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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이은지 기자] 필름이 유실돼 그 동안 실체를 확인할 수 없었던 일제시기 조선영화 대표작 '수업료'(최인규 방한준 감독)가 중국에서 발굴됐다.
한국영상자료원은 지난 6월, 중국전영자료관(China Film Archive)으로부터 '수업료'의 35mm 프린트를 입수했으며, 확인 결과 전체 8롤로 결권 없이 양호한 상태였다. 영상자료원은 16일 언론 및 영화관계자 시사회를 개최한 후, 오는 10월 시네마테크KOFA에서 일반에 공개할 예정이다.
'수업료'는 1940년 고려영화사의 이창용이 제작하고, 최인규, 방한준이 공동 감독한 작품이다. 1939년 6월에 촬영에 들어간 이 영화는 10월 초 최인규의 갑작스런 와병으로 '한강'(1938)을 연출한 방한준 감독으로 교체, 12월 초 촬영이 마무리됐다. 원작은 경성일보의 '경일소학생신문' 공모에서 조선총독상을 받은 광주 북정 소학교 4학년 우수영 어린이의 작문으로, 일본인 시나리오 작가 야기 야스타로(八木保太郎)가 각색을, 유치진이 한국어 대사를 맡았다.
고려영화사의 창립작은 1938년 크랭크인한 '복지만리'(1941)였는데 촬영이 지연되는 바람에, 2회작인 '수업료'가 1940년 4월 30일 명치좌와 대륙극장에서 먼저 개봉됐다. 개봉 당시 입장관객수가 정확한 수치로 남아 있지는 않지만 '공전의 활황'을 보였다는 당시 문헌의 기록에서 볼 수 있듯이, '수업료'는 흥행 성공과 함께 식민지 조선 관객들의 큰 관심을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수업료'에 참가한 조선인 주요 스태프들을 확인해보면 이 영화의 가치를 더욱 명확하게 알 수 있다. 촬영은 '심청'(1937, 안석영)의 이명우 촬영기사가, 녹음은 '미몽'(1936)의 양주남 감독이 맡았다. 주요 배역으로 우영달 어린이를 연기한 정찬조, 할머니 역의 복혜숙, 다시로 선생 역의 스스키다 겐지(薄田研二), 귀란 역의 김신재가 출연했다.
특히 아역 정찬조는 연극배우 김복진 여사의 아들로, 당시 첫 출연작임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연기로 호평 받았다. 그 외 조선영화계의 대표적인 배우인 독은기, 김일해, 전택이, 최운봉, 김한, 문예봉 등이 출연한다.
'수업료'는 1940년에 개봉한 영화이다. 해방 이전 한국에서는 총 157편의 극영화가 제작됐는데, 아쉽게도 현재 영상자료원에는 이번에 발굴한 '수업료'를 포함, 총 15편(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 KMDb의 개봉영화 기준이며, 결권인 영화도 포함)만이 보존돼 있는 실정이다. 해방 이전 극영화 보유율이 10%도 채 되지 않는 상황에서 이번 '수업료'의 발굴은 일제시기 한국영화 컬렉션이 또 한 편 채워졌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적지 않으며 조선영화계의 대표적인 영화제작사인 고려영화사의 작품이라는 점에서도 영화사적 가치가 크다.
이번에 발굴된 '수업료'는 '해방 이전에 제작된 극영화 발굴'이라는 선언적 가치를 넘어 영화 속에서 기록성의 가치를 확인할 수 있는 귀중한 작품이다. 영화는 부모가 행상을 떠나고 할머니는 병들어 누워있는 어느 가정의 한 소년이 수업료 때문에 겪게 되는 고생을 담고 있다.
이와함께 영상자료원은 일본 와세대대학 연극박물관에서 이 영화의 시나리오도 발굴하는 쾌거를 이뤘다. 앞서 밝혔듯이 '수업료'의 원작은 광주 북정(北町)의 공립심상소학교에 다니던 우수영이 쓴 작문이다. 경일소학생신문 조선총독부 학무국장상을 수상한 이 작문을 일본인 시나리오 작가 야기 야스타로가 각색한 것이다. 그리고 이 시나리오는 사단법인 전일본영화인연맹의 기관지였던 '영화인'에 게재됐다.
[영화 '수업료' 스틸컷. 사진 = 한국영상자료원 제공]
이은지 기자 ghdpssk@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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