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구/NBA
[마이데일리 = 김진성 기자] 무리수다.
KBL은 22일 이사회를 열고 외국선수 출전방식을 갑작스럽게 변경했다. 기존 1~3라운드 2명 보유 1명 출전, 4~6라운드 및 플레이오프, 챔피언결정전 2, 3쿼터에 한해 2명 보유 2명 출전을 허용한 것에서 2~3라운드에는 3쿼터에 한해 2명 출전을 허용하기로 했다. 쉽게 말해서 외국선수 2명 동시 출전을 2라운드부터 부분적으로 허용했다.
신장제한이 부활한 상황. 외국선수가 1명만 출전할 수 있는 현 시점에선 장신 외국선수에 대한 의존도가 절대적이다. 그런데 2라운드부터 3쿼터 10분간 외국선수 2명을 동시에 기용할 수 있다. 국내 선수층이 탄탄하고 높이에서 이점이 있는 팀들이 탄력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국내선수들과 외국선수들의 조직적 융화 과정에서 부작용이 나타날 여지도 얼마든지 있다. 각 팀들이 어떻게 준비하고 대처하느냐에 따라 순위싸움에도 지각변동이 예상된다. 감독의 임기응변능력이 고스란히 경기력에 투영될 수 있다. 리그의 판도를 뒤집어놓을 수 있는 결정.
▲원칙파괴
시즌 전부터 논란이 있었다. 불법도박 연루로 각 팀 주요선수들이 대거 빠져나갔다.(구단들은 일찌감치 그들의 공백을 예상했다.) 1라운드의 경우 대표팀 차출까지 겹쳤다. 시즌 초반 경기력과 흥행 하락에 대한 우려가 극대화됐다. 일부 구단들을 중심으로 개막전부터 외국선수 2명 동시 출전을 허용해야 하지 않느냐는 주장에 힘이 실렸다. 불과 개막 3~4일전 언론들을 통해 표면화됐다.
개막 이틀 전 열린 이사회에서 없던 일이 됐다. 이유는 간단했다. 취지는 이해하나 시즌 전 정해진 원칙을 개막 단 이틀을 앞두고 바꾸는 게 말이 되지 않는다는 주장에 힘이 실렸기 때문. 전 세계 어느 프로스포츠에서도 규정 혹은 제도가 개막 이틀 전에 갑작스럽게 바뀌는 일은 없다. 리그의 정통성과 팬들의 신뢰에 직결되는 부분.
하지만, KBL은 22일 이사회를 통해 다시 한번 결정을 뒤집었다. 외국선수 출전 확대와 동시에 신인들을 드래프트 직후(본래 3라운드부터 출전하기로 돼 있었다.) 곧바로 출전할 수 있게 했다. 결국 시즌 중 선수 기용 제도를 손질하며 스스로 정한 원칙을 깼다. 스스로 정통성을 깎아내렸다. 완벽한 무리수.
물론 KBL로서도 예상치 못한 변수가 많았다. 불법도박 수사가 대규모로 진행되면서 스타들이 대거 빠져나갔다. 대표팀 차출 타격도 컸다. 실제 개막전부터 구단들의 관중 동원에 비상이 걸렸다. 하지만, 이 역시 KBL이 자초한 결과다. 애당초 지난 시즌 도중 외국선수 신장제한 부활, 2인 동시 출전을 결정했을 때 외국선수제도가 리그 흥행, 경기력에 미치는 파장을 정확하게 예측하지 못했다. 근본적으로 KBL이 외국선수제도에 대해 접근하는 방식은 원칙에 의거한 진지한 접근과 논의보다는 즉흥성, 1차원적 성격에 가까웠다. 결국 돌발변수(불법도박 징계, 시즌 일정을 앞당기며 대표팀 차출 발생)에 스스로 다시 원칙을 깨는 악순환을 반복했다. 한 구단관계자는 "KBL은 어떤 제도든 미리 충분한 시간적 여유를 갖고 구단과 논의할 수 있어야 한다"라고 했다.
▲KBL도 이해가 된다?
프로농구는 출범 후 최대위기다. 또 다른 관계자는 "시즌 초반 저조한 흥행은 프로야구 핑계를 대면 안 된다. 팬들이 농구 콘텐츠 자체에 염증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했다. 승부조작, 불법도박 등 거듭된 악재와 무원칙 행정, KBL와 대한농구협회의 불협화음으로 인한 대표팀 가치 하락, 음주운전사고 이후 도덕과 윤리를 망각한 구단까지. 최근에는 농구 마니아들마저 한국농구에 등을 돌리는 추세다.
이런 상황서 KBL로선 강 건너 불구경할 수 없었다. KBL은 프로농구의 존속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할 의무가 있다. 이 농구관계자는 "KBL도 오죽 답답했겠나. 원칙을 깼다는 비판을 들을지언정, 일단 이 위기부터 해결해야 한다는 마음이 강했을 것"이라고 했다. 다행히 올 시즌 KBL이 재도입한 단신 외국선수들에 대한 현장과 팬들의 반응은 대체로 긍정적이다. 이들과 대표팀 선수들이 복귀할 경우 경기력은 물론, 흥행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란 기대감이 있다. (물론 일부 관계자들은 변형 지역방어 등 복잡한 수비전술이 많은 KBL 특성상 단신 외국선수가 시즌 막판 경쟁력이 떨어질 수 있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KBL의 이번 선택은 나쁘게 볼 필요가 없다는 시선도 분명히 있다.
하지만, 한 가지 짚고 넘어갈 부분은 분명히 있다. KBL 이사회다. 결국 외국선수 출전쿼터를 확정한 건 구단들이다. 구단들의 합의가 없다면 시즌 중 외국선수 제도가 바뀔 리 없다. 물론 KBL이 이들을 조율해야 하지만, 쉽지 않다는 게 농구관계자들의 설명. 올 시즌 초반 전력 손실이 크거나 국내선수 전력이 약한 몇몇 지방구단이 외국선수 쿼터 확대에 주도적으로 앞장섰다는 설이 파다하다. 결국 구단들의 극심한 이기주의가 원칙파괴로 이어졌다. 어떻게 보면 KBL보다 구단들이 더 문제다. 이럴거면 개막 이틀 전 이 안건이 이사회에 올라갔을 때 개막전부터 외국선수 출전을 확대하기로 결정하는 게 나았다. 결국 시즌을 몇 경기 치러보고 순위싸움이 쉽지 않겠다고 판단한 구단들의 얄팍한 이기주의에 KBL이 휘둘린 모양새다.
어쨌든 KBL과 10개 구단은 욕 먹을 각오를 하고 스스로 정한 원칙을 깼다. 그들의 이번 선택이 어떤 결말을 낳을 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KBL과 10개구단이 농구 팬들의 신뢰를 되찾고 싶다면 더 이상 즉흥적이고 돌발적인 움직임은 지양해야 한다. 한국농구 발전을 위해 책임감과 사명감을 갖고 거시적인 관점으로 각종 현안에 접근해야 한다. 하지만, 눈 앞의 이익에 무원칙과 이기주의가 팽배한 농구판에서 그게 가능할지는 모르겠다.
[KBL 수뇌부(위), KBL 로고(아래). 사진 = 마이데일리 사진 DB]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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