산림지역 개발 사업에 적용해 생태 통로 확보와 서식지 보전에 활용할 수 있다. 이를 통해 반달곰뿐만 아니라 산림에 서식하는 다양한 야생동물의 이동 경로를 확보하고 산림 생태계의 건강성을 높일 수 있겠다.
생물다양성 보전은 탄소중립과 함께 가야 할 또 하나 중요한 과제다. 지금 우리에게는 이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추구하는 통합적 접근이 필요하다. 생물다양성 가치를 인식하고 우리 실정에 맞는 보전 정책을 설계하는 게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첫걸음이 될 것이다.
|심준규. 더솔루션컴퍼니비 대표. <실천으로 완성하는 ESG 전략> 저자. 기업의 ESG 역량 강화 프로그램 개발과 ESG경영컨설팅을 하고 있다.
더솔루션컴퍼니비 심준규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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