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전직 조폭에게 돈 건넸다' VS '아니다. 일반인에게 건넸다'
한창 시즌에 전념해야 할 자이언츠의 하라 다쓰노리 감독이 야구와 전혀 관련 없는 문제로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해있다. 일본 열도 전체도 하라 감독의 섹스 스캔들로 충격에 빠진 모양새다.
일본 야구계를 이끄는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하라 감독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일본 유력 주간지 '슈칸분슌(週刊文春)'이 21일 발표한 기사가 이번 사태의 발단을 마련했다. 슈칸분슌은 '자이언츠 하라 감독이 전 조직폭력원에 1억 엔 건넸다'는 제목으로 된 기사를 통해, 하라 감독이 선수 시절 한 여성과 불륜 관계를 맺었고 그것이 빌미가 돼 조폭에게 1억 엔의 돈을 갈취당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일본 최고 인기 팀 요미우리의 쟁쟁한 선수들을 이끌어 온 인물이 자신의 추문이 들통 날 것에 전전긍긍하며 1억 엔을 건넸다는 것도 충격적이지만, 돈을 건넨 대상이 기사의 내용대로 조폭이라면 파장은 걷잡을 수 없게 된다.
일본에서 하라 감독은 정의의 사도다. 하라 감독은 경시청이 추진하는 폭력단 추방 캠페인의 메인 모델로 활동하는 등 사회정의 실현을 위해 발 벗고 나서 왔다.
강렬한 눈빛과 다부지게 다문 입모양새를 한 하라 감독의 포스터 사진 밑에는 "폭력단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구호가 적혀있다. 만약 이번 기사 내용이 사실이라면 더 없는 블랙코미디다.
더구나 최근 일본에서는 조폭(야쿠자)과 연관되는 것을 문제시하는 사회분위기가 크게 퍼지고 있다. 지난해까지 일본 최고의 사회자로 활약하던 시마다 신스케가 조폭과의 관계가 알려져 방송계를 은퇴한 바 있다. 그래서 요즘엔 조폭과 조금이라도 연관되는 일은 뭐든지 피하려는 분위기다.
기사가 나오기 전 시점부터 "조폭이라는 증거는 없다", "조폭인지 몰랐다"며 구단 측과 하라 감독이 외치고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 불륜 상대는 숙소 아르바이트생
사건의 시작은 지금으로부터 24년이나 거슬러 올라간다. 하라 감독이 요미우리에서 현역으로 뛰던 시절에 벌인 불륜이 시발점이다.
당시 요미우리는 왕정치 감독 아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현재 요코하마 베이스타스의 감독으로 있는 나카하타 기요시를 비롯해 쟁쟁한 선수들이 포진하고 있었지만, 그 가운데 가장 빛났던 인물은 단연 4번 타자였던 하라 감독이었다.
"하라 감독은 81년 자이언츠에 입단해 신인왕을 획득했다. 3년 차에는 팀의 우승에 크게 공헌했고, 그 해 MVP로도 선출되는 등 순조로운 야구 인생을 걸어왔다. 86년에는 5살 연하의 아키코 부인과 결혼. 88년에는 장남을 출산하는 등 야구 외의 인생에서도 순조로운 모습이었다"
그러나 이처럼 행복했던 시절, 하라 감독은 아내가 아닌 한 여성과의 관계로 심적 고통을 안고 있었다고 한다. 불륜 상대는 자이언츠팀이 숙박소로 자주 이용했던 호텔에서 아르바이트로 일했던 여성.
잡지는 당시 호텔 스태프의 증언을 인용, "선수들의 식사나 서포트를 담당했던 그 여성은 당시 20대 후반으로 귀여운 이미지를 가지고 있던 것으로 기억한다. 6년 정도 일했는데 선수들로부터도 인기가 높았다. 하라 감독과의 교제한다는 소문이 돌았다"고 밝혔다.
이번 사건의 제보자는 하라 감독이 그녀와의 일을 해결하기 위해 돈을 주었다는 소문을 들었다고 증언했다. 그러나 그 후에도 그녀는 하라 감독에 대한 마음을 단념하지 않았고, 하라 감독과의 교제에 대해 고민했다고 한다.
그러던 중 95년 고베대지진이 일어났다. 이 호텔(효고 현에 소재)도 피해를 입어 일시 휴업에 들어가게 됐고 다시 개업을 위해 스태프들이 모였을 때는 그녀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됐다.
이때를 기점으로 하라 감독과 그녀 사이의 일은 영원히 봉인되는 듯이 보였다. 그런데 그 봉인이 생각지도 못한 모양으로 해제됐다는 것. 하라 감독과의 일을 적은 그녀의 일기가 등장한 것이다.
◆불륜 내용 적힌 일기가 존재
잡지는 제보자의 말을 인용, "사실 그녀는 그 당시의 감정을 일기에 극명하게 기록했다. 일기에는 하라 감독과의 교제를 고민한 그녀가 하라 감독의 팀메이트에게 상담을 했던 내용까지 적혀있다고 한다. 그녀는 그 후 사라졌지만, 일기가 집에 남아있었고 그녀의 룸메이트였던 여성의 손을 거쳐 폭력단 관계자에 넘어갔다"며 일기가 조폭에 넘어간 과정을 설명했다.
하라 감독의 휴대전화에 한 통의 전화가 온 것은 약 20년이 지난 뒤였다. 하라 감독은 95년 현역에서 물러나 2002년 처음으로 자이언츠의 감독에 취임했지만, 구단 측과의 불화로 사임한 뒤 2006년 재취임했다. 전화는 이때 걸려 왔다.
"하라 감독에 있어 중대한 이야기가 있다. 당신의 이전 스캔들 이야기다. 만나서 이야기하자"는 내용이었다고 한다. 하라 감독은 전화 상대와 만난 자리에서 일기의 복사본을 건네받았다.
상대는 "일기가 공개돼 야구계에서 하라 감독이 사라지게 되면 큰일이다. 일기가 세상밖으로 나오지 않게 내가 해결할테니 맡겨달라. 그러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며 손가락 한 개를 펼쳐 보였다.
하라 감독이 요구받은 금액은 1억 엔. 20여 년이 지난 일기의 가격치고는 너무 비싸다. 그러나 당시 하라 감독은 재취임한 첫해였고 팀은 우승 경쟁에서 멀어져 있었다. 원래라면 구단 측이나 경찰에 알려야 하겠지만, 이 같은 상황 때문에 말도 안 되는 금액을 지불한 것으로 보인다고 잡지는 분석했다.
"실제 돈을 건넸던 것은 매니지먼트 회사. 협박 상대는 돈을 받고 그 자리에서 일기를 교환했다. '에이트코포레이션'이라는 이름으로 영수증도 끊었다"고 1억 엔과 일기가 교환됐던 당시를 자세히 설명했다.
일단 사건은 이로써 마무리된 듯 보였다. 그러나 3년 후인 2009년 요미우리 구단 측에 전화가 걸려오면서 하라 감독의 스캔들이 다시 불거졌다.
"하라 감독에 건넸던 일기를 돌려달라. 일기는 원래 내가 가지고 있던 것이다. 일기에는 요미우리 선수와 그 여성과의 관계가 기록돼 있다. 돌려주지 않으면 큰 소동을 일으키겠다"는 내용이었다.
잡지는 구단을 협박한 상대에 대해 자세하고 길게 설명하고 있는데, 요약하자면, 이전 하라 감독을 협박해 돈을 갈취한 2명 중 1명과 관계가 깊은 조폭이라는 이야기다. 물론 그 2명도 조폭과 어떤 관계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구단 측은 즉시 하라 감독을 불러 사정을 물었고 과거 성추문과 2006년 공갈 사건의 전말을 파악했다.
협박범의 공갈은 약 8개월이나 지속됐다. 그러던 중 2009년 12월, 이 협박범이 자이언츠 사무실이 있는 빌딩 노상에서 휴대용가스와 휘발유가 든 병을 들고 "폭탄을 들고 있다. 이곳에서 할복하겠다" 등을 외치며 위협 행위를 반복했다.
잡지는 "현행범으로 체포된 범인은 징역 1년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지만, 공판에서는 하라 감독의 이름은 물론 범행 동기가 되는 하라 감독의 성추문이나, 2006년의 공갈 사건에 관해 일절 언급되지 않았다"며 구단이 어떤 경로를 통해 이 사건을 조용히 마무리 짓는 데 성공했다고 전했다.
◆ 하라 감독 "돈 건넨 것 사실이나, 조폭에게 건네진 않았다"
요미우리 구단 측은 기사가 나오기 전인 20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자리에서 구단은 하라 감독의 불륜 사실과 1억 엔의 돈 갈취에 대해서 실제 있었다고 인정하면서도 돈을 건넨 상대가 조폭이라는 증거는 없다고 주장했다. 슈칸분슌을 상대로 법정싸움도 불사하겠다는 자세다.
하라 감독도 같은 날 해명서를 통해 자신의 괴로운 심정을 토로하고 불륜 사실을 인정했지만, 돈을 건넨 상대가 "조폭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기사에서는 하라 감독을 협박한 무리나 구단 측에 공갈 행위를 벌인 범인이 모두 조폭이거나 조폭과 관련된 일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일본 최대 야쿠자 조직인 야마구치 (山口組)파와의 관련성까지 언급했다. 그러면서 하라 감독이 지난 2009년 경시청이 실시한 폭력단 추방 캠페인에서 주연 모델이었던 점도 강조했다.
하라 감독의 스캔들이 조폭이냐 아니냐로 초점이 맞춰져 가는 양상이지만, 진위야 어찌 됐든 하라 감독이 스캔들 무마용으로 1억 엔을 지출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는 것이 일본인의 반응이다. 불륜에다가 스캔들 무마, 그리고 조폭 연루설까지, 하라 감독의 명예는 이미 땅에 떨어졌다. 이번 일로 요미우리 구단에는 비난전화가 쇄도했다고 한다.
하라 감독은 기자회견에서 자신의 스캔들이 이렇게 큰 파문이 일고 있는 데 대해 반성의 뜻을 밝혔다.
또한, 리그가 곧 시작되는 가운데, 하라 감독은 코치와 선수단 및 구단관계자 전원을 불러놓고 이례적인 사죄 미팅을 가졌다. 그는 감독직 유지 의사를 간접적으로 내비친 바 있어, 리그 개막을 앞두고 어수선한 팀 분위기를 정리하기 위해 이 같은 사죄 자리를 마련한 것으로 보인다.
이후 그는 "나는 이미 앞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고 밝히며, 스캔들은 이쯤으로 하고 리그에만 집중한다는 의사를 밝히고 있다.
전례없는 대형 스캔들의 한복판에 서 있는 하라 감독. 그에 대한 세간의 차가운 시선은 계속되고 있다. 과연 그가 이러한 시선을 견디며 전화위복의 계기를 만들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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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보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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