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마이데일리 = 김진성 기자] 이승엽의 진짜 가치는 무엇일까.
타율 0.297 25홈런 82타점. 이승엽이 완벽하게 이승엽으로 돌아왔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이승엽은 야구 팬들에게 국민타자다. 선수생활의 마지막 날까지도 슈퍼스타로 기억될 것이다. 그런데 수식어는 항상 같지만, 1990년대와 2000년대, 2000년대와 2010년대 이승엽은 분명 다르다. 2014년 이승엽이 제2의 전성기를 맞이했다고 해도, 분명 현역 황혼기에 들어섰다. 홈런 56개를 뻥뻥 때렸던 2003년 화려한 이승엽이 아니다. 그래서 2014년 이승엽을 재해석해볼 필요가 있다. ‘이승엽=홈런’이란 말로 단순화하기엔 의미가 깊고 크다. 알고 보면 2014년 이승엽이 과거의 이승엽보다 더 빛나는 부분도 많다.
▲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인간은 젊을수록 패기 있고 용감한 법이다. 나이를 먹으면 변화와 새로운 도전을 주저하기 마련이다. 야구선수도 사람이다. 베테랑들은 자신만의 야구 가치관이 뚜렷하다. 신체적 기능이 노쇠화하는데도 쉽게 변화하려고 하지 않는다. 자신의 틀 속에서 제한적 변화만을 꾀한다. 새로운 도전이 두렵다. 몸이 예전같지 않아 젊었을 때보다 2배 이상의 에너지가 소모된다. 그러다 도태돼 유니폼을 벗는 수순을 밟는다.
지금도 대부분 타격 누적기록 1위를 점령 중인 레전드 양준혁은 현역시절 변화를 마다하지 않았다. 30대 중반에 개발한 만세타법으로 40대 초반까지 화려하게 현역생활을 했다. 그런 양준혁도 이승엽의 변신에 혀를 내둘렀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양준혁은 은퇴 이후 수 차례 “이승엽은 홈런 54개를 쳤는데 폼을 바꾸더라. 그후 홈런 56개를 쳤다”라고 회상했다. 자신의 틀을 깨고 또 깨며 전설이 된 양준혁이 인정한 선수가 이승엽이다.
양준혁이 혀를 내둘렀을 땐, 이승엽은 전성기였다. 지금 이승엽은 당시 양준혁처럼 베테랑이 됐다. 정말 놀라운 건 이승엽이 그 당시나 지금이나,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올 시즌 이승엽은 타격 준비자세에서 배트를 꼿꼿이 세웠다가 눕히면서 배트가 공에 반응하는 시간을 줄였다. 살짝 무뎌진 스윙스피드를 보완하기 위한 조치. 이는 지금까지 잘 알려진 이승엽의 기술적 변화다. 작지만, 큰 변화로 성적이 업그레이드 됐다.
▲ 레전드의 불만
타격폼은 컨디션과 집중력, 환경적 변수에 따라 매 경기 미세하게 변한다. 그 폭이 커지면 슬럼프가 찾아오게 돼 있다. 이승엽이 올 시즌 부활했지만, 기본적으로 파워가 예전만 못한데다 기술적 밸런스 붕괴로 좋지 않은 타격을 한 날도 많았다. 타자라면 누구나 잘 치는 날보다 못 치는 날이 더 많다. 중요한 건, 이승엽이 이걸 참지 못했다는 것이다. 올 시즌 이승엽은 유독 만족스럽지 못한 타격을 한 날 억울해한 뒤, 다음 경기서 보란 듯이 살아난 경우가 많았다. 기존에 자신의 것을 버리고 새로운 것을 취하는 것에 주저하지 않았다. 그 출발선상에 ‘불만’이 자리했다. “옛날 같지 않으니까 못하는 게 당연해”라는 핑계는 이승엽에게 통하지 않는다.
알고보면 이 역시 대단한 일이다. 자포자기 혹은 당황하는 게 아니라 끝없이 불만을 품고 변화를 갈망했다. 야구선수라면 누구나 이런 필요성과 과정을 겪지만, 이승엽은 결과로 확실히 보여주고 있다. 그것도 내일모레 불혹인 베테랑 타자의 그것이라 더 대단하다. 이승엽이 2003년 전성기와 2014년 황혼기 모두 국민타자 소리를 듣지만, 사실 2014년은 2003년 이상으로 치열하게 매 경기를 준비 중이다. 그래서 2014년 이승엽 가치가 크다.
▲ 베테랑의 교과서
이승엽은 엄격히 말하면, 덕아웃 리더 형은 아니다. 덕아웃에서 동료를 향해 떠들석하게 박수를 치거나, 미팅을 소집해 후배들에게 격려 혹은 잔소리를 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그저 자신이 할 일에 충실하고 결과로 보여주면서 후배들에게 말 없는 귀감이 될 뿐이다. 올 시즌 이승엽의 부활을 많은 후배들이 지켜봤다. 모두 이승엽에게 존경을 표한다.
오히려 이런 리더가 묵직한 법이다. 이승엽은 스스로 베테랑이 사는 법을 프로야구에 제시했다. 가까이엔 삼성 선수들이 이승엽의 부활을 지켜보면서 느끼는 바가 컸을 것이다. 류 감독도 평상시 “젊은 선수들이 이승엽같은 베테랑에게 보고 배우는 게 크다”라고 강조한다. 양준혁에 이승엽까지. 삼성 선수들은 무형의 가르침을 받았다. 좋은 참고서로 삼는다면, 삼성엔 앞으로도 더 좋은 선수가 나올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 베테랑 이승엽의 숨은 의미다.
▲ 풍부한 스토리텔링
이승엽의 옛날과 지금을 쭉 살펴보면, 한편의 드라마다. 희로애락이 모두 들어있다. 56호 홈런, 심정수 우즈와의 세기의 홈런 맞대결, 국제대회 8회의 사나이, 요미우리 시절의 영광과 좌절, 지난해 최악의 부진 등 무수한 키워드가 존재한다. 단순히 홈런 그 자체만을 언급하기엔 에피소드가 너무나도 풍부하다.
이야깃거리가 많으면, 팬들을 끌어 모으기 쉽다. 프로야구라는 거대한 드라마에 무궁무진한 스토리를 제공한 선수가 이승엽이다. 이승엽을 보고 야구선수의 꿈을 키운 선수와 팬은 무궁무진하다. 이승엽이 훗날 은퇴하면 전설로 추억될 것이다. 그 조차도 이야깃거리다. 이승엽이 그동안 유, 무형으로 한국야구에 기여한 바는 엄청나다. 이승엽은 프로야구 최고의 스토리텔링 도구다.
‘이승엽=홈런’ 이란 수식어는 이젠 너무나도 단순한 접근이다. 진부할 정도다. 그의 진짜 가치를 하나 하나 풀어보면, 그동안 이승엽은 한국야구에 참 많은 것들을 남겼다. 그가 훗날 야구계를 떠나더라도 영원히 한국야구를 추억으로 수놓을 수 있는 이유다.
[이승엽. 사진 = 마이데일리 사진 DB]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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