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구/NBA
[마이데일리 = 김진성 기자] 결국 최강팀들은 통한다.
여자프로농구 우리은행이 지난달 30일 KB를 잡고 개막 9연승을 달성했다. 4일 최하위 하나외환을 잡아낼 경우 단일시즌 개막 최다 10연승 신기록을 세운다. 우리은행은 역대 최다 15연승(삼성, 2003년 겨울리그)에도 도전한다. 아직 먼 얘기지만, 그 고지를 넘으면 2008-2009시즌 단일시즌 최다 19연승(신한은행), 2008-2009시즌, 2009-2010시즌 최다 23연승(신한은행)에 도전할 기회를 잡는다.
우리은행의 기록도전이 긍정적인 건 나머지 5개구단을 압도하는 전력 덕분이다. 통합 3연패에 도전하는 우리은행은 지난 두 시즌에 비해 전력이 더 강해졌다. 반면 나머지 5개구단은 각종 악재와 변수로 우리은행을 전혀 견제하지 못하고 있다. 상황은 좀 다르지만, 우리은행의 독주와 남자프로농구 모비스의 선두질주에 묘한 공통점이 있다. 모비스는 우리은행만큼 압도적인 레이스를 펼치지는 못하지만, 승부처를 버텨내는 힘은 10개구단 중 가장 강력하다.
▲완벽한 시스템 농구
모비스와 우리은행의 가장 중요한 공통점은 확고한 시스템 농구. 기본적으로 KBL, WKBL 16개구단 모두 수비조직력을 강조한다. 일단 실점을 줄여야 흐름을 장악할 가능성을 높이고, 경기 흐름을 장악하면 세밀한 공격 패턴과 게임플랜으로 승부를 볼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런데 이론과 실전이 다른 경우가 많다. KBL은 54경기, WKBL은 35경기 정규시즌 체제. 장기레이스 속에서 변수가 너무나도 많다. 상대 팀들의 전력 및 전술 가변성, 부상, 기량 발전 혹은 쇠퇴로 인한 내부적 전력 가변성, 심지어 각 팀들의 훈련량과 효율성 등에 따라서도 팀 전력이 변화한다. 비 시즌에 세웠던 세부적인 계획이 막상 실전서 통하지 않을 때가 분명히 있다.
유재학 감독과 위성우 감독은 비 시즌 대표팀 지휘로 나란히 소속팀을 비웠다. 그러나 두 감독은 철저한 시즌 플랜 수립, 코치들과의 완벽한 호흡으로 실전서 부작용을 최소화했다. 두 팀은 나란히 지난 두 시즌 연속 챔피언결정전 정상에 올랐다. 그러면서 새 시즌 돌입 전 기본적인 전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저력을 키웠다. 여기에 두 감독이 비 시즌 코치들에게 세밀한 계획을 지시하면, 코치들이 이행하는 방식으로 시스템 농구를 최종적으로 완성했다. 모비스 김재훈 코치가 그랬고, 우리은행 박성배 코치가 그랬다. 때문에 두 팀은 어떤 상황에서도 좀처럼 수비조직력이 무너지지 않는다. 지역방어와 대인방어 모두 누가 들어가더라도 완벽에 가깝게 이행할 준비가 돼 있다.
물론 두 팀 선수들 개개인은 약점이 있다. 특히 주전들에 비해 식스맨들이 그렇다. 모비스 송창용 전준범은 올 시즌 공격력과 수비력 모두 일취월장했지만, 세부적인 테크닉에는 약점이 있다. 그러나 유재학 감독은 이런 약점을 철저하게 정해진 조합과 최적의 구성으로 극복한다. 우리은행은 이선화 김소니아 김은경 등이 빠졌지만, 김단비 이은혜 박언주 강영숙을 상황에 맞는 스페셜리스트로 만들어놓았다. 탄탄한 매뉴얼로 수비조직력을 극대화해 시스템 농구의 근간을 다졌다.
공격에선 상대적으로 에이스에게 의존하는 경향이 강하다. 모비스는 문태영, 우리은행은 샤데 휴스턴이 승부처에서 강인한 결정력을 뽐낸다. 그러나 두 사람이 팀의 공격 밸런스를 깨는 일은 절대로 없다. 유 감독은 “태영이의 결정력이 높지만, 우리는 한 사람이 볼을 오래 갖고 있는 농구를 하지 않는다”라고 했다. 수 많은 움직임과 스크린을 통해 빈틈을 만들고, 찰나의 틈을 문태영이 공략한다. 최근 문태영은 부상으로 경기에 나서지 못한다. 모비스가 지난달 29일 전자랜드에 연장접전 끝 패배한 것도 결국 승부처 문태영 공백이 있었다. 그러나 전체적인 대세가 흔들린다고 볼 순 없다. 모비스는 승부처에서 수많은 움직임과 수 많은 패턴을 활용해 결정력을 높인다. 이 과정에서 양동근, 함지훈, 리카르도 라틀리프 등의 장점을 극대화시킨다.
우리은행은 휴스턴의 승부처 볼 소유가 모비스 문태영보다 상대적으로 많다. 그러나 흔들리지 않는다. 일단 선수단 장악이 탁월한 위성우 감독이 휴스턴과 끊임없이 강온전략을 펼친다. 때로는 혼도 내고, 때로는 격려하며 휴스턴의 장점을 뽑아낸다. 그리고 박혜진 임영희 이승아 양지희의 공격력을 최대한 활용한다. 우리은행이 인상적인 건 국내선수 4인방의 수비력은 물론, 공격 테크닉도 시즌을 거듭할수록 좋아진다는 점. 포스트업 능력을 완벽하게 구축한 양지희, 3점포를 장착한 이승아가 그렇다. 휴스턴의 볼 소유가 높은 게 사실이지만, 상대 입장에선 휴스턴만 집중 봉쇄할 수 없다. 모비스와 우리은행 모두 승부처에서 효율적인 패스게임과 공간창출에 능하다. 에이스 1명에게 의존하는 것 같아도, 결국 팀 밸런스는 유지된다. 시스템 농구의 실체다.
▲만수를 닮아가는 위성우 감독
유재학 감독과 위성우 감독은 사제지간. 유 감독이 2004-2005시즌 모비스에서 감독과 선수로 위 감독을 가르쳤다. 두 감독은 스타가 있든 없든 특정 선수에게 의존하는 농구를 최대한 지양한다. 모비스와 우리은행 시스템 농구가 묘하게 닮은 게 그 증거이자 이유. 실전서 드러나는 악재와 변수를 극복한 뒤 전력을 극대화시키는 재주가 탁월하다. 반면 실질적 전력이 좋더라도 실전서 드러나는 악재를 극복하지 못하는 감독이 있는 팀은 무너질 때가 있다. 유 감독과 위 감독의 역량이 여기서 다른 감독들과 차이가 난다.
지난 여름이었다. 남녀대표팀이 진천선수촌에 있었을 때 위 감독은 “유 감독님이 가끔 농구 얘기를 해주신다. 엄청나게 도움이 된다”라고 했다. 구체적이고 세밀한 전술전략이라기보단 경기운영의 묘, 경험에서 우러나온 위기관리능력 등을 슬쩍 언급했을 수 있다. 당시 유 감독은 “별 건 없다”라며 웃었다.
유 감독은 감독 경력만 15년이다. 과거 신세기 시절엔 실패도 많이 해봤다. 그러나 수많은 위기를 극복하고 ‘만수’라는 별명을 얻으며 국내 최고명장이 됐다. 반면 위 감독은 이제 3년차. 아직 실패를 해본 적이 없다. 구력과 경험에선 유 감독을 따를 수가 없다. 다만, 위 감독은 신한은행 코치 시절 임달식 감독 밑에서 혹독하게 조련을 받으며 현재 성공가도의 토대를 쌓았다.
인상적인 건 위 감독이 유 감독과 임 전 감독의 좋은 점들을 학습하고 익혀가며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간다는 데 있다. 두 감독은 승패를 떠나서, 개개인의 경기력에 문제가 있으면 가차 없이 지적한다. 그리고 극복하려고 노력한다. 잘 나갈 때도 방심하지 않고, 조금 주춤해도 여유를 잃지 않고 치밀하게 다음을 대비하는 승부사 기질도 닮았다.
한 농구관계자는 최근 “위 감독을 보면 리틀 만수같다. 유 감독처럼 다양한 수가 있는 건 아니지만, 유 감독 못지 않은 선수단 장악과 경기운영능력, 선수육성능력을 보여주고 있다”라고 극찬했다. 물론 위 감독이 스승 유 감독을 넘어서는 건 현재로선 불가능하다. 무대도 달라 직접적인 비교가 어려운 부분도 있다. 하지만, 위 감독이 스승 유 감독처럼 명장의 길을 밟고 있는 건 확실하다.
한국농구의 객관적 경쟁력은 많이 떨어진다. 세계적인 팀들에 비해 기본적인 테크닉과 파워의 열세가 엄청나다. 그 중심엔 지도자들의 역량 부족도 분명히 있다는 게 농구관계자들 지적. 그러나 유 감독과 위 감독은 시스템농구를 통해 그런 약점을 최대한 메워냈다. 남녀프로농구를 지난 두 시즌간 평정했고, 올 시즌에도 악재 속에서 선두를 이끌고 있다. 대표팀에서도 수완을 발휘해 아시안게임 우승을 이끌었다. 소속팀과 대표팀 모두 주어진 환경 속에서 전력을 극대화했다.
남녀프로농구 최강으로 군림하는 모비스와 우리은행에 두 사제 감독의 역량이 완벽하게 녹아있다. 리그는 달라도 최강팀들은 결국 통한다.
[유재학 감독과 위성우 감독(위), 모비스 선수들, 우리은행 선수들(아래). 사진 = 마이데일리 사진 DB, WKBL 제공]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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