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구/NBA
[마이데일리 = 김진성 기자] "정말 열심히 뛰는 거라니까."
궁금했다. '상범 매직'의 실체. DB 이상범 감독은 선수들이 열심히 해서 좋은 성적으로 이어졌다는 말만 수 차례 했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전력의 장, 단점을 완벽히 드러내놓고 치르는 정규시즌이다. 장기레이스는 상대의 견제에 무너질 수 있는 불안한 요소를 줄이는 게 가장 중요하다.
외국선수 디온테 버튼을 잘 뽑았다. 하지만, 두경민을 제외하면 여전히 애버리지가 탄탄한 선수가 없다. 김주성과 돌아온 윤호영은 체력, 운동능력이 전성기보다 떨어진다. 로드 벤슨도 예전과 같은 기량은 아니다. 공수조직력을 견고하게 끌어올리기가 결코 쉽지 않은 구조.
객관적 전력이 강하지 않다. 3일 삼성에 졌지만, 그래도 12승 5패로 3위. 이걸 단순히 "선수들이 열심히 해서"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이 감독은 1일 현대모비스와의 원정경기를 앞두고 흥미로운 얘기를 들려줬다. 조직을 변화시키기에 앞서 본인이 먼저 달라졌다.
잘 알려졌듯 이 감독은 7~8년 전 KGC 사령탑 시절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실시한 급진적 리빌딩으로 고생을 많이 했다. 사표를 정장 안에 넣고 다녔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당시에는 이 감독도 사령탑으로서의 내공이 부족한 측면이 있었다.
이 감독은 "(김)태술이, (양)희종이가 공익, 상무로 입대하면서 다른 팀에서 쓰지 않았던 박상률, 김일두 등을 끌어 모아서 시즌을 준비했다. 그때는 내가 많이 조급했다. 잘 되지 않는 부분이 있으면 선수들을 많이 다그쳤다. 약점을 지적하며 보완하는 방식으로 내가 직접 팀을 끌고 갔다"라고 돌아봤다.
예상대로 성적은 좋지 않았다. 이 감독은 오세근, 이정현, 박찬희 합류 전까지의 1~2시즌을 "실패"라고 규정했다. 선수구성, 전력을 떠나서 한 시즌을 끌고 가는 방식에 문제가 있었다고 스스로 비판했다. 그는 "프로에서 무조건 '나를 따르라'는 통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이 감독은 DB 지휘봉을 잡기 전 몇 년간 일본에서 인스트럭터를 역임했다. 고교, 대학은 물론 여자선수들까지 단기간 지도했다. 프로감독 출신의 자존심을 버린, 용감한 도전이었다. 이 감독은 "일본에서 다양한 연령의 선수들을 대하면서 내가 먼저 달라져야 한다는 걸 느꼈다"라고 말했다.
2017년. 이 감독은 DB에서 KGC 초창기와 비슷한 상황에 놓였다. 이번에는 과거의 시행착오를 반복하지 않았다. 정반대로 접근했다. 비 시즌에 연습경기를 할 때부터 선수들에게 이것저것 지시를 하지 않았다. 공수의 큰 틀은 잡되, 개개인의 장점을 최대한 살렸다.
이 과정에서 개개인의 창의성을 극대화, 팀 전력을 끌어올리는 방법을 택했다. 선수들의 창의성을 확인할 때까지 기존의 평가, 선입견은 모두 지웠다. 이 감독은 "정말 선수들이 어떻게 하는지 보기만 했다. 내가 하라는 대로만 할 필요는 없다. 경기 도중에 잘 안 되는 부분이 있으면 알아서 얘기해서 바꾸라고 했다"라고 털어놨다. 수비 대형, 세부적인 움직임, 상대 매치업, 흐름에 따른 공격 패턴의 부분적인 변화까지. 수직적인 한국 프로스포츠 문화에서 파격이었다.
당연히 실패도 있었다. 경험이 부족한 선수들은 농구 내공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감독은 그들의 창의적인 시도를 나무라지 않았다. 오히려 박수로 격려했다. 개개인 농구 내공의 향상을 위해 인내하는 시간이었다. .
한 동안 재활하며 선수단 밖에서 후배들을 본 윤호영도 "일본 전지훈련에서 효과가 있었다. 연습경기 내용이 계속 좋았다. 그때부터 올 시즌은 잘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윤호영의 말대로 DB는 시즌의 3분의 1지점까지 순항하고 있다.
김태홍과 서민수, 유성호는 과감하게 림을 공략한다. 예측 수비가 잘못돼 뚫려도 과감한 시도에 이 감독으로부터 박수를 받는다. 선수들은 실패를 기억한 뒤 성공으로 가는 길을 스스로 찾아내고, 재미를 느낀다. 자연스럽게 선수들과 이 감독의 신뢰가 돈독해졌다.
벤치의 선수들도 환호하고, 몰입한다. 미리 준비한다. 코트에 들어가면 어김 없이 모든 기량을 쏟는다. 이 감독이 그런 선수들에게 기회를 준다. 단, 기본을 어기면 어김 없이 페널티가 찾아온다. 홈 경기 작전타임 도중 "XXX(머리의 비속어)가 썩었어"라고 질타한 게 대표적이었다.
이 감독은 "과감하게 하다 성공도 하고, 실패도 하고, 자신감이 붙고, 팀도 강해졌다. 내가 하라는 대로만 했으면 한계가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DB는 세부적인 약점 속에서도 투박하지만, 매력적인 업템포 농구를 구사한다. 전원 공격, 전원 리바운드다. 이걸 한 마디로 "열심히 뛴다"라면 맞는 말이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물론 타 구단 한 감독은 "버튼이 중심을 잡는 게 가장 크다. 버튼과 벤슨이 제 몫을 하지 못하면 DB가 그렇게 힘을 발휘할 수가 없다. 아직도 더 지켜봐야 한다"라고 말했다. 냉정하지만, 사실이다. 버튼은 3일 삼성전서 좋지 않았다. DB도 거짓말처럼 무너졌다.
그렇다고 해도 그 속의 본질, 즉 '상범 매직'의 실체와 밑거름은 부정할 수 없다. 이 감독부터 시행착오와 실패를 인정했고, 용감한 도전을 통해 농구 사고의 폭을 넓혔다. 지금 이 감독은 고스란히 선수들에게 이식하고 있다. DB 선수들도 실전서 실패를 통해 느끼고,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은 채 용감한 도전으로 농구 내공을 끌어올리고 있다. 이런 특성이 오히려 상대 팀에는 성장의 최대치를 예측할 수 없게 만든다. 여전히 DB를 향한 나머지 9개 구단의 시선은 혼란스럽다.
이 감독은 "또 위기는 온다. 경기 도중에 앞서나갈 때도, 54경기 전체를 봐도 그렇다. 자신감을 갖고 이겨내는 게 중요하다. 지금까지 기대 이상으로 해낸 선수들이 자랑스럽다"라고 말했다. 이건 프로농구, 아니 프로스포츠 지도자론과 리빌딩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DB발 농구혁명이다.
[이상범 감독. 사진 = KBL 제공]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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