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ESG 경영컨설턴트 심준규] 상장기업에 대한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공시 의무화 법안이 국회에서 추진되면서 입법화가 가속화되고 있다. 금융당국과 정치권이 올해 상반기 법안 처리를 목표로 하고 있는 만큼 기업 발걸음도 분주해져야 할 때다.
ESG 공시 의무화 도입을 국제 추세에 맞춰 앞당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반드시 국내 기업 여건에 대한 고려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 기업 공시 역량 강화, 정보의 신뢰성 확보, 관련 산업 생태계 조성 등 제도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세부적인 과제도 함께 해결돼야 하기 때문이다.
공시의무화 법안과 함께 다음 세 가지 핵심 사안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첫째, 공급망 전반에 걸친 온실가스 배출량 측정과 관리 체계 구축이다.
기업이 직접 배출하는 온실가스(스코프1)와 에너지 사용으로 인한 간접배출(스코프2)은 상대적으로 측정이 용이하나, 원자재 조달부터 제품 사용, 폐기까지 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배출량(스코프3)은 측정과 관리가 훨씬 복잡하다. 글로벌 공급망을 가진 기업의 경우 해외 협력사 배출량까지 포함해야 하는 부담이 있다.
스코프3 데이터 수집은 공급망 전체를 아우르는 복잡한 과정이다. 원자재 채굴부터 운송, 가공, 조립, 판매, 사용, 폐기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의 배출량을 추적해야 한다. 전자제품 제조사의 경우, 수백 개 부품 협력사들의 생산 과정 배출량은 물론, 제품 사용 과정과 폐기 시 발생하는 환경영향까지 모두 고려해야 한다.
중소기업에 이 같은 요구사항은 상당한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전문 인력 채용, 측정 시스템 구축, 데이터 관리 플랫폼 도입 등에 막대한 비용이 소요된다. 하지만 글로벌 기업 협력사로 참여하려면 거래처 요구에 맞춰 다양한 형태의 배출량 데이터를 제공해야 하는 상황이다.
둘째, 산업별 특성을 고려한 맞춤형 공시 지침을 마련해야 한다.
ESG 관련 공시 정보는 환경영향부터 사회적 책임, 기업지배구조까지 광범위한 영역을 포괄한다. 각 산업 특성에 따라 중요도가 다른 만큼, 산업별로 핵심 지표를 선별하여 제시해야 한다.
산업별 고유한 특성은 다음 주요 공시 항목에도 반영돼야 한다.
환경에서는 온실가스 배출량 외에도 용수 사용량, 폐기물 발생량, 생물다양성 영향 등이 포함될 수 있다. 사회 에서는 산업안전 실적, 인권정책 이행현황, 협력사 관리체계 등이, 지배구조 측면은 이사회 다양성, 감사위원회 독립성, 주주권리 보호 등이 핵심 지표가 될 수 있다.
공시 정보 범위와 수준은 기업 규모도 고려해야 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역량 차이를 감안해 단계적으로 공시 범위를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다만 기업이 유리한 정보만 선별적으로 공개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각 영역별 필수 공시항목은 명확히 규정돼야 한다.
셋째, ESG 공시 서비스 시장의 균형 있는 육성이 중요하다.
공시 의무화는 ESG 컨설팅, 데이터 분석, 검증, 평가 등 다양한 전문 서비스 시장을 창출할 것이다. 중견·중소기업은 내부 역량 부족을 외부 전문 서비스로 보완해야겠다.
새롭게 형성될 ESG 공시 서비스 시장에서는 품질 관리가 중요한 과제로 부각될 전망이다. 서비스 제공자 전문성과 독립성을 검증할 수 있는 자격 기준을 마련하고, 정기적인 품질 평가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 데이터 측정과 검증 분야에서는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기준을 충족하는 전문성이 요구된다.
시장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서는 공시와 관련된 다양한 전문 영역이 균형 있게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 현재 ESG 평가와 컨설팅 시장은 소수 기업이 주도하고 있는데, 공시의무화로 시장이 확대되면 각 분야별 전문성을 갖춘 기업들이 다양하게 참여하는 생태계가 형성돼야 한다. 따라서 신규 진입자들의 시장 참여를 촉진하고, 중소 전문 서비스 기업 경쟁력 강화를 지원하는 정책도 동반돼야 겠다.
ESG 공시 의무화는 단순한 규제 도입을 넘어 우리 경제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시작점이다. 공급망 전체로 확산돼 기업 ESG 경영을 촉진하고, 관련 정보의 투명성을 제고하며, 이를 통해 기업과 사회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도모할 수 있다.
무엇보다 우리 사회는 ESG 공시를 넘어서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경제 패러다임의 전환을 준비해야 한다. 이러한 변화가 우리 경제의 질적 도약을 위한 디딤돌이 될 수 있도록, 정부, 기업, 시민사회가 함께 협력해 체계적인 제도적 기반을 마련해야 할 때이다.
|심준규. 더솔루션컴퍼니비 대표. <실천으로 완성하는 ESG 전략> 저자. 기업의 ESG 역량 강화 프로그램 개발과 ESG경영컨설팅을 하고 있다.
더솔루션컴퍼니비 심준규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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