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야구
[마이데일리 = 김진성 기자] 임창용의 위대한 도전이 시작됐다.
시카고 컵스 임창용(37)이 25일 애리조나 루키리그서 LA 에인절스를 상대로 선발등판했다. 1이닝 3피안타 2실점을 기록했다. 야쿠르트 소속이었던 지난해 6월 22일 요미우리전 이후 약 1년만의 실전등판이었다. 기록이 아닌, 실전 등판 자체에 의미가 있다. 지난해 7월 5일 팔꿈치 수술 이후 재활이 마무리 단계에 돌입했다고 보면 될 것 같다.
컵스는 임창용이 일본에서 최고의 활약을 펼칠 때부터 호감을 가졌다고 한다. 이에 재활에 물심양면 도움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임창용도 컵스의 호의에 마음이 움직여 계약서에 사인을 했다. 2년 최대 500만 달러(약 54억원) 스플릿 계약. 어마어마한 돈이 오가는 메이저리그에 이 정도 계약은 뉴스거리도 안 된다. 하지만, 임창용의 도전은 그 자체로 남다르다.
▲ 2007~2008년과 닮은 요즘… 오뚝이 인생
임창용은 삼성시절이었던 2005년 선동열 감독 부임 후 부진의 늪에 빠졌다. 시즌 도중 팔꿈치 수술을 받고 재활에 임했다. 2007년엔 스윙맨으로 나섰으나 전성기 기량을 회복하지 못했다. FA 2년 계약이 끝났으나 다시 FA 자격이 주어지지 않은 상황. 임창용은 삼성에서 임의탈퇴를 하고 일본 진출을 택했다. 새로운 환경에서 새롭게 도전하고자 하는 열망이 강했다. 삼성도 흔쾌히 동의했다.
야쿠르트와 2년 1500만엔(1억 2400만원)계약을 맺었다. 헐값이었다. 직전까지 한국에서 받았던 5억원보다도 적은 금액이었다. 모두가 의문의 시선을 보냈다. 한국에서도 구위가 떨어져 통타를 당했는데 일본에서 잘 풀리겠느냐는 반응. 하지만, 임창용은 해냈다. 2008년 셋업맨으로 출발했으나 마무리 이가라시 료타의 부상으로 곧바로 마무리 자리를 꿰찼다. 기적처럼 강속구를 회복했다. 이후 지난 5년간 128세이브를 따내며 일본 최고의 마무리로 군림했다. 2009시즌 후 몸값은 3년 14억 2000만엔(약 197억원)으로 뛰어올랐다.
2012년 다시 팔꿈치 통증으로 수술을 받은 임창용. 야쿠르트에서 방출당한 뒤 메이저리그 도전을 선언했다. 임창용의 재기 의지가 대단하다. 컵스도 임창용의 재활 과정을 신중히 체크하면서 빅리그 마운드에 올릴 계획이다. 마침 컵스엔 기존 마무리 후지카와 규지가 팔꿈치 수술로 이탈한 상황. 5년 전과 지금 상황이 묘하게 비슷하다. 물론 임창용이 5년 전 성공을 거뒀다고 해서 메이저리그에서도 똑같이 성공할 것이란 보장은 없다. 다만, 5년 전 아무도 해내지 못할 것이란 일본 무대 평정을 보란 듯이 해냈기에 이번엔 기대가 크다.
▲ 메이저리그 도전 출발지점이 다양해졌다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활발하게 활동한 박찬호, 서재응, 김선우, 김병현, 최희섭을 한국인 메이저리거 1세대로 칭할 수 있다. 이후 약간의 텀을 두고 메이저리그에 도전한 추신수, 류현진은 메이저리거 2세대로 명명하면 될 것 같다. 임창용이 만약 순조롭게 재활을 마친 뒤 빅리그 마운드에 선다면 역시 메이저리거 2세대다. 나이와 연배로는 1세대에 들어가야 맞지만, 도전에 시기가 따로 정해진 건 아니다.
메이저리거 1세대들과 2세대들의 결정적인 차이점은 무엇일까. 바로 메이저리그에 안착한 방법이다. 박찬호는 한양대를 중퇴하고 그야말로 홀홀단신, 좀 심하게 말해 맨땅에 헤딩하는 심정으로 메이저리그를 개척한 선구자다. 이후 줄줄이 빅리그를 밟았던 김병현, 서재응, 김선우, 최희섭 역시 모두 고등학교 졸업 혹은 대학 중퇴 및 졸업 이후 국내구단에 입단하지 않고 마이너리그를 거쳐 메이저리그에 입성했다. 이들에게 마이너리그 ‘눈물 젖은 빵’은 일종의 통과의례였다.
메이저리그 2세대들은 다를 조짐이다. 추신수 역시 1세대와 동일한 방식으로 새애틀 마이너리그에서 몇 년간 수련을 거친 뒤 빅리그에 데뷔했다. 하지만, 류현진은 한국프로야구를 거쳐 메이저리그에 직행한 최초의 선수다. 또 임창용의 경우 한국과 일본에서 수술, 임의탈퇴와 방출을 당한 뒤 마이너리그를 거쳐 메이저리그에 도전하는 최초의 선수다. 이상훈, 구대성처럼 한일프로야구를 거치긴 했으나 확실히 좀 다른 케이스다.
▲ ML 풀타임 마무리 도전, 누군가에겐 희망이다
1990년대엔 고교 졸업 후 메이저리그 도전이 보편화 됐다. 이젠 패러다임이 달라지고 있다. 물론 지금도 마이너리그엔 고교 졸업 후 메이저리그에 도전하는 수 많은 선수가 있다. 하지만, 류현진도 있고, 임창용의 케이스도 있다. 무엇이 옳으냐를 묻는다면 정답은 없다. 다만, 더 많은 한국선수가 다양한 방법으로 세계 최고의 야구리그인 메이저리그에 도전한다는 것 자체가 의미가 있다.
또 하나. 아직 한국인투수가 메이저리그 풀타임 마무리로 롱런한 사례가 없다. 물론 김병현이 애리조나와 보스턴 시절 마무리로 명성을 떨치며 월드시리즈 반지까지 꼈다. 하지만, 김병현은 끝내 선발투수의 꿈을 이루고 한국으로 유턴했다. 임창용은 내년 39세의 나이에 빅리그 풀타임 마무리에 도전한다. 좀 해보다 잘 안 풀릴 경우 은퇴할거라면 애당초 지난해 수술을 받지도 않았을 것이다.
가능성은 반반이다. 풀타임 마무리는커녕 빅리그 적응에도 실패할 수 있다. 마무리 경쟁을 뚫지 못할 수도 있다. 일본에서의 성공이 메이저리그 성공을 보장해주진 않는다. 하지만, 일각에선 임창용이 재활 후 150km가 넘는 뱀직구를 회복한다면 그 자체로 희귀한 케이스로 인정받아 빅리그에서 통할 수 있다는 전망도 흘러나온다.
가장 중요한 건 임창용의 도전정신 그 자체다. 임창용은 메이저리그를 꿈꾸는 수많은 유망주들에게 이런 방법도 있다는 걸 몸소 보여주고 있다. 세계 최고무대에 도전하는 선택지가 늘어났다. 다시 말해 한국야구가 더 많은 이야깃거리, 더 다양한 경험을 통해 성장할 수 있다는 의미다. 그런 점에서 두 차례 재활을 거친 임창용 케이스는 그 자체로 뜻 깊다. 재활 중인 투수의 메이저리그 풀타임 마무리 도전. 1년만의 실전등판은 그 위대한 첫 발걸음이었다.
[임창용. 사진 = 마이데일리 사진 DB]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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