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구/NBA
[마이데일리 = 김진성 기자] 마법 같은 5연승. 비밀이 무엇일까.
전자랜드가 18일 오리온스를 꺾고 파죽의 5연승을 내달렸다. 19일 현재 20승 16패로 단독 5위다. 4위 KT에도 단 0.5경기 차. 순위표에는 전자랜드가 결국 KT와 함께 모비스-SK-LG 다음가는 파괴력을 지니고 있다고 나와있다. 놀라운 일이다. 올 시즌 전자랜드가 중위권에서 버텨줄 것이라 예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멤버 면면만 보면 최하위권이다.
정영삼, 박성진, 정병국 등이 가드진 주축이다. 정영삼은 돌파, 정병국은 슛에 장점이 있는 스페셜리스트. 동 포지션 리그 최강자는 아니다. 게다가 박성진은 올 시즌 다소 주춤하다. 김지완, 정재홍이 뒤를 받친다. 포워드엔 차바위, 김상규가 있다. 대학리그 득점왕 출신에 장신 포워드라는 매력이 있지만, 경험이 부족하다. 베테랑 이현호와 한정원은 수비형 빅맨. 외국인선수 리카르도 포웰은 골밑을 우직하게 지켜주는 빅맨이 아니라 내, 외곽을 넘나드는 포워드다. 골밑을 지켜야 할 찰스 로드는 무릎수술 이후 예전 같은 위력과 꾸준함이 보이지 않는다. 멤버들을 보면 딜레마에 빠지기 쉬운 구조다.
▲ 유도훈 감독의 확실한 방향제시
유도훈 감독은 “전자랜드는 지든 이기든 경기를 통해서 배우는 팀이다”라고 강조한다. 전자랜드는 강혁의 은퇴와 문태종의 LG 이적으로 KBL에서 가장 젊은 팀이 됐다. 전문가들은 그런 전자랜드가 하위권으로 추락할 것이라고 봤다. 그러나 유 감독이 비 시즌부터 강력하게 중심을 잡았다. 선수들에게 강력하게 동기부여를 했다. 단순히 6강 플레이오프를 떠나서 선수들 개개인에게 향후 농구인생을 위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했다.
유 감독은 “선수들에게 항상 ‘다음’을 생각하라고 말한다. 개인은 충분히 공격수에게 뚫릴 수 있다. 우리 선수들의 개인 역량이 뛰어나지 않다는 걸 안다. 하지만, 1명이 뚫리면 다른 사람이 막아주고, 또 뚫리면 다른 사람이 막아주는 게 중요하다”라고 했다. 중요한 얘기다. 경험이 없는 선수들은 실수 한번에 와르르 무너지기 쉽다. 유 감독은 그것에 연연하면 안 된다고 했다. 실수를 했으면 다음을 재빨리 생각해 그 피해를 최소화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또 하나. 유 감독은 오리온스전 도중 정영삼을 강하게 질책했다. 슛을 머뭇거린다는 게 이유였다. 꼭 정영삼이 잘못했다는 게 아니라, 선수 전체를 향한 메시지였다. 유 감독은 “감독을 떠나서 농구 선, 후배다. 내가 혼을 낸 걸 선수들도 이해할 것”이라면서 “찬스에서 슛을 주저하면 절대로 발전할 수가 없다”라고 강조했다. 유 감독의 확실한 방향제시로 자연스럽게 선수들이 끈끈해졌다. 개인의 목표를 생각하면서도, 팀을 위한 희생정신이 강화됐다. 유 감독 고도의 용병술이다.
▲ 헌신적이고 희생하는 선수들
김상규는 “전자랜드에 스타는 없는 것 같다. 감독님도 그렇게 말씀한다. 수비부터 해야 한다”라고 했다. 김상규는 이날 오리온스 주득점원 앤서니 리처드슨을 꽁꽁 묶었다. 이현호, 차바위 등도 리처드슨에게 번갈아 붙었다. 전자랜드는 이날 완벽에 가까운 스위치 디펜스를 뽐냈다. 전자랜드는 높이가 낮다. 미스매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스위치 디펜스는 선택이 아닌 필수. 유 감독의 강력한 동기부여와 선수들의 의욕이 그대로 경기력에 투영되는 좋은 사례다.
한 농구인은 “전자랜드 선수들의 헌신과 희생정신이 매우 돋보인다”라고 했다. 수비뿐 아니라 공격에서도 마찬가지다. 높이가 낮기 때문에 볼 흐름이 다소 불안하지만, 포웰을 중심으로 꽤 괜찮은 밸런스를 과시한다. 스위치 디펜스로 포웰의 수비 부담은 다소 적어진 상태. 대신 유 감독이 그를 주장으로 임명해 책임감을 높였다. 포웰은 공격에 더 많은 에너지를 쏟는다.
결국 전자랜드의 공격을 살펴보면 포웰에게서 파생되는 것이 대부분이다. 포웰 효과가 돌파에 능한 정영삼, 슛이 정확한 정병국, 외곽 폭발력이 있는 차바위 등의 장점과 절묘하게 결합해 전자랜드의 공격력이 완성된다. 팀과 개인을 위한 이상적인 마인드와 든든한 수비조직력에 확실한 공격 루트가 있다. 전자랜드가 쉽게 무너지지 않고 은근히 까다로운 상대로 지목되는 이유다.
▲ 경험 부족과 높이 열세
멤버가 약한 전자랜드는 당연히 약점이 많다. 유 감독은 “경험 부족과 높이”라고 정확하게 짚었다. 강혁과 문태종이 빠져나가면서 전자랜드에는 이현호, 정영삼, 정병국 등이 가장 경험이 많은 선수다. 하지만, 정영삼과 정병국은 다른 팀에 가면 중간급이다. 풍부한 경험으로 팀을 이끌 정도는 아니다. 전자랜드의 이런 약점은 매 순간이 승부처인 플레이오프서 도드라질 수 있다. 유 감독이 긴장의 끈을 풀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선수들에게 더욱 강력하게 동기부여를 시킬 수밖에 없다.
전자랜드의 결정적인 약점은 높이다. 이 역시 플레이오프서는 치명타가 될 수 있다. 찰스 로드는 안정감과는 거리가 있다. 때문에 다른 선수들의 도움이 필요한데, 이현호, 한정원 등의 역할이 상당히 중요하다. 유 감독은 “주태수를 내일부터 훈련에 참가시킬 예정이다”라고 했다. 무릎 부상으로 올 시즌 제대로 뛰지 못한 주태수. 그의 컴백은 전자랜드에는 천군만마다. 골밑 수비력이 매우 뛰어나고 희생정신이 대단하다. 딱 전자랜드 스타일이다. 주태수가 언제 컴백하느냐에 따라 전자랜드의 전력 자체가 요동칠 수 있다.
유 감독은 “아직 6강 플레이오프를 논할 시기는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플레이오프서 어떤 옵션을 가미해야 하는지에 대한 아웃라인은 그린 상태이지만, 그것을 구체화하진 않았다고 했다. 전자랜드의 실체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 유 감독이기 때문이다. 어떤 상대를 만나도 좋은 경기력을 보여줄 수 있지만, 조금만 방심하면 무너질 수 있는 팀이 전자랜드다. 때문에 강팀에 쉽게 무너지지도 않지만, 약팀에 쉽게 이기지 못하는 경향도 있다. 이런 전자랜드의 행보가 놀라운 건 분명하다. 전자랜드는 올 시즌 그들이 갖고 있는 역량의 100% 이상을 발휘하고 있다.
[전자랜드 선수들. 사진 = 마이데일리 사진 DB]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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