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마이데일리 = 박윤진 기자] 복슬복슬 하얀 털, 짤막한 다리, 숯댕이 눈썹.
첫 눈에 찰리 채플린, 짱구가 떠오르는 이 강아지는 세상에 하나뿐인 믹스견, 이름은 박송승헌이다. 애니멀호더의 컨테이너에서 구조됐고, 지금은 평생 가족을 만나 아늑한 집에서 따뜻한 집밥을 먹으며 행복하게 살고 있다.
승헌이를 견생역전 시킨 반려인은 가수 겸 뮤지컬배우 아이비(본명 박은혜)다. 평소 후원하던 유기동물보호소의 SNS 소식을 통해 승헌이를 처음 알게 됐는데, 며칠 간 마음이 쓰이자 결국 임시보호를 결심했다. 그리고 같은 해 4월 승헌이를 가족으로 맞았다.
아이비는 임시보호 기간 놀라운 경험을 했다. 낯선 사람만 봐도 오줌을 지리던 '겁쟁이 쫄보' 승헌이가 어느새 양말에 구멍을 내고 화분을 헤쳐놓는 장난꾸러기 댕댕이가 된 것이다. 이 집의 터줏대감 반려견인 두두와도 곧잘 어울렸다. 비포 앤 애프터 사진 한 장은 아이비가 승헌이의 웃음을 되찾아주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지를 느끼게 한다.
아이비는 최근 서면으로 진행한 마이데일리 창간 17주년 기념 인터뷰를 통해 "동물에 대한 태도와 인식이 많이 바뀐 건 사실이지만 그 이면의 어두움도 함께 커져가고 있다"며 "영향력 있는 분들이 더 앞장서서 알려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들이니까. 저도 더 노력하겠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이번 인터뷰는 보호소에서 아직 가족을 만나지 못했거나, 길 위에서 살아가는 유기동물들을 위해 썼다. 단 한 마리라도 좋으니 그들의 고단한 삶에 기적이 일어나길 바라면서.
"반려동물, 사지 말고 입양하세요."
다음은 일문일답.
-SNS를 통해 승헌이의 임보, 입양 소식을 생생하게 전해주셨는데요. 조금 더 자세히 듣고 싶습니다. 승헌이는 어떻게 알게 되셨나요?
"승헌이는 평소 후원을 하던 유기동물보호소 SNS를 통해 알게 됐어요. 여러 마리의 강아지들 중 눈썹이 신기하게 생겨 기억하고 있었는데 며칠 동안 계속 생각이 나더라고요. 운명이었던 건지 '가족이 되어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미 두두를 키우고 있고 질투가 심한 편이라 선뜻 결정하기가 어려웠어요. 그래서 보호소 소장님께 일단 연락을 드려 임시보호를 하고 싶다고 말씀을 드렸는데, 승헌이는 쉼터 내에서도 유난히 겁이 많은 걸로 유명해서 저한테 보내길 망설이셨죠. 게다가 제가 연예인이다 보니 바쁜 스케줄 때문에 아이를 잘 보살펴 줄 수 있을지도 걱정하시더라고요."
-승헌이와의 첫 만남도 기억에 남을 것 같아요. 어떤 모습이었나요?
"승헌이는 쉼터 소장님 품에 안겨 저와 첫 만남을 가졌어요. 두려움에 떨고 있었죠. 제 동생이 운전을 해주고 제가 승헌이를 안아서 서울까지 왔는데요. 긴장을 너무 했는지 집으로 오는 동안 침을 한 바가지를 흘린 거에요. 집에 데려와 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겁이 많더라고요.
승헌이는 애니멀호더의 컨테이너에서 구조된 아이라고 들었어요. 사람의 손길을 제대로 느껴본 적 없는 데다, 자기 몸에 누가 손만 대도 경기를 일으키듯 떨고 힘을 많이 줘서 대소변까지 저절로 나오는 아이였죠.
승헌이를 데려오고 며칠은 케이지 안에서 거의 나오지 않았어요. 심지어 첫 날은 먹은 것도 다 토하고 설사까지 했거든요. 그럼에도 희망을 좀 봤던 건 제가 잠든 사이에 집안 구석구석을 탐색하며 양말 같은 것도 꺼내놓고 화분도 헤쳐놓고 하는 거예요.
임시보호 3개월 정도 후에는 제가 노력한 만큼, 아니 어쩌면 제 노력보다도 더 달리지는 모습에 커다란 보람을 느꼈어요. 두두도 승헌이에게 큰 관심이 없어 다행이었고, 승헌이도 두두와 매일 산책을 하며 형님 따르듯 믿는 게 보여서 두 아이를 같이 키워도 되겠다는 확신이 들었죠."
-겁 많은 승헌이를 위해 직접 미용을 해준 모습을 SNS에도 올리셨는데, 그런 노력들 덕분에 승헌이의 표정이 눈에 띄게 달라졌어요. 승헌이는 어떻게 바뀌어 갔나요?
"겁 많던 승헌이를 아는 지인들은 꼬리도 바짝 올라가 있고 냄새도 먼저 맡으러 다가오는 모습에 깜짝깜짝 놀라 했어요.
비결은 '산책'이라고 말할 수 있어요. 처음에는 현관 밖으로도 못 나갔었는데요. 그래서 강아지 유모차에 태워서 며칠을 아침, 저녁으로 바깥에 나가 냄새를 맡게 해줬죠. 그때가 한 겨울이었는데 아무리 추워도 몸을 일으켜 함께 외출했어요. 그랬더니 어느 순간에 유모차에서 내려오려고 하는 거에요. 그때부터 승헌이의 진짜 산책이 시작됐고, 간식을 주고 눈을 마주치며 교감했죠. 그렇게 저에 대한 신뢰가 쌓였나 봐요.
다른 특별한 훈련 없이도 매일매일 좋아지더니 이제는 너무 멋진 반려견이 됐어요. 제가 워낙 활동적이고 사교적인 사람이라 시간 나면 틈틈이 다른 강아지, 보호자들을 만나게 해줬고 '사람은 널 헤치는 존재가 아니다'라는 걸 느끼게 해줬어요. 이제는 매일 제 품에 파고들어 애교를 부리고 저를 너무 사랑해주는 존재가 되었답니다."
-아이비에게 반려동물 가족이란? 두두와 승헌이는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진실된 마음을 나누는 가족이자 친구, 때로는 삶의 스승과 같은 존재가 되었네요. 사랑을 배우고, 슬픔은 나누고, 늘 저를 성장시켜주는 존재지요. 두두와 승헌이를 통해 세상을 배워갑니다."
-반려동물등록증까지 나오며 이젠 떼려야 뗄 수 없는 가족이 된 승헌이에게 한 마디 해주세요.
"건강하게 오래오래 함께 살아가는 거야."
[사진 = KDS 레인보우쉼터·아이비 인스타그램]
박윤진 기자 yjpark@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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