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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김지우 기자] 시각 서사의 달인이라 불리는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마스터피스 '룸 넥스트 도어'가 현대 예술사의 주요 작품들을 등장시키며 주제를 드러내는 정교한 미장센으로 화제를 모으고 있다.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 제임스 조이스의 소설, 크리스티나 가르시아 로데로의 사진이 관객들에게 깊은 울림을 전한다.
삶의 중요한 순간을 맞이한 두 친구 마사(틸다 스위튼)와 잉그리드(줄리안 무어)가 의미 있는 여행을 떠나는 이야기를 담은 '룸 넥스트 도어'는 말기 암 환자인 마사가 자기 자신으로 존엄하게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 오랜만에 재회한 잉그리드에게 마지막 순간 옆방에 있어달라는 부탁을 하는 것을 계기로 본격적인 이야기가 진행된다.
처음엔 부탁을 거절했던 잉그리드가 마사와 내밀한 대화를 나눈 끝에 부탁을 수락하게 되는 과정에서 등장하는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 '일광욕 하는 사람들'(people in the sun)은 두 친구가 도시를 떠나 도착한 숲속의 집에 놓인 선베드로 이어진다. 20세기 사실주의 회화의 아버지라 불리는 에드워드 호퍼는 빛을 효율적으로 사용해 따뜻하면서도 어딘가 차가운 인상을 풍기는 색채로 도시인들의 외로움을 그려왔다. 색으로 리듬을 만들어내는 미장센의 달인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은 죽음 앞에 공평하게 고독할 수밖에 없는 인물들의 심리를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세계가 확장된 것만 같은 연출적 효과'로 보여준다.
첫 예고편이 공개된 직후부터 관객들에게 뜨겁게 회자된 것은 제임스 조이스의 소설 '죽은 사람들'의 구절을 암송하는 마사(틸다 스윈튼)의 목소리였다. 아일랜드의 소설가 제임스 조이스는 20세기 가장 위대한 작가 중 한 명으로 꼽히는 모더니즘 소설가다. '죽은 사람들'은 평범하고 일상적인 순간에도 죽음을 곁에 두고 살아가는 인간 생(生)의 숙명을 담담하게 그린다.
"눈이 내린다. 모든 산 자와 죽은 자 위로." '룸 넥스트 도어'에서 세 번 등장하는 이 구절은 영화 초반 두 친구가 병실에서 창밖으로 내리는 눈을 바라보는 장면에서는 스스로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죽음을 결심한 마사의 목소리로, 숲속 집에서 함께 영화를 보는 장면에서는 두 사람의 대화로, 영화의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그동안 죽음을 두려워했으나 더는 회피하지 않는 잉그리드의 목소리로 변주되며 깊은 여운을 남긴다.
스페인의 거장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은 스페인을 대표하는 사진작가 크리스티나 가르시아 로데로의 작품으로 영화의 주제를 다시 한 번 강렬하게 드러낸다. 크리스티나 가르시아 로데로는 스페인의 전통 문화를 치열하게 포착하는 작가로 "인물들의 삶에서 가장 충만하고 강렬한 순간을, 저항할 수 없을 만큼 단순하면서도 내면의 힘을 모두 쏟아 담으려고 노력한다"고 자신의 작품 세계를 소개한다.
마사의 집에 걸린 흑백 사진에는 고인과의 인연이 없는 장례식에서도 애도를 위해 검은 옷을 입고 베일을 쓴 채 울음을 나누는 스페인의 장례 문화가 담겨 있다. 이는 영화의 제목에도 담긴 것처럼 "다른 말없이 그저 함께하고 옆에 있어주는 것. 고통과 환희의 순간에 동행하는 것. 누군가와 동행하는 너그러움은 타인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이로운 감정"이라는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연출의도와도 이어진다.
"현대 예술사의 유물들로 콜라주한 총천연색 상실"이라는 평처럼 한 순간도 눈을 뗄 수 없는 미장센으로 거장의 품격을 보여주는 '룸 넥스트 도어'는 올가을 반드시 극장에서 만나야 할 걸작으로 극찬 받고 있다.
전국 극장에서 상영 중.
김지우 기자 zwm@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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