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마이데일리 = 대만 타이중 김진성 기자] 숨표 한번 찍을 때다.
한국야구가 대만 타이중에서 뜻밖의 수모를 당했다. 월드베이스볼클래식 1라운드 탈락.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다. 국내 야구 팬들은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이번 대회는 예고된 참사였다. 선수선발의 잡음, 전지훈련에서의 컨디션 조절 실패, 허약한 인프라와 인재풀 등 화려한 인기의 프로야구가 비추는 빛 속에 숨어 있던 문제점이 곪아터진 결과다.
최근 몇 년간 한국야구는 황금기를 보냈다. 2004년 병역비리 문제가 터진 뒤 2006년 WBC 4강을 시작으로 승승장구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우승과 2009년 WBC 준우승으로 프로야구 인기가 치솟았다. 매년 관중기록이 경신됐다. 지난해엔 무려 715만 관중이 들어찼다. 9~10구단의 유입으로 1000만 관중시대를 예고한 상태다.
▲ 한국야구는 숨 가쁘게 달려왔다
한국야구는 그렇게 앞만 보고 달려왔다. 타 프로스포츠가 한국야구의 화려함을 부러워했다. 실제 많은 걸 일궈냈다. 국제대회 성과로 이룩한 야구 붐으로 인해 입장수익 증가 및 9~10구단 창단, 리틀야구 및 사회인 야구 붐을 일궈내며 생활 밀착형 스포츠로 거듭났다. 이제 한국 소비자들의 소비 트렌드 및 패턴에 야구는 빼놓을 수 없는 콘텐츠가 됐다.
프로야구 선수는 이제 유명인이 됐다. 류현진이란 특급 괴물은 한국야구 최초로 메이저리그에 직행한 선수로 기록됐고, 국내 최정상급 기량을 자랑하는 선수들이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거리에 뜨면 웅성거리는 시대가 됐다. 그들의 말과 행동을 보며 또 다른 예비 야구 스타들이 내일의 꿈을 꾸고 있다. KBO 기록강습회엔 매년 사람이 넘쳐나고 있고, 청년백수시대에 심판, 프런트 및 야구관련 직종 입문을 진지하게 꿈꾸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 화려한 빛 뒤의 그림자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뒤엔 그림자가 있기 마련이다. 한국야구도 마찬가지다. 야구선수가 선망의 대상이 되다 보니 크고 작은 사고도 많았다. 2012년 초엔 승부조작 사건으로 야구계가 떠들썩 했고, 2012년 말엔 대학입시비리로 프로야구 전직 감독이 구속되는 일도 있었다. 위에서 지적한대로 여전히 취약한 아마야구 인프라와 씨가 말라가는 유망주들. 그로 인한 경기력 하락 문제, 각 구단의 높아진 눈높이로 인한 감독 파리목숨 시대와 그에 따른 지도자 난, 구단의 만년 적자 등 문제점이 적지 않다. 물론 화려한 빛에 가려 제대로 부각되지 못한 채 시간이 지나면 덮어졌다.
그런 상황에서 전 국민적 관심을 모았던 WBC에서 1라운드 탈락 충격을 맛봤다. 적지 않은 야구 팬들이 실망했다. KBO는 프로야구 흥행에 악영향을 미칠까봐 노심초사하고 있다. 그동안 1~2회 WBC, 광저우 아시안게임 등 국제대회서조차 연이어 호성적을 올렸던 한국이다. 이번 3회 WBC 1라운드 탈락은 분명 창피한 일이지만, 한편으로 한국야구가 빛 뒤에 그림자가 전면에 부각되는 계기가 된다면 살을 도려내는 아픔이 있더라도 재도약할 또 다른 기회라는 평가가 흘러나온다.
▲ 숨표 한번 찍자
한국야구엔 지금 숨표가 필요하다. 최근 몇 년간 너무 앞만 보고 달려왔다. 한번쯤 쉬어갈 필요가 있다. 그대로 멈춰서라는 게 아니다. 쉼표가 필요하진 않다. WBC 1라운드 충격 탈락을 계기로 한국야구의 전반적인 문제점을 진단할 시간을 갖는 게 필요하다. 곪아왔던 상처가 터졌으니 치유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 여기서 또 다시 앞만 보고 달린다면 한국야구는 위기라는 시한폭탄이 터질 시간만 앞당길 뿐이다.
숨표를 찍자는 건 잠깐 숨을 돌리면서 뒤도 돌아보고 옆도 바라보자는 의미다. 그래야 한국야구의 본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있다. 한국야구는 도전의 시기에 직면했다. WBC에서 보여준 네덜란드, 브라질 등 과거 다크호스 혹은 변방으로 치부됐던 국가들의 선전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세계야구는 그만큼 빠르게 평준화되고 있다. 반면 한국야구는 냉정히 말해서 빨리 앞으로 가고 싶은 데 적지 않은 문제들 속에 제자리에서 공회전 중이다.
9~10구단이 연이어 1군에 유입되면 프로야구 컨텐츠의 질이 단기적으로 떨어질 것이란 우려의 목소리가 들린다. 이에 대해서도 일부 야구인들은 시간이 해결해줄 문제라고 치부할 게 아니라 적극적인 문제 연구 및 해결방법 모색이 필요하다는 지적을 한다. 숨표를 찍지 못하면 이런 문제들은 순간적으로 지나쳐버릴지도 모를 일이다.
소비자들은 최근 몇 년간 한국야구의 화려한 겉모습이 좋아 열광했다. 그러나 전문가 못지 않은 식견을 지닌 일부 야구팬들은 최근 꾸준히 한국야구의 위기를 말하고 있다. 야구인들은 이런 흐름을 결코 간과해선 안 된다. WBC 1라운드 탈락은 그냥 넘길 문제가 아니다. 망신이자 수모다. 한번쯤 숨표를 찍고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 소비자들이 야구라는 컨텐츠에 실망하면 다시 붙잡는 건 절대 쉽지 않다. 그게 이 세상의 냉정한 이치다.
[한국 대표팀. 사진 = 대만 타이중 곽경훈 기자 kphoto@mydaily.co.kr]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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