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교사 김혜인] 여느 날처럼 아이를 어린이집에서 데려온 뒤 치료실로 향했다. 그곳에서 마주친 여자아이가 아주 낯이 익었다. 작년 초 2달가량 아이가 낮 병동 치료를 받던 병원 휴게실에서 본 아이였다.
그때 풍경이 눈에 선하게 떠올랐다. 여자아이는 똘망똘망한 표정과 귀여운 목소리로 제 가족과 말을 주고받고 있었다. 너무 물끄러미 바라보는 건 결례인 줄 알면서도 자꾸만 눈길이 갔다. 내 아이보다 언어 습득이 빠르다는 것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질적 차이를 느꼈기 때문이었다. 여자아이는 상대와 눈을 마주치며 대화에 집중하고, 엉뚱한 소리를 내지 않으며 주변 사물로 시선이 흐트러지지 않았다.
다만, 그 아이는 걷지 못했다. 1년이 지나서 마주친 지금도.
여자아이 보호자는 한쪽 어깨에 짐 가방을 메고 아이를 안았다. 그 상태에서 보행 보조기도 들어야 하는 게 아주 난감해 보였다. 핑계 김에 불쑥 말을 걸었다. “제가 주차장까지 들어 드릴게요. 그런데 혹시 ○○병원에 다니지 않으셨어요?” 그가 내 아이를 쳐다보았다. 마침 내 아이는 놀잇감이 가득한 치료실 안으로 신나게 달려 들어가서 잠시 자리를 비워도 될 듯했다.
주차장으로 걸어가며 그가 내 아이는 어떤 문제로 치료를 받으러 왔냐고 물었다. “겉보기엔 아무 문제 없어 보여요”라고.
낮 병동 병실에 들어간 날에도 다른 보호자가 내게 똑같이 말했다. 병실에는 아이가 총 8명 있었는데 내 아이가 가장 어렸다. 내 아이만 유일하게 걸을 수 있었다.
옆자리 아이는 같은 날 병실에 들어왔다. 아이 할머니는 아이가 걷지 못하는 원인을 찾기 위해 검사라는 검사는 다 해보았다고 했다. 유전자 검사, 뇌 MRI 촬영, 뇌파검사 등. 그러나 원인을 찾지 못했다고. “때가 되면 다 저렇게 걷는 걸…”이라며 내 아이가 걷는 모습을 쳐다보던 눈길에는 한없는 부러움과 답답함이 뒤엉켜 있었다.
내 아이는 대근육 발달을 제외한 모든 영역에서 발달 지연을 겪고 감각 처리, 상호작용, 감정조절 문제를 지녔다. 그러나 이를 늘어놓으며 한탄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걸을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부러움을 사는 게 억울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누가 더 불행한가를 따질 수 없어서,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어서 그저 시선을 아래로만 향하고 있었다.
내 아이는 낮 병동 생활을 싫어하며 수시로 분노발작을 일으켰다. 두 달 만에 치료를 조기 종료하고 도망치듯 나왔을 정도로 우리에게 무척 힘든 시간이었다. 그러나 왠지 모르게 그때가, 그곳이 자주 생각난다. 병실에서 만난 이들의 얼굴이 또렷이 떠오르지만 감히 ‘잘 지내나?’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감사합니다. 짐은 트렁크 앞 바닥에 그냥 놔 주세요.” 몇 마디 나누지도 않았는데 어느새 차 앞까지 도달했다. 여자아이 보호자는 능숙하게 아이를 차에 태웠다. 이 아이는 아마도 내 아이 바로 앞 시간에 치료를 받는 일정인 듯한데 ‘다음에 또 봬요’라고 인사해도 될까? 잠시 망설이다 그 말 대신 “안녕히 가세요”라고 인사했다. 우린 여기에서 서로 볼 일이 없으면 더 좋을 테니.
낮 병동 치료를 조기에 종료하고 마지막 인사를 할 때, 한 아이 엄마는 내게 “잘 클 거예요”라고 말해주었다. 나는 뭐라고 말했던가. 조심스럽게 안부를 묻고 싶다.
|김혜인. 중견 교사이자 초보 엄마. 느린 아이와 느긋하게 살기로 했습니다.
교사 김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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