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성공 조 단위 점프, 실패 생존 위협
성패는 임상과 글로벌 변수에 달려
[마이데일리 = 박성규 기자] K-제약·바이오 기업이 글로벌 빅파마와 손잡으며 ‘조 단위’ 성장 가능성을 키우기에 나서고 있다. 반면에 이런 시도는 계약 해지와 임상 실패라는 리스크도 공존한다.
22일 제약·바이오업계에 따르면 최근 국내 기업의 해외 진출의 명암이 엇갈리고 있다. 기술이전으로 시가총액이 수 배 상승하는 경우도, 기술 반환이나 임상 실패로 존립 자체가 위협받는 사례도 나오면서다.
최근 브릿지바이오는 5거래일 연속 하한가를 기록했다. 주가 급락 배경은 특발성 폐섬유증 치료제 후보 ‘BBT-877’의 임상 2상 실패다.
브릿지바이오는 지난 14일 BBT-877의 임상 결과를 발표했다. 1차 평가지표에서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효과를 입증하지 못했다. 약물을 투여한 환자군과 위약군 간 차이가 뚜렷하지 않았다는 의미다.
BBT-877은 브릿지바이오가 2019년 독일 베링거인겔하임에 총액 1조4600억원 규모로 기술수출했다가 이듬해 반환받은 신약 후보 물질이다. 이후 브릿지바이오가 자체적으로 임상 개발을 진행했다.
이정규 브릿지바이오 대표는 홈페이지에 낸 입장문에서 “경영권에 연연하지 않고 전략적 제휴·재무적 투자 유치를 적극 추진하겠다”며 “연내 상장 유지를 충족할 규모 자본 조달을 달성하겠다”고 밝혔다.
업계는 지난해부터 기술 반환 악재가 줄줄이 이어졌다. 올릭스, 유한양행, 큐라클, 노벨티노빌리티 등이 빅파마에 기술이전한 파이프라인을 반환받았다.
한미약품은 총 6건의 기술수출 계약 중 5건이 반환됐고, 유한양행은 3건 중 2건이 무산됐다. 지씨셀, 동아ST, 브릿지바이오테라퓨틱스는 각각 1건을 수출했다가 모두 반환받았다.
기술수출이 잇따라 무산되는 배경에는 빅파마의 전략 변화가 있다.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시행과 블록버스터 의약품의 특허 만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재집권에 따른 정책 불확실성이 맞물리면서다.
IRA는 2022년 8월 미국에서 통과된 경제·복지·기후 법안이다. 그중 업계를 강하게 압박하는 조항은 약가 협상 조항이다. 2023년부터 준비가 시작됐고 2026년부터 처방약 가격이 협상을 통해 인하될 예정이다.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15일 ‘약가 인하 행정명령’에 서명해 불확실성이 더욱 커졌다.
하지만 빅파마와 계약은 기업이 한 단계 성장하는 계기다.
통상 국내 바이오텍이 첫 빅파마로 기술이전에 성공하면 약 5000억원대 시가총액이 1조원대로, 두 번째 계약에 성공하면 약 3조~4조원으로 기업 가치가 상향됐다.
허혜민 키움증권 연구원은 “시총 1조원 미만 기업이 빅파마와 첫 기술이전에 성공하면 조 단위로 높아지고, 두 번째 기술이전은 1조~2조원에서 3조~4조원으로 상향됐다”며 “시장은 글로벌 상위 20위 제약사와 1억달러 또는 1000억원 이상의 기술이전을 해야 시총이 조 단위에 진입한다”고 설명했다.
올해 4월 초까지 K-제약·바이오사가 글로벌 빅파마와 총 26건 계약을 성사했다. 2015년 한미약품과 일라이릴리의 기술이전이 시작이다. 전체 기술이전 평균 계약금은 890억원, 마일스톤(단계별 기술료)은 1조6500억원이다. 계약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5%다.
이 가운데 한미약품이 총 6건으로 가장 많았다. 2015년 한 해에만 일라이릴리, 베링거인겔하임, 사노피, 얀센과 계약했고 2016년 제넨텍, 2020년 미국 머크(MSD)와 손을 잡았다. 이어 유한양행‧알테오젠‧리가켐바이오사이언스가 3건, 에이비엘바이오‧오름테라퓨틱이 2건으로 뒤를 이었다.
역대 최대 규모는 2020년 알테오젠이 머크와 계약한 4조6700억원이다. 에이비엘바이오가 이달 7일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과 총 4조1000억원 규모의 기술수출 계약을 맺으며 역대 두 번째 기록을 세웠다.
제약·바이오 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빅파마의 전략 변화는 국내 기업이 통제할 수 없는 변수지만, 기술수출은 여전히 바이오텍이 몸집을 키우고 글로벌 신뢰를 쌓는 가장 빠른 경로”라며 “단기 성과보다 장기적 관점에서 파이프라인 완성도와 임상 전략을 정교화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박성규 기자 psk@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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