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이데일리 = 이예은 기자] "사람 마음은 계속 바뀌잖아요." 종잡을 수도, 규정할 수도 없는 사람이다. 스크린에서 풍겼던 기묘한 분위기가 일상으로도 이어졌다. 대신 보다 더 솔직하고, 직관적이다. 꾸밈없는 신비로움으로 계속 귀를 기울이게 만드는 사람, 배우 구교환(38)이다.
구교환은 영화감독과 배우를 오가며 독립영화계에서 스타로 자리매김했다. 지난 2008년 영화 '죽지 직전 그들'(2008)로 데뷔한 그는 이후 '사사건건'(2009), '거북이들'(2011), '왜 독립영화 감독들은 DVD를 주지 않는가?'(2013), '서울연애'(2013), '오늘영화-연애다큐'(2014), '우리 손자 베스트'(2016), '꿈의 제인'(2016), '메기'(2018), '세마리'(2018) 등 수많은 독립 영화에 출연하며 내공을 쌓았다. 이 가운데, '플라이 투 더 스카이'(2015), '걸스 온 탑'(2017) 등 직접 메가폰을 잡은 작품도 다수. 감독이 아닐지라도 편집, 각본, 프로듀서 등 다방면으로 참여하며 자신이 지닌 색깔을 유감없이 발휘했던 그다.
어떤 작품이든 등장과 동시에 시선을 고정하게 만드는 힘이 있는 연기자이자 연출자다. 통통 튀는 연기 톤, 얇고 높은 목소리, 개성 있는 마스크는 곧 구교환의 아이덴티티가 됐다. 그만의 기이한 매력이 상업영화, 영화 '반도'(감독 연상호)에서도 통했다. 지난 15일 개봉한 '반도'는 '부산행' 좀비 창궐 4년 후 폐허가 된 땅에 남겨진 자들이 벌이는 최후의 사투를 그린 액션 블록버스터로 1100만 관객 동원작 '부산행'(2016) 속편이다.
'반도'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시국 속에서도 개봉 7일 만에 200만 관객을 돌파하며 '연니버스'(연상호+유니버스) 세계관의 저력을 실감케 했다. 배우 강동원, 이정현, 권해효, 이레, 이예원 등 각각 내공과 신선함을 갖춘 배우들의 맹활약이 눈에 띈 가운데, 구교환을 향한 관객들의 관심이 심상치 않다. "강동원을 보러 갔다가 구교환에게 반해서 나왔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등장할 정도다. 이처럼 가장 주목받는 배우가 된 구교환은 무자비한 631부대 구성원들을 통제하는 지휘관 서 대위를 맡아 열연을 펼쳤다. 희망을 잃고 무너져내린 서 대위는 나약함과 잔인함이 공존하는 인물로 구교환을 만나 날개를 달았다.
뜨거운 관심을 증명하듯 구교환의 7년 연인인 이옥섭 감독과의 열애도 새삼 화제가 됐다. 2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마이데일리와 만난 구교환은 "오늘에서야 많은 관심을 느낀다. 여러 감상들에 대해 전해 들었다. 흥미롭게 생각하고 있다. 서 대위에 대한 생각들이 다양하더라. 저도 서 대위가 굉장히 궁금했던 인물이다. 그래서 출발했던 게 있었다. 제가 궁금했던 마음이 전달된 게 아닐까 싶다"고 말하며 웃었다.
"감독님께 연락 받고 처음 미팅하는 날에 가장 먼저 본 게 직접 그리신 서 대위 얼굴이었어요. 그 눈이 계속 기억에 남아요. 쉽게 읽히지 않는 인물이었어요. 붕괴돼있고 이상한 느낌을 받았어요. 그 느낌을 옮기려고 노력했죠. '독특했다'는 평가는 제가 의도한 게 아니라 관객들의 생각이에요. 저는 그냥 서 대위의 순간순간의 진심대로 움직이려고 했어요. 민정(이정현)과의 관계라든지, 최초 좀비 사태가 일어났을 때 민간인을 구조하고 있는 서 대위와 631부대의 모습을 생각해봤죠. 그런 단서들로 시작했어요."
구교환은 서 대위를 "시간이 죽어있는 인물, 과거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인물"이라고 분석했다. 이 과정에서 최고 권력자 서 대위에게 내재됐던 유약함이 드러나자 일부 관객들은 "마냥 미워할 수 없는 매력적인 악인"이라는 평가를 내놓기도 했다. 모호한 사악함과 허무주의에 휩싸인 서 대위 캐릭터에 매료된 것이다.
이에 대해 구교환은 "나는 서 대위처럼 조용하게 있는 사람이 더 무섭다. 패턴을 걷잡을 수 없는 사람이 더 무섭지 않나. 후반부 장면에서도 나온다. 서 대위가 지휘관을 유지할 수 있던 것도 변칙적인 모습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황 중사(김민재)보다 더했으면 더했을 거예요. 김 이병(김규백)에게 한 짓을 보시면 알아요. 본능적으로 그런 모습들이 장착돼있는 거죠. 강력한 악인처럼 안 느껴질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저는 '왜?'라는 생각보다 '얘는 누구인가'라는 호기심이 들었어요. 답을 찾지는 않았죠. 연기할 때마다 답을 내리면 어렵거든요. 답을 내리는 순간 경직되게 표현할 것 같아서요. 다만 서 대위는 문제적 인물이에요. 그 인물에 너무 많은 애정을 가지고 있어도 안 된다고 생각해요. 프리퀄의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서 다 말할 수는 없지만 일단 서 대위와 황 중사는 631부대로서 함께 민간인들을 구조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것, 계속 구조 신호를 보냈다는 것 등 정도는 말할 수 있어요. 저도 많은 걸 알고 있지는 않아요.(웃음)"
'반도'로 인터뷰를 하게 될 줄도 몰랐다는 구교환은 이날 쉽사리 텍스트로 옮기기 힘든 답변들을 종종 내놓아 취재진을 당황하게 만들기도 했다. '반도'를 접하고 있는 관객들의 감상을 해치고 싶지 않다는 게 가장 큰 이유였고, "사람 마음은 계속 변하니까"가 두 번째 이유였다. 대신 연기에 있어선 계산하지 않았다. 잘 다듬어진 말 대신 "뭐라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답이 주를 이뤘지만 역설적으로 구교환이라는 배우가 선명해보였다. 첫 상업영화 주연작 '반도'를 대하는 마음가짐도 의연했다.
그는 "'반도'는 그저 내게 '메기' 이후의 작품이다. 상업영화라고 해서 이 작업을 분리해서 선택하지는 않았다. 예전에 가끔 상업영화 제안을 받은 적도 있지만 그 때는 제가 다 개인작업 중이었다. 아쉬웠는데 이번에 함께 하게 됐다. '반도' 세계관을 궁금해 했는데, 참여 안 할 이유가 없지 않나"라며 "특별한 파급력을 생각하고 연기하지 않는다. 스코어를 생각하고 연기하지 않듯이 서대위에게만 집중했다. '반도'가 추후 내 독립영화에 미칠 영향력은 시간이 지나야 알 수 있을 것 같다. 지금은 진행 중이라 잘 모르겠고, 시간이 지나야 알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강동원을 보러 갔다가 구교환에게 반했다'는 반응, 보긴 했어요.(웃음)기분은 좋죠. 저는 관객들을 만나려고 영화를 작업하는 사람이니까요. 서 대위를 불편하게 생각하셔도 저는 좋아요. 잘 전달이 된 거니까요. 저는 스코어에 집중하기보다는 관객들을 많이 만나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그게 스코어인가요?(웃음) 그냥 관객들이 집에 돌아가시는 길에 생각나는 인물이 되고 싶어요. 영화도 자기 전에 생각나는 영화면 좋겠고요. 영화의 완성은 관객들을 만나는 거잖아요."
배우이기도, 감독이기도 한 구교환은 "배우로서는 호기심 있는 인물을 만나고 싶고 그 영화 안에서 쓰임새 있는 인물이 되고 싶다. 감독으로서는 관객들에게 재밌는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다. 거창한 욕심은 없다. 관객들을 만나는 것만큼 대단한 일이 없지 않나"라고 말하더니 "지금은 배우가 더 매력적이다. 지금은 '반도'의 시간이니까"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이어 추후 계획을 묻자 "지금 생각나는 작업은 잘 모르겠다. 내가 만들고 싶지 않은 영화를 만들면 관객들에게 전달이 안 될 것 같다. 나도 정말 이야기하고 싶은 게 있으면 좋겠다. 유머를 굉장히 좋아해서 유머의 방식으로 전달이 되면 좋겠다"며 "다음에 어떤 작업을 할지 궁금하다. 나중의 일을 알 수는 없다. 궁금한 영화와 이야기를 만나고 싶은 바람만 있다. 기다리는 게 활동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저는 스케일을 판단하기보다는 이야기를 봐요. 만약 우주가 배경인 영화가 나온다면, 스케일은 크겠지만 이야기가 또 궁금해지겠죠. 분류를 하지 않는 게 배우로서의 태도인 것 같아요. 작품의 외적인 요소를 보는 것을 지양하려고 해요. 장르는 그냥 관객들의 편의성을 위해 나뉜 거니까요. 카테고리일 뿐이죠. 그런 의미에서 '반도'도 복합장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어떤 영화를 하고 싶어요'라고 말할 수 없어요.
구교환은 "계속 마음이 바뀐다. 좋은 배우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그대로다. 나는 연기라는 걸 잘 모른다. 함부로 정의할 수 없다. 연기를 하고 싶었고 그 마음을 계속 끝까지 갖는 거다. 좋은 동료를 만났을 때 연기를 하고 싶은 때도 있고. 그냥 연기를 하는 행위 자체가 재밌다. 글로 있던 걸 제가 옮기는 거니까. 그냥 궁금해서 계속 한다"고 단순하지만 명확한 소신을 밝혔다. 마지막까지 귀를 쫑긋 세우게 만드는 구교환이었다.
[사진 = 나무엑터스 제공]
이예은 기자 9009055@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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