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리뷰
[곽명동의 씨네톡]
“완벽한 날이야. 공원에서 샹그리아를 마시고, 그러고 나서 어두워지면 집에 가는 거지. 완벽한 날이야. 동물원에서 동물에게 먹이를 주고, 그러고 나서 또 영화를 보고 집에 가는 거야. 오, 정말 완벽한 날이야. 너와 함께 보내길 잘했어.”(루 리드, ‘퍼펙트 데이’ 가사 중 일부)
영화 ‘퍼펙트 데이즈’에서 히라야마(야쿠쇼 코지)는 이 노래의 가사처럼 매일 매일 ‘완벽한 날’을 꿈꾸고 실천한다. 아침에 일어나 캔커피를 마시며 올드팝을 듣고 출근해 화장실에서 일한다. 점심땐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살(코모레비)’을 찍는 그는 퇴근 후 대중탕에서 몸을 씻고 선술집에서 술을 마신 뒤 집에 돌아와 책을 읽으며 잠자리에 든다.
빔 벤더스 감독은 평생 ‘어떻게 살 것인가’를 주제로 영화를 만들어왔다고 밝혔다. ‘퍼펙트 데이즈’도 예외는 아니어서, 그는 존경하는 오즈 야스지로 감독의 ‘동경 이야기’(1953)의 주인공과 같은 이름의 도쿄 화장실 청소부 히라야먀의 삶을 통해 인생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거장의 필치로 그려낸다. 이렇게 평범한 삶에 생의 비밀이 숨어있다는 듯, 그는 히라야마의 일상을 디테일하게 담아내며 끝내 깊은 감동의 여운을 남긴다. 이 영화의 관람 포인트 중 하나는 히라야마의 과거를 상상하는 일이다. 영화엔 한때 부자였을 것이라는 암시만 있을 뿐 정확한 정보를 주지 않는다.
벤더스 감독은 한 외신과 인터뷰에서 히랴아마의 과거가 이러했을 것이라고 언급했다(관객마다 모두 다른 버전의 히라야마 과거가 있을 것이다). 요약하면, 그는 사업가였고 부자였고 불행했으며 술도 많이 마셨다. 어느 날 지저분한 호텔에서 눈을 떴고 전날 밤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몰랐다. 그는 자기 삶이 똥이라고 생각했고 그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이른 아침, 기적적으로 그의 앞에 있는 벽에 한 줄기 햇빛이 비친다. 그는 햇빛을 보고 울기 시작한다. 살면서 그토록 아름다운 것을 본 적이 없었다. 햇빛은 그에게 실존적 위기에 대한 삶의 해답이었다. 히라야마의 인생이 바뀌는 순간이다.
철학자 질 들뢰즈의 성찰대로, 반복은 차이 나는 것들 사이에서 생긴다. 히라야마는 아침에 문을 열고 하늘을 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는데, 언뜻 보기에는 어제와 다르지 않은 행동으로 보인다. 그러나 오늘 아침의 하늘은 어제와 다르다. 그건 내일도 마찬가지다. 공원 화장실의 더러움 역시 어제와 오늘이 똑같을 리 없다. 코모레비는 시시각각 다른 온도와 빛깔을 발산한다. 매일 가는 술집의 음식과 술맛은 같더라도, 그 주변의 손님들은 계속 바뀐다. 매일 밤 엎드려 읽는 책의 내용도 다르다. 그러니까 히라야마는 반복에서 적극적으로 차이를 느끼고 음미하며 내면의 평화를 갈망하는 ‘세속의 수도승’이다.
마지막 장면에 이르러 “새로운 새벽, 새로운 하루, 새로운 인생이야. 나에겐 말이야. 새로운 새벽, 새로운 하루, 새로운 인생이야. 나에겐 말이야... 그래서 난 행복해”라는 내용을 담은 니나 시몬의 ‘필링 굿’이 흘러 나온다. 히라야마는 도로에서 차를 운전하며 웃는 듯 우는 듯 복합적인 감정을 드러낸다. 외로움, 쓸쓸함, 만족감, 행복감 등이 중첩된 얼굴이다. 후회와 상처로 얼룩진 과거를 뒤로 한 채, 그는 마치 신성한 의식(리추얼)을 치르듯 노동, 음악, 사진, 음식, 독서로 이어지는 하루의 순환을 경건하게 수행한다. 세상 어딘가에 실제로 존재할 듯한 히라야마의 모토는 다음과 같다.
“다음은 다음, 지금은 지금.”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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