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마이데일리 = 강화 김진성 기자] "빠바박…"
2021년 5월28일 대전 한화전. SSG 박종훈에겐 영원히 잊을 수 없는 날이다. 언제부터인지 알 수 없을 만큼, 팔꿈치 통증은 일상이었다. 통증을 조금씩 참고 던지는 투수가 적지 않다. 그러나 그날은 확실히 이상했다.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
3-1로 앞선 5회말 2사 2,3루였다. 타석에는 정은원. 초구와 2구 투심이 모두 스트라이크 존을 벗어났다. 2구를 던지고 괴로운 표정으로 오른팔을 들어 사인을 보냈다. 마운드를 벗어나 주저앉았다. 그리고 왼 주먹으로 자책하듯 그라운드를 두 번 때렸다.
그렇게 2021시즌이 끝났다. 다음 상대는 타 구단이 아닌 자신이었다. 6월 한 달간 미국에서 수술 및 재활을 했다. 한국에 돌아와서 격리를 마치자마자 강화 SSG퓨처스필드에 입소했다. 어느덧 8개월 가까운 시간을 보냈다.
다시 공을 잡았다. 5~6차례 정도 불펜 피칭을 소화했다. 22일에는 30개 정도의 공을 던졌다. 복귀 시계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박종훈과 문승원을 향한 SSG 팬들의 행복회로도 가동되기 시작했다. 물론 올 시즌까지는 재활 시즌으로 설정하고 보수적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신중론도 존재한다.
어쨌든 요즘 토미 존 서저리는 실패 사례가 많지 않다. 대부분 1년에서 1년 반 정도에 재활을 마치고 돌아온다. 그에 비하면 박종훈의 재활 속도는 빠른 편이다. 그러나 서술이 쉬울 뿐, 당사자는 뼈를 깎는 노력을 기울여왔다. 박종훈과 문승원의 재활을 지켜보는 SSG 사람들은 "정말 대단하다"고 했다.
박종훈은 그날을 담담히, 그리고 천천히 돌아봤다. "그 순간 딱 터진 것이었다. 공 잡기가 두려웠다. 그래서 스톱한 것이었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사실 결정적 순간이 언제라기보다, 계속 조금씩 아팠다. 한화전 마지막에는 좀 더 아팠는데, 처음에는 팔에서 '딱'소리가 났다. 이게 뭐지 싶었다. 던지긴 던지는데 이게 통증을 참고 던지는 건지 그냥 공을 던지는 건지 몰랐다"라고 했다.
한 마디로 정신이 없었다. 자신의 승리요건 따위는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오로지 박종훈이 멈출 수 없었던 건 책임감 때문이었다. 어떻게든 5회 위기까지만 막고 보자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이미 한계를 넘어선 상태였다.
"빠바박." 본능적으로 알아챘다. '시즌 아웃'이라는 것을. "손이 떨리면서 공이 안 잡혔다. 그래도 이 이닝은 마무리 지으려고 했는데, 공 잡기가 두려웠다. 아 끝났구나." 그날 박종훈의 투혼은 미련했지만 한편으로 이해도 되는, 그런 '맴찢' 사연이다.
"내 장점은 역시 팔 높이가 낮은 것이다. 그리고 이번 일 전까지는 특별히 아프지 않고 꾸준히 던져왔다." 박종훈은 그랬다. 2016년부터 매년 140~150이닝 이상 소화해왔다. 아주 특별한 에이스는 아니었다. 그러나 언제든 믿고 맡길만한 선발투수였다.
박종훈은 SSG밖에 모르는 투수다. "개인적으로 해외에 나간 것도 처음이었고, 수술도 처음이었다. 처음에는 '이게 맞는 건가' 싶었다. 우리 팀 경기를 보고 동료들이 잘해주기만을 바랐다. 미안한 생각도 들었다. 같이 등반을 하는 것인데 나만 낙오된 것이었으니"라고 했다.
그런 박종훈은 SSG로부터 5년 65억원 계약을 받고 다시 한화전을 바라본다. "목표는 5월 복귀인데, 여유 있게 돌아오면 6월일 것 같다. 그런데 6월 10일부터 한화전(10~12일 인천 3연전)이 있더라. 그때 나가면 좋겠다. 물론 그 전에 나가면 더 좋고"라고 했다. 놀라운 승부욕이다.
[박종훈. 사진 = 강화 유진형 기자 zlong@mydaily.co.kr]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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