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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성의 스타★필]
한국 영화에서 야구를 소재로 한 작품은 타율이 좋지 않다. 80년대 이현세 만화를 원작으로 한 ‘이장호의 외인구단’은 속편까지 만들어질 정도로 인기가 높았지만 1998년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 2002년 ‘YMCA 야구단’, 2004년 ‘슈퍼스타 감사용’, 2007년 ‘스카우트’ 까지 톱배우와 알만한 감독이 전력투구했음에도 흥행은 저조했다.
‘충무로 승부사’ 강우석은 승률이 매우 좋다. 1989년 ‘달콤한 신부들’로 입봉한 그는 ‘투캅스’, ‘공공의적’ 등 알찬 시리즈를 만들어냈으며, 2003년 ‘실미도’로 천만 감독 대열에 동참했다. 한동안 제작자로 외유하다 작년 ‘이끼’로 다시 메가폰을 잡아 330만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불패의 신화를 이어갔다.
이런 강우석과 야구가 만난 ‘글러브’가 신년 극장가에 흥행 돌풍을 일으키며 개봉 11일 만에 백만 관객을 넘어섰다. ‘글러브’는 청각 장애 학생들의 야구부인 충주 청심학교의 실화를 재구성한 작품으로 땀과 노력으로 한계에 도전하는 소리 없는 젊음을 감동적으로 그리고 있다. 사실 스포츠 영화는 단순할 수밖에 없다. 어려운 환경에 놓인 주인공이 목표를 정하고 그걸 이루고자 노력하다 좌절하고 다시 일어서고 결국 꿈을 이루는 것이다. 그러기에 진부할 수도 있고, 혹은 상투적일 수도 있다.
‘글러브’도 이런 스포츠 영화의 틀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전교생 20명뿐인 청심학교에서 9명의 청각장애 학생들이 모여 만든 야구단이 평탄할 리 없다. 1승이 꿈이지만 1점도 내기 힘든 게 현실이다. 그런 그들이 동료애로 똘똘 뭉쳐 야구를 통해 가슴을 열고 세상에 당당하게 나서는 모습은 눈물과 감동을 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글러브 하나만 있어도 행복해하며 마운드에서 온몸으로 환호성을 지르는 그들을 보며 덩달아 행복해진다. 정재영, 유선, 강신일 등 연기파 배우들이 든든하게 이끌어주니 공감은 배가 된다.
경북 경주 출신인 강우석은 중학교 시절부터 영화계를 동경했고, 고등학교 시절에는 영화감독이 공공연히 떠들고 다녔단다. 집안의 반대로 연극영화과에 진학하지 못하고 성균관대 영문학과에 입학했지만 영화판에 ‘팔려’ 중퇴하고 만다. 1980년대 충무로에서 힘든 연출부 생활을 하며 투잡으로 번역을 했다는 그는 ‘아마데우스’ 한글 자막 작업을 하기도 했다.
5년의 조감독 생활을 마치고 그가 첫 연출작으로 선택한 작품은 농촌 총각 결혼을 다룬 ‘달콤한 신부들’이다. 사실 강우석 감독은 현실 참여 의식이 창창한 강경파이 다. 1989년작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는 입시 위주의 공교육환경을 비판했고, 이듬해 연출한 ‘나는 날마다 일어선다’는 고학력 실업자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코미디의 겹을 썼지만 ‘투캅스’는 비리 경찰을 소재로 했고, 실제 사건 진상 규명으로 까지 이어진 ‘실미도’는 북파 간첩을 다뤄 한국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런 그가 문제작 ‘이끼’와는 상반되게 따스하게 엮은 ‘글러브’는 감동을 직구로 받기에 벅차다. 말하고 싶어도 말할 수 없고, 듣고 싶어도 들을 수 없는 청각장애 학생들의 찬란한 성장영화인 것이다. 애써 돌려 말하지 않은 정공법으로 관객들을 울고 웃기는 22년차 감독의 노련함이 돋보인다. 한국 영화 최고의 흥행사 강우석, 그의 대표작 중 하나가 ’글러브‘가 될 것임이 확실하다.
[사진 = 글러브 포스터, 강우석 감독]
함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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