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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이승록 기자] 김지원은 미움 받지 않아도 될 캐릭터였다.
MBC 일일시트콤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이하 '하이킥3')이 단 4개의 에피소드만 남겨뒀다. 그러나 하선(박하선 분)과 지석(서지석 분) 커플의 행복, 내상(안내상 분)의 로또 당첨, 진희(백진희 분)의 취업 성공 등이 오히려 불안함을 증폭시키는 건 이 시트콤의 아버지가 김병욱 감독이기 때문일 것이다. 마지막회에 모든 이야기를 뒤집을 수 있는 김병욱 감독이다.
그리고 아직까지 행복과 거리가 멀어 보이는 캐릭터가 있는데, 바로 지원(김지원 분)이다. 계상(윤계상 분)을 따라 르완다로 가겠다는 지원. 이 '르완다행 선언'은 시청자들의 외면을 받고 있다. 이해할 수 없는 지원의 이기적인 행동이란 것이다.
과연 그런 것일까? '사랑 때문에'란 이유로 비상식적인 일들이 비일비재한 드라마 속 세상에서 지원의 사랑은 유독 공감대를 이끌어내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지금까지 전개된 이야기에 비추었을 때 김병욱 감독은 지원과 계상의 이야기를 이번 '하이킥3'의 메인 러브라인으로 삼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의 러브라인은 전작들을 다 합쳐도 지지층이 가장 얇은 러브라인으로 꼽힌다.
그 이면에는 바로 진희가 있다. 어쩌면 '하이킥3'의 가장 큰 실수는 진희가 계상을 좋아하게 된 순간일지도 모른다. 진희가 계상과 얽히며 진희의 매력은 상실됐고 웃음의 크기도 대폭 감소했다.
특히 계상을 중심으로 진희, 지원이 삼각관계를 이루게 됐는데 이 관계가 형성됐을 때, 시청자들은 비밀스러운 여고생 캐릭터 지원보다 현실 속 취업 백수 진희에 이미 감정 이입을 상당히 진행한 뒤였다. 그래서 시청자들은 지원의 사랑이 불편했다. 진희의 사랑을 가로막을 것만 같았다.
그렇지만 사실 이 삼각관계는 존재하지 않는 삼각관계였다. 계상이 진희, 지원 누구와도 러브라인을 진전시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삼각관계에선 한 쪽의 러브라인이 성립된 순간 다른 한 쪽의 비극이 부각된다. 그러나 계상은 두 사람 모두를 선택하지 않았다. 하물며 진희와 지원이 계상을 두고 갈등한 것도 아니었다. 셋의 관계는 표면상 삼각관계였으나, 삼각관계로 부를만한 조건은 하나도 없었다. 그러나 삼각관계란 이름만으로도 시청자들이 지원을 진희의 사랑의 라이벌로 규정하고 미움을 키워나가기 충분했다.
그렇기 때문에 지원의 캐릭터를 명확하게 바라보려면 진희를 떼어놓고 생각해야 한다. 진희와 지원이 계상을 사랑하긴 했지만, 둘의 사랑은 별개의 인물을 사랑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게 이 삼각관계의 진실이었다.
지원이 르완다에 가겠다는 고집 안에는 치기 어린 사랑과 꿈을 향한 방황이 담겨있다. 지원의 행동은 애초에 머리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열아홉살, 꿈도 사랑도 불분명한 그 나이대의 누구나 한 번쯤 겪었을 열병, 그걸 지금 지원이 앓고 있다. 내가 누구인지, 확신이 서지 않는 고민들이다.
눈 수술을 받아 앞을 볼 수 없던 하선은 지원이 르완다를 가겠다고 말하자 절대 보낼 수 없다며 현실적인 이야기를 쏟아냈다. 이 장면은 어떤 의미를 함축하고 있었다.
지원은 지금이 행복하지 않다고 했다. 하선은 시간이 지나면 괜찮다고 했다. 하지만 하선은 지원이 보이지 않는 상태였다. 하선에겐 지원의 불행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 것이다.
또 지원을 말리는 하선은 제 앞도 못 보는 어른들의 전형적인 모습일 수도 있다. 눈을 뜨고 앞을 바라보며 더 가치 있는 행복을 얘기하는 지원에게 앞이 보이지 않는 하선이 말하는 행복은 다른 종류의 이야기다. 어른으로 불리는 스무살, 그 직전의 나이를 지나온 이들이라면 지원이 처한 상황과 고민들을 단지 비현실적이라고만 얘기할 순 없을 것이다.
'하이킥3'에서 현실 속 20대를 대변했던 진희는 결국 취업에 성공했다. 하지만 진희는 스스로도 왜 자신이 최종 면접에 갈 수 있었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했다. 유창한 일본어 실력을 보여준 지원자도 있었지만 진희는 꽃게탕 얘기로 최종 합격자가 됐다. 과연 이게 현실 속 20대에게 던지는 해답일까?
몰락한 가장 내상(안내상 분) 역시 결국 로또에 당첨됐다. 능력을 잃고 권위가 무너진 가장이란 상황은 현실과 닮았지만, 그 돌파구는 현실과 거리가 멀었다. 로또 당첨을 현실에 대입시키기는 괴리가 컸다.
결국 남은 건 방황하는 10대 지원이다. 사랑, 꿈, 방황, 치기. 김병욱 감독은 지원의 선택으로 어쩌면 우리에게 마지막 질문을 던지려 할는지도 모르겠다. 지원이 르완다를 가는 것이 현실 속 지원의 또래들이 추구해야 할 궁극적인 목표인지, 아니면 하선의 말대로 좋은 대학에 들어가는 게 더 현실적으로 올바른 해답인지를 말이다.
김병욱 감독이 극단적인 반전을 내놓지 않는다면, 지원의 르완다 이야기는 남은 분량에서 매듭지어질 것이다. 지원의 선택, 그리고 김병욱 감독이 3회를 연장하면서까지 남기려 하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김지원(위)과 박하선. 사진 = MBC 제공]
이승록 기자 roku@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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