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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성의 스타★필]
첫사랑에 대한 기억은 미화되고 조작된다. 그래서 옛 사람과의 재회는 마냥 아름답지만은 않다. 세월의 흔적으로 그때보다 덜 찬란한 모습으로 마주 설 것이고, 서로의 기억 조각을 맞춰보면 어긋나기 마련이다.
여기 첫사랑 단골배우가 있다. 하얗고 작은 얼굴, 동그란 순한 눈, 가느다란 팔다리를 가진 흡사 순정만화에 튀어나온 것 같은 외모를 지닌 이연희가 바로 그녀. 이연희는 첫사랑을 연상시키는 고유명사 같은 여배우다.
2006년 백만장자 현빈의 첫사랑(영화 ‘백만장자의 첫사랑’)이었고, 2007년 천재 소설가 강동원의 추억 속 첫사랑(영화 'M')이었고, 훈남 과선배 정일우를 짝사랑하는 여대생(영화 ‘내사랑’)이었다. 2008년에는 강풀 원작의 ‘순정만화’에서 띠 동갑 아저씨 유지태를 연모하는 여고생으로 등장했다.
요즘 방송되는 SBS 드라마 ‘파라다이스 목장’에서도 이연희는 여전히 첫사랑 같은 해사한 모습으로 등장하지만 이전 역할과는 많이 다르다. 19살에 첫사랑과 결혼하지만 반년 만에 이혼한 엉뚱 발랄한 돌싱 ‘이다지’로 분한 것이다.
‘이다지’는 17살에 대학에 수석 입학한 최연소 멘사 회원인 천재였지만 7년이 지난 현재의 일상은 어설프기 짝이 없다. 제주도 공동 목장에서 말 전문 수의사로 일하지만 매번 사기당하고 이용당하고 넘어지며 비극과 시트콤을 오간다.
그러나 아줌마 파마에 진흙 바닥을 굴러도 절세미모는 숨길 수 없는 법. 심하게 예쁜 캔디인 그녀에게 유부남 능력자(주상욱)와 철부지 재벌 3세 전남편(심창민)이 함께 질척거린다. 사람이 아닌 말과의 합도 잘 맞는다. 애마(愛馬) 수의사라는 캐릭터에 맞춰 수개월간 직접 말과 생활하며, 승마연습 등 사전 준비에 충분한 시간을 들여 자연스러움을 더했다.
이연희는 15살 때 SM에서 주최하는 모델선발대회에서 우연히 참가했다가 1등이 되어 소녀시대와 동고동락하며 한때 아이돌을 꿈꿨지만 2004년 드라마 ‘해신’으로 데뷔한 후 이제는 연기자로 정착했다.
타고난 미모가 죄라면 이연희는 중죄인이다. 그러나 그동안 외모에 비해 연기는 경범 수준이었다. 2009년 첫 드라마 주연을 맡은 ‘에덴의 동쪽’에서 발연기 논란까지 일으키는 수모를 겪었고, 스타성에 비해 배우로서는 제대로 인정을 못 받아온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다지’로 분한 이연희는 엉뚱함과 발랄함을 적절히 조합해 이다지 연기를 잘했던 배우였나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본능에 충실해 먼저 사랑을 고백하고 술에 취한 채 뽀뽀를 해달라며 입술을 내미는 그녀를 어느 누가 거부할 수 있을까. 감정변화를 그대로 드러내는 다양한 표정 연기와 우월한 기럭지로 가끔 선보이는 몸개그는 사랑스러움을 더한다. 순정만화 같은 생김새로 명랑만화 같은 캐릭터를 절제 있게 풀어내며 연기 초보 심창민을 잘 이끌고 있다.
첫사랑의 유효기간은 각 개인마다 다를 것이다. 어떤 이는 몇 개월 혹은 몇 년을 열병처럼 앓을 것이고, 어떤 이는 평생 가슴에 품고 변심 없이 오래 간직할 것이다. 첫사랑처럼 화사한 얼굴로 우리 곁에 온 배우 이연희가 외모가 아닌 연기로 기억될 소중한 배우로 자리잡길 기대한다.
[사진 = '파라다이스 목장'(위) '백만장자의 첫사랑' 포스터]
함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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