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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허설희 기자] 이토록 다양한 매력이 공존할 수 있을까. 무대 위를 압도하는 카리스마 뒤에 적절한 완급조절과 작품 전체를 아우르는 통찰력이 있다. 다양한 인물을 한꺼번에 연기하는 동시에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 각 인물들을 바라본다.
뮤지컬 '블러드 브라더스'(연출 글렌 월포드)에서 내레이터 역을 맡은 배우 문종원(34)은 때론 강렬하게, 때론 느슨하게 관객들을 쥐었다 폈다 하고 있다. 원캐스트로 매 공연마다 다른 모습을 보이며 관객들을 작품에 끌어들이기도, 작품과 동 떨어지게 만들기도 하는 문종원을 만났다.
뮤지컬 '블러드 브라더스'는 1960년대 영국 공업도시 리버풀을 배경으로 어렸을때 헤어진 두 쌍둥이가 우연치 않게 만나 우정을 싹틔워 가며 벌어지는 비극적인 운명의 이야기를 강렬한 노래로 담아내는 작품이다.
문종원은 최근 마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블러드 브라더스' 내레이터가 많이 열려있는 캐릭터라 매일 조금씩 바꾸면서 하고 있다. 다른 공연이었으면 이쯤 되면 힘들기 시작한데 '블러드 브라더스'는 재미있게 하고 있다"고 입을 열었다.
▲ "무대 위, 낭만과 메시지가 있다"
문종원은 자신을 위한 공연을 하고 싶어 '블러드 브라더스'를 선택했다. 전작 '레미제라블' 속 자베르 역을 워낙 사랑해 다른 공연에서 비슷한 이미지를 주기도 싫었다. 그러다 친한 팀이 모두 모인 '블러드 브라더스'에 마음이 끌렸고, 원캐스트로 다양한 시도와 변화를 주겠다는 생각 하에 합류하게 됐다.
그는 "보여질 때는 무엇을 바꿨는지 알기 힘들지만 그게 쌓이면서 나중에 드러난다. 연출님이 '내레이터의 첫 대사가 그 날의 공연을 결정한다'고 했다. 내레이터가 어떤 기운을 갖고 오느냐에 따라 엄청 차이가 나는 것"이라며 "작품이 비극이다 보니 긴장하면서 보는데 그런 것들을 계속 깨주는 역할이다. 관객과의 벽을 허물기 위해 좀 더 버리면서 하는 게 많아졌고 그러면서도 문종원으로서 지키고 싶었던 것들을 잡아가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연습 때는 흐름만 보고 대사만 외우고 있다가 일주일 전, 다른 배우들이 대본을 다 놨을 때 나는 대본을 들었다. 남의 대사 중 연기 하는게 많아 지켜보는 게 중요했다"며 "등퇴장이 너무 많아 처음엔 고생했다. 어떻게든 내레이터가 등장 했을 때 시선을 옮겨야 되는 부분이 분명히 있다. 이 극의 창조자 같은 느낌, 전지적인 느낌도 줘야 한다. 뿅뿅뿅뿅 사방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등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낭만적인 대사, 시적인 대사가 많아 배우들은 품고 가는 게 많아진다. 요즘엔 리얼리티가 대세라 툭툭 치는 대사도 많지만 무대 위 연기는 다르다. 무대 배우로서의 낭만과 공연 자체가 갖고 있는 메시지가 매력 있다. 그리고 1인 다역을 할 수 있다는 것도 '블러드 브라더스'를 하는 매력이다. 처음엔 사실 세세한 역할이 더 많았는데 연습하면서 몇 개 뺐다. 내레이터가 어느 타이밍에 나와 어느 부분을 이끌지, 언제 나와 있는지가 중요한 작품이다. 생각보다 힘들진 않았다. 우울한 내용이지만 이를 극복하며 살고 있다는 이야기라 훨씬 즐겁게 하고 있다."
관객들을 쥐었다 폈다 하는 역이기에 문종원의 역할은 더 크다. 그는 "관객들에게 친절하게 설명하기보다 불편하게 하고 몰입을 방해한다. 호흡으로 계속 꺾는다. 관객 반응은 내레이터가 가장 민감하게 느끼는데 그런 관객들을 계속 흔드는 것"이라며 "감정 이입 순간이 다 다르다. 그 순간들을 계속 보고 있다. 하지만 감정적으로 너무 몰아가는 부분들은 조심하려 하고 있다. 너무 신파가 되면 안 되기 때문에 완급 조절을 한다. 이 작품은 깔끔하면 오히려 이상한 작품이다. 내레이터는 전체적으로 조율을 하는 입장이라 그런 익숙해지는 부분을 조심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 "어릴 때 배우를 해서 기뻤던 느낌이 난다"
문종원은 작품과 관객의 중간자라는 생각으로 내레이터를 연기하고 있다. 하느님과 인물들의 중간 자리라는 것이다. 하지만 악마는 아니다. 굳이 정의 하자면 타락천사다. 그는 "끊임 없이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 내레이터다. 결론을 얻기 위해 이런 질문을 던져야 한다. 신과 운명을 받아들이는 중간 자리, 타락천사를 표현하고 싶었다. 능동적으로, 자유로워지는 게 훨씬 좋아지는 것이라 훨씬 더 날 버리고 오면 오는대로 받아들인다"고 고백했다.
"관객들을 계속 헷갈리게 만드는 것 같다. 이게 정말 어두운 상황이면 웃긴 걸로 나온다. '뭐지? 왜 그랬을까요?' 같이 대사도 반어적으로 물어보는 게 많다. 확신은 내가 만들지 않는 거다. 이건 우리 공연으로써도 그럴 수 있고 정말 타락천사라면 신에게 묻는 것일 수도 있다. 중간 중간 허공을 보는 장면이 점점 많아진다. 사실 기구한 인생 속 인물들이 변해가는 과정을 보면서 마음이 아프다. 어쩌면 내가 '그녀를 불러내야겠습니다'고 해서 이야기가 시작되는 것이지 중간 중간 죄책감도 든다. '내가 벌인 일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복잡할 때도 있다."
앞서 밝혔듯 문종원은 '블러드 브라더스' 팀이 좋아 합류를 결정했다. 4인 4색 미키와 에디를 연기하고 있는 송창의 조정석, 오종혁 장승조를 비롯 동료 배우들과 호흡을 맞추는 것은 물론 이전부터 배우들이 출연하고 싶어 하는 작품이라는 것도 문종원에게 매력으로 다가왔다.
그는 "전에 한국에서 할 때 '의형제'라고 각색이 완전 다르게 됐었는데 그 때도 워낙 배우들이 좋아했었다. 사실 그 작품과 이 작품이 다르긴 하다. 구조는 다른데 배경이 한국 설정이나 훨씬 더 가깝고 텍스트가 굉장히 좋다. 대본 자체가 정말 좋다"며 "요즘 대본들이 대부분 로맨틱 뮤지컬 아니면 쇼뮤지컬, 히어로물 등 미디어와 똑같지 않나. 자꾸 그 쪽으로 가니 심도 있고 깊이 있는 작품이 다소 부족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어 "하다 보면 좀 헷갈린다. '내가 어떤 배우지, 이걸 왜 하고 있는거지' 중간에 딜레마들이 몇 년에 한번씩 온다. 다른 거 할까 하지만 할 건 없고 다시 하게 되고의 반복이다"며 "이 공연을 하면서는 내가 어릴 때 배우를 해서 기뻤던 느낌이 나서 좋다. 가끔 걷다가 이 세상이 내 것인것 같고 바람이 살랑 부는데 그 바람이 날 위해 부는 바람 같이 느껴질 때가 있는데 '블러드 브라더스' 역시 무대 위에서 조명을 받을 때 어느 순간 나 혼자 있는 것 같이 느껴질 때가 있다"고 설명했다.
또 미키 역 송창의 조정석, 에디 역 오종혁 장승조에 대해 "정말 4인 4색이 확실히 있다. 송창의 형은 굉장히 진정성을 찾으려고 노력해서 감정신이 좋다. 조정석 같은 경우 연기 호흡이 굉장히 빠른데 그 연기만으로도 관객들을 잡을 수 있다. 오종혁은 송창의 형과 좀 비슷하고 장승조는 조정석과 비슷한 면이 있는데 각자 잘 하는 게 확실히 있다"고 말했다.
▲ "앞으로는 항상 배우처럼 살고 싶다"
문종원은 연극 '스테디레인'와 '블러드 브라더스'를 통해 말로서 무대를 풀어갔다. 그는 "말로서 하는 것에 욕심이 있다. 무대적인 거다. 서사적이고 말을 하며 이끌어가는 걸 좋아한다. 표현하는 것만이 아니라 느끼는 것을 좋아한다. 자기를 위한 연기를 하지 말라고 하지만 그것 없이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내가 충만해져야 뭔가를 표현할 수 있는 것"이라며 "표현하기 위해 한정해 버리면 정리해서 그걸 표현하는 순간 그것 이상은 못 나온다. 객관적으로 그것만 표현하게 되니까.. 많이 느끼면서 하는걸 좋아한다"고 밝혔다.
표현 뿐만 아니라 말로써 인물을 표현하는 문종원은 최근 KBS 2TV 드라마 '빅맨'을 통해 매체 연기에 도전했다. 또 최근 나무엑터스에 둥지를 튼 문종원은 소속사 선배 유준상과 함께 영화 '화가'를 촬영하며 활동 영역을 넓혔다.
문종원은 "드라마를 촬영하며 외롭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지금까지 해왔던 것과 달라 마음을 단단히 먹고 해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정말 신인의 자세로 해야겠다"며 "마침 내게 그런 시기가 있었다. 다른 미디어 쪽으로 나가 보자고 했는데 마침 (유)준상 형과 영화를 찍으며 이런 저런 것들을 묻다 준상 형이 '우리 회사가 좋다'고 해서 들어가게 됐다. 드라마, 영화와 뮤지컬을 병행할 생각이다"고 설명했다.
"드라마를 촬영 하면서는 진땀 뺐다. 사실 드라마, 영화 등 모든 것이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더라. 선배들이 많이 도와줬는데 특히 강지환 형이 많이 도와줬다. 마침 지환 형도 뮤지컬을 한 적 있어서 더 가까워진 것 같다. 사실 연극, 뮤지컬 할 때는 항상 작업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었는데 드라마, 영화는 달랐다. 어쨌든 신인의 자세로 열심히 했는데 재미있었다."
이어 문종원은 다양한 분야를 병행하는 동시에 현재 '블러드 브라더스'를 통해 얻은 것을 묻자 "다시 용기를 얻었다. 계속 배우를 하고 앞으로 쭉 할 수 있는 마음, 오래 해야겠다는 것을 많이 느낀다"고 답한 뒤 "긍정적인 마인드가 많이 생겼다. 배우를 할 때 급하지 않게 하려 한다. '이렇게 배울게 무수히 많고 느낄게 이렇게 많고, 이렇게 행복할 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블러드 브라더스'가 주는 의미가 굉장히 크다"고 털어놨다.
그는 "글렌 월포드 연출님이 떠나기 전날 따로 불러서 해준 얘기가 있다. '너와 작업 해서 행복했다는 얘기를 꼭 가기 전에 네 눈을 보면서 하고 싶었다'면서 '나한테는 네가 세상에서 세계 최고의 내레이터다. 너무 고맙다. 내 마음을 아는 것처럼 항상 해줬다'고 했다"며 "말하자면 바라보는 이상이 같았던 것 같다. 내가 잘 했다기보다 이상이 같았던 거다. 정확하게 공감대가 형성되고 잘 맞았다"고 고백했다.
"앞으로는 항상 배우처럼 살고 싶다. 사실 트라우마가 되게 많은 편이라 연기도 그런 스타일로 맡아왔다. 성격 자체가 그러니 그런 부분이 돋보이게 된 것 같은데 '블러드 브라더스'를 통해 정말 배운 게 많다. 특히 인생에 대해 연출님께 많이 배웠다. 어차피 기구한 게 인생이고 이겨내면서 살아간다는 것을 인정해 버리면 편하다는 것을 알았다. 앞으로 많은 분들이 나의 다른 부분을 찾을 수 있는 활동을 하고 싶다. 앞으로 더 보여드릴 수 있다."
한편 문종원을 비롯 조정석, 송창의, 오종혁, 장승조, 진아라(진복자), 구원영, 김기순, 배준성, 최유하, 심재현 등이 출연하는 뮤지컬 '블러드 브라더스'는 오는 9월 14일까지 서울 종로구 동숭동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대극장에서 공연된다.
[배우 문종원. 사진 = 나무엑터스 제공]
허설희 기자 husullll@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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