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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이승록 기자] 임성한 작가가 은퇴했다.
아니, 은퇴한다고 했단다. 측근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본인 입으로 직접 '은퇴' 단어를 꺼내진 않았으니 복귀의 여지는 남은 셈이다. 임 작가의 작품 속 서사에 비춰보면 '짠!' 하고 다시 나타날 가능성이 다분하다. 다만 적어도 '막장극' 라이벌 김순옥 작가의 서사처럼 얼굴에 점 하나 찍고 나타나는 뻔한 등장이라면 사양하겠다.
임 작가가 '막장계 대모'인 건 사실이나 글 솜씨가 없는 작가는 결코 아니란 걸 인정해야 한다. 두 가지 이유다. 하나는 변칙 전개이고, 다른 하나는 완급 조절이다. 두 기술만큼은 임 작가의 솜씨가 상당하다. 문제는 적당히 써야 장점인데, 늘 지나쳐 단점이 되기 일쑤다.
전형적 전개를 깨는 데 능수능란한 작가다. 시청자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일반적 예상과 기대를 무참히 깨는 장면이 잦다. 그 순간의 반전(反轉) 효과가 커 시청자들은 마치 TV를 보다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 든다.
하지만 전형성 파괴도 개연성은 지키는 안에서 이뤄져야만 할 텐데, 임 작가는 툭하면 개연성을 무시하니 근본이 붕괴되는 '막장 전개'가 나올 수밖에 없다. 개그 프로그램을 보며 웃다가 죽거나, "암세포도 생명이에요"라는 대사, 불량배와 우연히 시비가 붙어 죽는 장면 등이 대표적이다.
유려한 완급 조절에는 비밀이 있다. 임 작가의 작품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반찬 이야기나 건강 관리 비법 같은 의미 없는 대사들이다.
김순옥 작가가 자극적 사건을 잇따라 등장시켜 시청자들 혼을 쏙 빼놓는 속도 빠른 전개를 즐긴다면, 임 작가는 매회 초, 중반까지는 사소한 이야기를 늘어놔 긴장감을 떨어뜨린다. 마지막 순간에서야 "뭐라고?" "아니?" 등 의미심장한 표정을 클로즈업하는 결정적 장면으로 끝내 긴장감을 순식간에 높이는 식이다.
정작 중요한 내용이 마지막 장면 밖에 없으니 '벌써 끝나나?' 싶은 생각도 들고, 다음 회가 기다려지기까지 하는 셈이다. 문제는 실컷 애간장을 태워놓고 막상 다음 회가 되어도 별 것 없는 내용이 태반이라 시청자들이 소위 '낚시질' 당해 속았다는 생각이 드는 게 당연하다.
따져보면 임 작가보다 심한 '막장극'은 넘쳐난다. 출생의 비밀은 난무하고 납치와 살인까지 서슴지 않는 끔찍한 드라마가 쏟아지고 있고, 여전히 대기 중이다. 하지만 모든 '막장극'이 시청자들을 끌어들이는 건 아니다. 임 작가는 같은 '막장극'이라도 시청자들이 솔깃할 만한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재주가 있다. 안타까운 건 그 능력을 '막장극' 쓰는 데 낭비해 왔다는 점이다.
임 작가가 어느 날 갑자기 다시 돌아와 '막장극'의 역사를 연장하는 데 앞장설까 봐 두렵다. 반가워할 시청자도 많지 않을 게 틀림 없다.
굳이 돌아오겠다면 차라리 표현의 한계가 정통극보다 자유로운 시트콤 장르가 어떨까 하는 생각이다. 시트콤의 세계라면 눈에서 레이저를 쏴도, 개가 돌연사 하더라도, 복근을 빨래판 삼아 빨래를 하더라도 시청자들을 즐겁게 해줄 의도라 믿고 너그럽게 웃어 줄 마음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태까지의 '막장 드라마'를 재현할 요량의 복귀라면 환영해줄 마음은 없다.
[사진 = MBC 제공]
이승록 기자 roku@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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