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교사 김혜인] 병원으로 이동하는 중이었다. 아이가 카시트와 차량 바닥을 고정하는 지지대를 발로 세게 찼다.
나는 그 소리와 울림에 매번 깜짝 놀랐다. 운전하는 데 큰 방해가 되었다. 지지대를 발로 차면 카시트가 흔들릴 수 있어 아이 안전에도 문제가 되었다. 언제부턴가 아주 짧은 거리를 이동할 때도 두세 번은 꼭 그랬다. 반드시 교정해야 할 행동이라 결론 내렸다.
“네가 이걸 발로 차면 엄마가 운전할 때 깜짝 놀라. 게다가 카시트가 흔들리면 아주 위험해”라고 말로 타일렀으나 효과가 없었다.
전쟁이 시작됐다.
처음에는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빛 때문이라 짐작했다. 창을 가려주니 그 행동이 사그라든 듯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이전보다 더 자주, 더 세게 지지대를 찼다. 발차기할 때마다 갓길에 차를 세우거나 신발을 벗겨보기도 했다.
남편은 아이가 무료하거나 졸려서 그런다고 판단했다. 장난감이나 간식을 주기도 하고 발을 흔드는 행동으로 대체하도록 지도했다. 졸려 보일 때는 눈을 감게 했다.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아예 무시하는 전략을 썼다. 두 달이 지나도 빈도나 강도가 줄지 않았다.
다시 이번에는 아이가 카시트 지지대를 발로 차는 행동을 몸으로 막아 보기로 했다. 평일에는 나 혼자 운전하며 아이 행동을 막을 수가 없지만, 주말에는 남편이 도울 수 있었다. 남편이 운전하는 동안 나는 아이 카시트 옆에 바짝 앉았다. 아이가 지지대를 발로 차려는 순간 손으로 막았다.
아이 행동이 너무 빨라서 실패할 때도 있었지만 절반 이상은 막았다. 그러자 아이는 몸을 잠시 앞으로 기울이더니 카시트 등받이에 제 뒤통수를 세게 박았다. 그래서 한 손으로는 발차기를, 다른 한 손으로는 머리 박는 행동을 막았다. 차로 20분가량 이동하며 아이 행동을 막으니 팔과 허리가 아팠다.
이렇게 훈육에 내 몸을 갈아 넣은 듯한 주말을 보낸 직후 월요일 난동은 더욱 심해졌다. 병원에서 치료를 마치고 카시트에 앉아 얌전히 안전벨트를 한 아이가 갑자기 심하게 난동을 부렸다. 이유를 알기 어려웠다.
집으로 돌아오는 데는 고작 10분이었지만 아이가 크게 울며 카시트 지지대에 발을 구르고 머리를 뒤로 박는 통에 귀가 먹먹했다.
나는 크게 심호흡하며 한숨을 쉬어 보고 라디오를 켜며 마음을 진정했다. 다시 라디오를 끄고 창문을 열었다. 아이가 지지대를 발로 찰 때마다 머리가 울렸다.
결국 인내심을 잃고 “그만 해!”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훈육도 뭣도 아니었다. 그저 전쟁이었다.
응용행동분석 치료사는 “아이 발달 정도와 높은 불안감을 고려할 때 엄마의 화는 아이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간 나는 내 마음을 잘 다스려왔다. 그러나 정말 아주 가끔이라 해도 크게 화를 낸 것이 아이 마음에 깊이 새겨질까 두려웠다. 100번을 잘해도 1번 잘못하면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가는 것만 같아서 지쳤다.
이 모든 사정을 아무도 나만큼 알 수 없기에 한없이 외로웠다. 지치고 외로울수록 잠은 오지 않았다.
새날이 밝았다. 하루를 어떻게 버텨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일단 어린이집에 데려다주자.
“어린이집에 도착할 때까지 머리랑 발은 가만히 있는 거야. 다시 한번 말할게. 어린이집에 도착할 때까지 머리랑 발은 가만히 둬야 해.”
아이를 카시트에 태우고 안전벨트를 고정한 뒤 말했다. 말은 그렇게 해도 아이가 여전히 발을 차거나 머리를 박으면 어떻게 대처해야 좋을지 막막했다. 그저 그 소리와 진동에 놀라지나 말자고 내 마음을 다독였다.
아, 도대체 뭘까. 모든 걸 다 포기하고 싶을 때가 되어서야 언뜻 비치는 희망은. 아이는 몇 달 만에 처음으로 어린이집에 도착할 때까지 한 번도 발버둥질하지 않았다.
과연 다음에도 아이가 얌전히 있을까. 그렇지 않더라도 나는 또 다른 방법을 시도해보겠지. 아이는 자라겠지.
|김혜인. 중견 교사이자 초보 엄마. 느린 아이와 느긋하게 살기로 했습니다.
교사 김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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