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마이데일리 = 한상숙 기자] 칼바람이 부는 안양천변 서울 목동야구장. 온도는 영상을 가리키고 있었지만 옷깃을 파고드는 바람 탓에 체감온도는 영하를 밑돌았다. 선수들의 부상을 우려해 필드훈련은 취소됐고, 웨이트장에서 각자 운동을 마친 선수들은 평소보다 2시간 가량 일찍 훈련을 마무리했다.
잠시 후 텅 빈 그라운드에 작은 움직임이 보였다. 누군가 큰 원을 그리며 그라운드를 돌고 있었다. 한참을 뛰던 그 선수는 덕아웃에서 글러브와 공을 챙겨와 불펜포수와 피칭을 시작했다. '팡! 팡!' 공이 미트로 빨려들어가는 소리가 구장을 가득 메웠다.
김수경이었다. 데뷔 첫 해 신인왕을 거머쥐고, 2007년 12승을 올리며 '닥터K'로 불리던 그는 2010 시즌 단 한 경기 등판 후 2군행을 자청, 줄곧 넥센 2군 구장이 있는 전남 강진에 머물렀다.
김시진 넥센 감독마저 "한 경기 등판했을 뿐인데 너무 성급한 결정 아니냐"며 만류했지만 김수경은 뜻을 굽히지 않았다. "전지훈련에서 몸을 완벽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시즌을 치르려고 보니 구위나 스피드 모든 면이 형편없었다. 자연스럽게 자신감도 떨어졌고. 며칠 시간을 달라고 말씀드린 후 강진으로 내려갔는데 그게 1년이 다 되간다."
김수경은 올 시즌 내내 강진에 머물며 마음을 닦았다. 덕분에 몸도 한결 가벼워졌다. 그는 "몸이 무거운 것 같아 수영을 시작했더니 몸무게가 5kg 정도 빠졌다. 수영이 유연성을 키우는 데 좋다고 해서 2달째 다니고 있다. 균형과 유연성, 근력 강화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이어 "경기에 안 나오다보니 이제 얼굴도 잘 못알아보더라. 알아보는 분들도 옛날 얘기를 많이 하신다. 다시 좋은 기억을 심어드리고 싶다. 어차피 선수는 성적으로 말하는 것 아닌가. 재기에 성공한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고 각오를 다졌다.
그리고 그에게는 반드시 힘을 내야 할 또 다른 이유가 있다. 김수경은 오는 5월 결혼 후 4년만에 첫 아이를 얻는다. 새로운 가족과 그들 못지 않게 자신을 옆에서 지켜준 코칭 스태프들의 노력. 김수경이 스스로 올 시즌을 '마지막'이라고 일컬을 수 밖에 없는 이유다. "나를 보면 다들 안타까워 한다. 칭찬을 받고 싶은데 한숨만 쉬게 한 것 같다. 재기에 성공해 '축하한다'는 말을 듣고싶다."
김수경은 거듭 "이번에 안 되면 정말 끝"이라고 했다. 김수경은 '현대의 황태자'라 불리던 자신에게 찾아온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절치부심 중이다. 그의 공은 그만큼 절박한 심정으로 공기를 가른다.
[김수경. 사진 = 넥센 히어로즈 제공]
한상숙 기자 sky@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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