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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서프라이즈(미국 애리조나주) 박승환 기자] "벤치 코치에게 '천천히, 천천히'라고 말할 뻔했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이정후는 23일(이하 한국시각) 미국 애리조나주 서프라이즈의 서프라이즈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5 메이저리그 시범경기 텍사스 레인저스와 원정 맞대결에 중견수, 3번 타자로 선발 출전해 3타수 1안타를 기록했다.
지난해 5월 13일 신시내티 레즈와 맞대결에서 홈런 타구를 잡아내는 과정에서 어깨 부상을 당한 뒤 무려 286일 만의 선발 출전. 보통 메이저리그의 경우 주전이 확정적인 선수는 원정 경기에 동행하지 않는 편이다. 하지만 2023년 발목, 지난해에는 어깨 수술을 받으면서 2년 동안 너무 많은 공백기를 가졌던 이정후는 사령탑의 물음에 큰 고민 없이 경기 출전을 택했다.
지난해 부상으로 인해 37경기 만에 시즌을 종료한 가운데 최근 미국 현지 언론에서는 이정후를 압박하고, 부담을 주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소위 '허니문' 기간이 끝났던 것. 이를 이정후는 완전히 '실력'으로 증명했다. 정말 오랜 기간 공백기를 가졌지만, 이정후는 이날 첫 번째 타석에서 메이저리그 통산 33승 타일러 말리를 상대로 초구를 공략해 우익수 앞에 떨어지는 안타를 만들어냈다.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타이밍에 휘두른 배트, 타구속도는 무려 105.1마일(약 169.1km)로 측정됐다. 이에 미국 외신 기자들은 이정후의 안타와 타구속도에 경악을 감추지 못했다. 그리고 이날 이정후는 수비에서도 엄청난 활약을 펼쳤다. 자칫 지난해의 악몽이 되풀이 될 수도 있었던 상황. 이정후를 빼고 모두가 가슴을 졸일 수밖에 없었던 장면에서 이정후는 아무렇지 않게 엄청난 수비를 선보였다.
1회초 첫 타석에서 안타를 치고 1회말 수비에 들어선 가운데 텍사스 '리드오프' 에반 카터가 친 타구가 103.7마일(약 166.9km)의 속도로 중견수 방면을 향해 뻗었다. 그리고 이정후가 이 타구를 쫓았는데, 어느순간 이정후가 펜스 앞에 가 있었다. 지난해 이정후는 홈런성 타구를 잡아내다가 펜스와 충돌하면서 어깨 수술을 받았는데, 이날 카터의 타구는 지난해 5월과 매우 흡사한 위치로 향했다.
하지만 이정후에게 트라우마는 전혀 없어 보였다. 이정후는 카터의 장타성 타구를 끝까지 쫓았고, 깔끔한 캐치를 통해 아웃카운트를 만들어냈다. 이 수비를 본 뒤에도 외신 기자들은 감탄을 쏟아냈다. 지난해 너무 빨리 시즌이 아웃되면서, 그동안 이정후가 보여줬던 모습을 까먹었다가 되찾은 듯했다. 이후 이정후는 두세 번째 타석에서는 안타를 생산하지 못했으나, 수비에서 굳건한 안정감을 뽐냈고, 3타수 1안타로 복귀전을 마무리했다.
경기가 끝난 뒤 밥 멜빈 감독은 "오래 쉰 선수가 모든 공을 잘 보는 것은 쉽지 않다"면서도 "첫 타석에서 초구에 안타를 쳤는데, 조금 시간이 필요할 수 있겠지만, 캠프에서 이런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이정후가 보여줄 앞으로의 활약에 큰 기대감을 드러냈다. 그리고 사령탑은 이정후의 1회말 수비 장면을 떠올렸다.
멜빈 감독은 "(부상을 당했을 때와) 확실히 같은 장소였다. 라이언 크리스텐슨 벤치 코치에게 '천천히, 천천히'라고 말할 뻔했다. 왜냐하면 이정후가 펜스에 부딪히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았다"고 가슴을 쓸어내리며 "하지만 이정후는 좌중간으로 향한 첫 타구에 정말 좋은 플레이를 했다. 타구가 뜬 것을 봤을 때 이미 전력질주를 하고 있었다. 오늘 정말 성공적인 하루였다"고 활짝 웃었다.
이정후도 국내 취재진과 인터뷰에서 수비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는 "(공백기가 있었지만) 수비는 아무 문제가 없더라. 그런데 피터슨 선수가 쳤을 때 조금 위험할 뻔했지만, 잘 대처했다. 타구가 잘 맞은 줄 알고 서 있었는데, 생각보다 타구가 안 오더라. 그래서 빠르게 대쉬를 했는데, 티 안났죠?"라고 농담했다.
계속해서 이정후는 '펜스 방향으로 공이 날아가서, 지켜보는 입장에선 걱정이 됐다'는 말에 "벤치에 있는 코치님들과 기자님들도, 나 말고 다 그러셨던 것 같다"고 미소를 지으며 "나는 아무렇지 않았다. 이미 체크를 했고, 펜스까지 공이 가진 않을 것 같았다"고 덧붙였다. 아직 타석에선 여유가 많지 않지만, 수비에서 만큼은 전혀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처럼 보였다.
서프라이즈(미국 애리조나주) = 박승환 기자 absolute@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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