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마이데일리 = 안경남 기자] 홍명보 감독의 실험은 페루전에서도 계속됐다. 그는 예고대로 미드필더와 수비는 기존 틀을 유지한 채, 2선에 변화를 주며 골을 노렸다. 물론 기대했던 골은 터지지 않았다. 이근호(상주)가 시도한 2번의 찬스는 상대 골키퍼의 신들린 선방에 막혔고 윤일록(서울), 조찬호(포항)의 잇따른 슈팅도 골문을 빗나갔다. 하지만 실험이란 측면에서 페루전은 매우 유의미했다. 2선의 다른 옵션을 찾았고 3년 간 넘버원 자리를 지킨 정성룡(수원)에게 긴장감을 불어 넣었다. 또한 4백 수비는 4경기 중 3번째 무실점을 기록했다. 날개 없는 선풍기를 만든 영국 출신의 디자이너 제임스 다이슨은 “계속해서 실패하라. 그것이 성공에 이르는 길이다”고 했다. 홍명보 감독은 팀을 만들어가고 있다.
▲ 홍명보호2기① l 포메이션
기본은 동아시안컵과 같은 4-2-3-1 포메이션이었다. 하지만 미드필더보다 스트라이커에 가까운 이근호가 들어오면서 4-4-1-1 또는 4-4-2의 형태를 띠기도 했다. 어쩌면 이것이 페루전서 홍명보 감독이 원했던 그림인지도 모른다. 동아시안컵서 한국은 윤일록을 제외하곤 상대 페널티박스 안으로 침투하는 움직임이 부족했다. 김동섭(성남)은 고립됐고 이승기(전북), 고요한(서울)은 박스 밖을 맴돌았다. 이근호는 그런 부분을 채워줄 수 있는 선수였고, 실제로 상대 박스 안에서 여러 차례 슈팅 기회를 잡았다.
▲ 홍명보호2기② l 이근호와 조찬호
이근호와 조찬호는 홍명보호 1기와는 다른 옵션을 제공했다. 이근호는 이승기보다 좌우로 움직이는 활동 폭이 훨씬 넓었다. 이승기의 활동량이 적었다는 얘기는 아니다. 이승기는 동아시안컵서 상당히 많이 뛰며 전방부터 강한 압박을 시도했다. 다만, 좌우에 포진한 윤일록, 고요한에 대한 지원이 고르진 못했다. 윤일록과는 포지션 체인지가 잦았지만 고요한과는 그러지 못했다. 반면 이근호는 좌우를 가리지 않았다. 이근호가 우측으로 빠지면 조찬호가 중앙으로 들어왔고, 좌측으로 빠지면 윤일록이 안으로 쇄도했다. 조찬호는 이런 이근호의 움직임 덕을 가장 많이 본 선수였다. 조찬호가 68분을 뛰며 시도한 슈팅 3개가 모두 상대 페널티박스 정면에서 나온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하지만 조찬호 역시 이근호, 윤일록이 그랬듯이 마무리가 부족했다.
▲ 홍명보호2기③ l 하대성
부상으로 51분밖에 뛰지 못했지만 존재감은 확실했다. 좀 더 과장하자면, 하대성(서울)이 보이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였다. 그라운드 곳곳에서 하대성이 보였다. 여유가 넘쳤다. 경기 템포를 자유자재로 조율했고 무엇보다 수비적으로 상당한 기여를 했다. 가장 인상적인 건 상대의 볼을 끊어낸 뒤 볼을 전개하는 능력이었다. 전반 1분 페루의 볼을 빼앗아 조찬호에게 연결한 장면과, 전반 36분 슈팅하는 척 하면서 쇄도하는 윤일록에게 찔러준 패스가 대표적이다.
▲ 홍명보호2기④ l 김승규
2번의 슈퍼세이브가 김승규(울산)를 돋보이게 만든 경기였다. 정성룡을 대신해 깜짝 선발 출전한 김승규는 전반 43분 요툰과 후반 39분 피사로의 슈팅을 쳐내며 축구 팬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사실 좀 더 많은 부분을 평가하기에는 페루의 슈팅(총6개)이 부족했다. 그러나 준비 시간이 48시간 밖에 되지 않았음에도 수비라인과의 호흡이 무난했고 세트피스에서의 위치 선정도 안정적이었다. 물론 한 경기만으로 김승규가 정성룡을 앞선다고 보긴 어렵다. 그러나 경쟁의 도화선이 된 것은 사실이다. 홍명보 감독은 지난 런던올림픽 4강전서 정성룡이 부상으로 빠지자 브라질에 3골을 허용했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
▲ 홍명보호2기⑤ l 더블스쿼드 4백
김영권(광저우)이 빠졌지만 4백 수비에 흔들림은 없었다. 홍정호(제주)는 황석호(히로시마)와 좋은 호흡을 보였고, 측면에 포진한 이용(울산)과 김민우(사간도스)도 무난한 활약을 펼쳤다. 홍명보 감독은 지금까지 4경기를 치르면서 번갈아 수비에 변화를 줬다. 선발을 기준으로 대부분 2경기씩 기회를 잡았고 홍정호만이 3경기를 뛰었다. 잦은 수비 변화는 조직력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우리는 이전의 최강희호에서 그런 점을 눈으로 확인했다. 하지만 홍명보 감독은 ‘선수’에 변화를 주지 않는 대신 ‘조합’에 변화를 주며 4백 수비에 더블스쿼드를 장착시키고 있다. 이는 지난 런던올림픽에서도 효과를 봤다. 홍정호의 갑작스런 부상에도 다른 조합으로 한국은 탄탄한 수비로 동메달을 거머쥘 수 있었다.
[그래픽 = 안경남 knan0422@mydaily.co.kr]
안경남 기자 knan0422@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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