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이데일리 = 김미리 기자] “귀가 닫혀 있으면 결국에는 자멸하게 돼요.”
영화 ‘극비수사’는 곽경택 감독이 귀를 한껏 열고 만든 영화다. 37년 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진짜 이야기를 영화화 하게 된 건 ‘잘 듣는’ 그리고 ‘이야기를 잘 끌어내는’ 그의 능력 덕분이다. ‘곽경택 감독이라는 고정 관념을 깬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게 된 것도 조언을 소중히 귀담아 듣는 그의 평소 태도가 빚어낸 결과다.
‘극비수사’는 1978년 대한민국이 떠들썩했던 사건, 사주로 유괴된 아이를 찾은 형사(김윤석)와 도사(유해진)의 33일간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개봉 전부터 담백한 웰메이드 영화로 호평 받고 있는데, 이미 개봉 전임에도 ‘친구’를 잇는 곽경택 감독의 대표작으로 거론되고 있다.
“호평이 대부분이라 더 불안해요. 어디서 지뢰가 터질까 싶기도 하고요. (웃음)”
영화는 다양한 성별, 나이, 취향을 가진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이 관람하는 만큼 100이면 100 모두 좋은 평만 내놓지 않는다. 반면 ‘극비수사’는 대부분 호평 일색이다. 영화계에서도 관객들의 이런 반응에 놀라워하는 중. 더 놀라운 건 이런 ‘극비수사’가 제작 단계에서 상업 영화로 적합하지 않다는 평을 들었다는 사실이다.
“시나리오만 보면 상업성이 적은 구석이 있어요. 하지만 긍정적인 시각으로 보면 포인트가 꽤 있죠. 결국 영화는 서로 믿는 몇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것 같아요. 김윤석 씨도 ‘극비수사’를 믿어준 사람이고 투자 회사도 다는 아니겠지만 다수가 이야기해볼 만 하다고 생각해 믿어줬으니 가능한 일이었죠. 시각에 따라서는 산업적 후킹 포인트를 찾기 애매한 영화일 수도 있어요.”
상업성이 적다는 일부의 의견은 오히려 약이 돼 돌아왔다. 수사물이라고 하면 현란한 편집, 어마어마한 추격전, 피와 살이 난무하는 영화를 떠올리기 쉽지만 ‘극비수사’는 긴장감을 주되 극단적 장치들을 걷어냄으로써 더 담백하고 정감 가는 영화로 완성됐다.
이 이야기의 시작은 곽경택 감독이 영화 ‘친구2’를 준비하던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취재를 위해 조폭 검거율이 높았던 공길용 형사를 찾아가게 됐고, 그가 곽 감독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 깊은 곳에 꼭꼭 담아뒀던 김중산 도사와의 이야기를 털어 놨다.
“첫 번째 무장해제는 제가 출연했던 ‘기적의 오디션’이었어요. 공길용 형사님이 그 프로그램을 보셨더라고요. 본인이 형사 생활을 오래했으니까 조폭을 미화한 감독을 싫어하셨대요. 조폭의 생리도 잘 아셨으니까 탐탁지 않게 생각하신 거죠. 우연히 ‘기적의 오디션’을 보셨는데 절 보시고는 생각보다 말이 솔직하다고 생각하셨다고 하더라고요.”
이후 공길용 형사와 김중산 도사는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려줌으로써 곽경택 감독에게 믿음을 내비쳤고, 곽경택 감독은 사건이 아닌 사람에 집중하는 ‘극비수사’로 두 사람의 신뢰에 보답했다.
“30년 전 유괴사건을 해결했던 것에만 집중하면 (영화적으로) 뭐가 재미있겠어요. 사건만 다룬다면 ‘내가 굳이 지금 그 이야기를 할 필요가 뭐가 있지?’ 싶기도 했어요. 아무리 점괘가 수사에 도움이 됐다고 하더라고 말이죠. 처음 저에게 에너지를 넣어주신 분이 공길용 형사와 김중산 도사님이잖아요. 사건이 아니라 사람을 보여줘야 제가 행복할 것 같았어요.”
사람들의 이야기에 잘 집중하고 호응하는 곽경택 감독은 촬영 현장에서도 자신의 장점을 잘 녹여냈다. 그 정도의 내공과 경력을 가진 감독임에도 배우부터 스태프까지, 영화에 대해 건네는 조언을 잘 받아들이고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즉각 반영했다.
“당장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건 잘 챙겨야죠. 계속 그렇게 작업해 오기도 했고요. 학교 다닐 때 계속 좋은 아이디어를 수혈 받고, 대가를 지불할 일이 있으면 지불해야 한다는 교육을 받잖아요. 귀가 닫혀 있으면 결국 자멸하죠. 반짝이는 아이디어가 있더라도 혼자서 잘 표현하는 게 어떻게 가능하겠어요. 천재들은 가능하겠지만, 천재가 아닌 이상 다른 사람들과 힘을 합쳐야죠.”
곽경택 감독은 영화화하기 매력적인 실화에도 끌렸지만, 공길용 형사와 김중산 도사의 이야기를 듣고 ‘나의 말하지 못할 이야기를 누군가가 대신 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극비수사’ 작업에 착수했다. 이런 곽경택 감독에게도 자신의 삶을 돌아봤을 때 영화화 됐으면 하는 이야기가 있을까.
“반추할 시기가 되면 제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어요. 아버님이 쓰신 수필집들도 있으니 영화화하기에는 충분할 것 같아요. 제가 굉장히 힘 있는 감독이 되고, 제작비에 연연하지 말고 만들라는 상황이 되면 말이죠. 아니면 제가 형편이 돼 직접 만들 수 있다면 한 번 아버지에 대한 영화를 만들고 싶어요.”
이와는 별개로 곽경택 감독은 전혀 다른 장르의 영화로 관객들과 만날 예정이다. 여동생이 대표로 있는 영화사 바른손이 판권을 사 놓은 작품을 영화화 한다.
“좀 새로운 장르에 도전해 보고 싶어서 소설을 원작으로 한 판타지 스릴러 장르를 하기로 했어요. 8월쯤 촬영에 들어갈 예정이에요.”
[곽경택 감독. 사진 = 한혁승 기자 hanfoto@mydaily.co.kr]
김미리 기자 km8@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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