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교사 김혜인] 엘리베이터 안에 게시된 새 안내문이 눈에 띄었다. 황병기 <미궁>을 크게 틀어놓는 행위는 층간소음으로 문제가 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어릴 적 황병기 <미궁>을 처음 들었을 때 충격은 잊지 못한다. 국악에는 문외한이었지만 대단한 작품임을 느낄 수 있었다. 몇 년 뒤 인터넷에서 그 곡이 층간소음 복수 음악이라 나돌 때 웃었던 기억도 났다. 그 후로 한참 잊고 있었던 이 위대한 곡이 이번에도 층간소음 이슈와 얽혀 언급되고 있었다.
어느 집끼리 층간소음으로 다투고 있는 걸까. 나와는 관련 없다고 할 수 있을까. 아이가 생긴 뒤로는 층간소음 문제 앞에서 나는 언제나 위축되곤 한다.
작년 초에 아랫집 이웃과 첫 대면했다. 그날따라 아이가 아침 일찍부터 난동을 부렸다. 지금처럼 숫자를 세며 마음을 진정시키는 방법을 터득하기 전이다. 아이가 분노발작을 일으켰는데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해도 진정되지 않았다. 2시간째였다.
나는 모든 걸 포기하고 매트 위에 설치한 아기 울타리인 베이비룸 안에 아이를 두었다. 아이가 난동을 부리다가 다치지 않게 안전을 확보하고, 아래층에 층간소음을 일으키지 않기 위해서였다. 무엇보다 나도 한 걸음 물러서서 내 마음을 추스를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나 아이는 자기를 베이비룸 안에 두어서 더 화가 난 듯했다. 어느새 그렇게 힘이 세졌는지, 견고히 설치해 둔 베이비룸을 아이가 무너뜨려 버렸다. 난감하게도 매트를 깔아두지 않은 바닥에 가서 발을 굴렀다. 그때 초인종이 울렸다. 아랫집에 사는 사람이었다.
그는 내게 한 번쯤은 얘기를 나눌 생각이었다고 말했다. 층간소음이 심한 걸 모르는 것 같아서 알려주려고 왔다고 했다.
모를 리가 없었다. 나는 언젠가 층간소음 민원 전화가 올까 봐 늘 전전긍긍했다. 먼저 찾아가 보려다가 긁어 부스럼만 될까 봐 망설였다. 전체 안내방송 외에 개별적인 민원이 없길래, 혹시 아랫집 이웃은 아침 일찍 나가고 밤늦게 들어와서 집을 비우는 시간이 많은 사람이 아닐까 희망적인 생각을 했다.
그간 얼마나 참고 참다가 올라왔을까. 어떤 변명이나 핑계도 댈 수 없기에 거듭 죄송하다고만 말했다. 이웃이 내게 층간소음을 호소하는 와중에도 아이는 악을 쓰며 울고 있었다. 바닥을 뒹구는 아이와 처음 만나는 아랫집 이웃, 무너진 베이비룸 사이에 서 있는 나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아랫집 이웃은 나와 아이를 잠시 번갈아 본 뒤 돌아갔다.
그는 꽤 정중했다. 내 입장을 이해한다고도 했다. 그럼에도 층간소음 가해자가 된 처지에 울적한 마음이 들었다. 나는 본래 발소리가 거의 나지 않게 걷는다. 층간소음을 떠나 의자를 끌 때 나는 소리가 싫어서 의자마다 소음방지 커버를 씌운다. 도마에 칼질을 할 때도 소리나 진동이 크지 않게 조심한다. 청소기 대신 밀대를 쓴다. 그러나 우리집은 영락없이 층간소음 유발 세대였다.
나는 그날 당장 매트를 추가로 구입했다. 무용지물이 된 베이비룸은 없애고 매트로 방바닥 구석구석을 메웠다. 문제는 방문 주변이었다. 방문과 바닥 사이는 틈이 너무 좁았다. 아주 얇은 매트라도 깔아 보려 했으나 문을 열고 닫는 공간에 들어갈 만한 제품은 없었다.
그 후로 아랫집 이웃과는 두 번쯤 더 연락을 주고받았다. 다행히 매트를 추가로 깔아 둔 뒤로는 쿵쿵거리는 소음이 없다고 했다.
그러나 아이가 일부러 방문 주변 매트가 없는 곳에서 발을 구를 때면 과연 괜찮을까 걱정되었다. 이른 새벽이나 늦은 밤이 아니면 이해하고 넘어가는지도 모른다.
"딩동댕" 관리사무소 안내방송을 알리는 소리였다. 모든 일을 멈추고 어떤 내용이 나올지 긴장하며 들었다.
한동안 시설 점검이나 공사 양해를 구하는 방송만 나왔는데, 오늘은 아침에 이어 저녁에도 층간소음을 주의해 달라는 방송이 나왔다. 최근에 관련 민원이 잦으니 모두 배려하고 조심해 달라고 했다. 잦은 민원 중 어느 하나는 우리 집 때문일 것 같아서 절로 한숨이 나왔다.
단독주택에서 산다면 어떨까 잠시 생각해 봤다. 그러나 그보다는 공동주택 1층으로 이사하는 게 훨씬 실현 가능한 방안이겠다.
공동주택에서 살고 싶은 건 아니었다. 태어나서 줄곧 공동주택에서 사는 건 가장 많이 공급되고 있는 주거형태이기 때문이다. 다른 선택지는 거의 없다. 우리는 경제적 여건과 주택공급 상황에서 형편에 따라 최선의 선택을 했을 뿐이다. 아마 아랫집도 윗집도 옆집도, 황병기 <미궁>을 틀어놓은 어떤 집도 그랬을 테다.
상상력을 끌어와 아주 멀리서 이 공동주택을 바라보았다. 어떤 아이가 쿵쾅거리고, 어떤 엄마가 매트를 깔고, 어떤 이는 <미궁>을 크게 틀고, 어떤 이는 귀를 막으며 괴로워하는 모습. 가까이서 보아도 멀리서 보아도 여전히 희극인지 비극인지 모를 이 시대의 단면. 아마도 꽤 오랫동안 그 속에서 살아가야만 하겠다.
|김혜인. 중견 교사이자 초보 엄마. 느린 아이와 느긋하게 살기로 했습니다.
교사 김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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