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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학 감독의 죽음은 개인의 문제인가?
2005년부터 시작된 영화산업의 침체는 혹독한 구조조정을 거치면서 2007년 저점 통과, 2008년부터 회복단계로 접어들어 지금은 다시 상승무드다. 작년에는 관객 천만을 돌파한 영화가 두 편이나 된다. 반면 TV는 출연료, 작가료의 상승으로 상위라인의 비용에 엄청난 압박을 받고 있는 중이다. 현재 외주제작사들은 심각한 경영난을 겪고 있으며 문을 닫는 회사들이 늘고 있다. PD들은 이 상황을 폭탄 돌리기 게임에 비유한다. 언제 어디서 터질지 모르는 시한 폭탄을 들고 살얼음판을 걷고 있는 것이 지금의 드라마 제작시장이다. 그리고 이미 드라마 산업은 붕괴하기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수퍼 갑으로 불리는 지상파도 사실은 매우 힘든 상황이다. 뉴미디어의 약진과 경기 침체로 광고시장이 위축된 데다 HD제작과 디지털화로 기술, 미술 부문에 지속적인 비용이 발생하면서 경영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는 것이다.
열심히 일할수록 손해다.
JS픽쳐스의 이진석 대표는 MBC 연출자 출신으로 비교적 성공적으로 제작자로의 변신에 성공한 케이스다. 어느 해 연말에 그와 나눈 술자리에서의 대화를 아직도 나는 잊지 못한다. 그해 JS픽처스는 지상파에만 5~6편을 제작, 방송해 대부분 히트했으나 연말에 결산해보니 30억의 적자가 발생했다. 차라리 아무런 일 하지 않고 전 직원이 일 년간 팽팽 놀았다면 경상비 20억만 적자보고 끝났을 것이다. 결국 뼈 빠지게 일하고 10억을 더 까먹었다. 그해 유상증자로 30억 못 메꿨으면 아마 회사 문 닫았을 것이다. 그는 이제 해외 판권 등 저작권을 보전 안 해주면 이 일도 곧 그만둘 수밖에 없다며 현행 외주제작 구조에 대한 원망을 토로했다. 이런 상황에서 김종학 감독은 처음으로 해외 판권을 지상파에 넘겨주지 않고 저작자의 권리를 수호한 최초의 감독이다. 그리고 그 작품이 바로 태왕사신기였고, 해외 판권을 넘겨주지 않으면 편성을 해 주지 않겠다는 SBS를 뒤로 하고 MBC로 방송테이프를 들고 가는 용기를 발휘했던 것이다.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은 생전에 계열사 임원들에게 이런 말을 자주 했다고 한다. “눈 올 때는 마당 쓸지 마라” 시장 상황이 나쁠 때는 신규투자를 하지 말라는 이야기일 것이다. 지금 드라마 시장에 관한한 한국은 눈 오는 상황이다. 그리고 이 눈은 10년 전부터 내리기 시작해 눈발이 점점 거세지고 있다.
김종학PD의 죽음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예산을 확보하고 배정하는 과정에서 A/L비용과 B/L비용의 균형을 잡는 일은 대단히 중요하다. 그리고 이 일은 전적으로 기획자의 몫이다. 노련한 기획자는 시놉만 보고도 대략의 제작비를 계산해낸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쳐서 모두가 피해자가 되느냐, 적절한 안배를 통해 파이를 키움으로서 그 혜택이 모두에게 돌아가게 하느냐는 전적으로 기획자의 능력에 달려 있다. 작가, 감독, 배우, 스텝 등 제작 관련자들에게 있어서 좋은 기획자를 만나는 일은 대단히 중요하다. 한국 영상산업은 기획자의 손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는 어제 한국 영상산업을 지탱해 오던 위대한 기획자를 한 사람 잃었다. 그의 죽음을 계기로 우리 드라마 산업의 문제가 특정 직종이나 조직, 혹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임을 모두가 인식하고, 이 모순투성이의 외주제작 구조가 극복되고, 한국 영상산업을 다시 일으키는 공론의 장이 활발하게 펼쳐지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그것만이 평생을 드라마에 몸 바쳐 온 한 거장의 죽음을 헛되지 않게 하는 길일 것이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 성준기 교수는 ? KBS에서 드라마게임 '우리 동네 면장님'(1992)으로 드라마 연출가로 데뷔해 '밥을 태우는 여자'(1994) '숨은 그림 찾기'(1994)를 연출했고, 이후 SBS로 옮겨 '옥이이모'(1996 백상예술대상 연출상), '달팽이'(1998 백상예술대상 작품상), '은실이'(1998 한국방송PD협회 이달의 PD상) 등을 연출했다. 가장 최근에는 2007년 '가정의 달' 특집극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몇가지 질문'을 연출, 한국불교 언론문화상을 수상했다. 현재 동아방송예술대학교 콘텐츠학부장으로 재직중이다.
[故 김종학 PD(왼쪽). 사진 = 사진공동취재단]
김세호 기자 fame@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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