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마이데일리 = 윤욱재 객원기자] SK 최동수(40)는 올해도 주전이 될 수 있을지 미지수다. 그러나 어떤 상황에서도 쉽게 주저 앉지 않는 끈질김이 있다.
최동수는 1994년 LG 트윈스에 입단했고 그 해 LG는 신인 선수들의 돌풍을 주축으로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했지만 최동수는 그 중심에 끼지 못했다. 한국시리즈 출전 기록도 없다. 그는 원래 포수였다. 국내 최고의 포수로 평가받던 김동수의 벽을 넘기란 쉽지 않았다. 뒤이어 국가대표 출신 포수 조인성이 입단했다.
결국 그는 1루수로 전환했다. 그러나 1루수는 상당한 공격력이 요구되는 자리이기도 하다. 주전 1루수란 자리도 쉽게 오를 수 있는 자리는 아니었다.
2004년 데뷔 첫 두 자릿수 홈런을 터뜨리는 등 드디어 주전 선수로 발돋움하는가 싶었지만 2005년 신인 박병호가 들어오고 2006년 마해영이 영입되면서 주전 경쟁에 위협을 느껴야 했다.
최후의 승자는 최동수였다. 그리고 2007년 그는 풀타임 출장에 성공하며 마침내 3할 타자가 됐다. 당시 LG는 선수별로 애칭 티셔츠를 내놓았는데 최동수에겐 '대기만성'이 새겨졌다. 2008년 1억 2천만원에 계약하며 14년 만에 억대 연봉에 오르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그리고 2008년 역시 풀타임 출장을 했다.
그러나 4번타자로서는 중량감이 떨어진다는 꼬리표를 달았다. LG는 2009시즌 시작과 동시에 거포 유망주 박병호를 중용했지만 최동수는 얼마 지나지 않아 주전 자리를 되찾았다.
팀 성적 때문일까. 여전히 LG는 배고팠다. 2010시즌을 앞두고 이택근을 트레이드로 영입하고 일본에서 이병규(9번)를 복귀시켜 '외야 빅5'가 구성됐고 이들을 모두 가동하기 위해선 1루수나 지명타자로 나눠야 했다. 최동수로선 도저히 들어갈 자리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이들이 때때로 공백을 보일 때 그 공백을 메운 선수는 최동수였다. 물론 예년과 달리 출전 경기수는 줄어들었지만 그를 필요로 한 김성근 감독의 부름을 받고 SK로 트레이드되는 새로운 전환점을 맞았다.
이적 후 첫 경기에서 3점포를 쏘아 올리고 정규시즌 최종전에서 끝내기 안타를 터뜨리는 등 인상적인 활약이 있었으나 안타깝게도 한국시리즈 엔트리에 끼지 못해 우승의 순간을 그라운드에서 함께 하지 못했다.
그래서일까. 지난 해 마무리훈련부터 착실히 올 시즌을 준비하고 있는 최동수다. 김재현이 은퇴하고 이호준의 부활이 미지수인 상황에서 최동수의 비중은 생각보다 커질 수 있다. 게다가 이제 그는 혼자가 아니다. 늦장가를 간 그는 얼마 전 득남하면서 "책임감이 커졌다"며 각오를 다진 바 있다.
불혹의 나이에 접어든 최동수는 가득염, 안경현의 은퇴로 팀내 최고참 선수가 됐다. 그의 질긴 승부욕이 다시 한번 발휘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사진 = SK 최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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