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구/NBA
[마이데일리 = 광주 김진성 기자] 치열함이 기본이다.
한국농구와 미국농구의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일까. 파워를 비롯한 운동능력, 철저한 기본기술을 바탕으로 한 각종 공수 테크닉의 격차가 거론된다. 한국이 미국을 따라잡을 수는 없어도 농구 선진국들과의 격차를 최대한 좁히기 위한 노력을 반드시 해야 한다. 지도자, 선수들의 노력에 KBL, WKBL, 대한농구협회의 각성 및 건강한 시스템 구축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12일과 13일 NCAA 남자농구 명문 캔자스대학의 광주 유니버시아드 준결승전과 결승전을 현장에서 지켜봤다. 캔자스대학을 보면서 미국농구와 한국농구의 격차가 명확하다는 게 확인됐다. 그러나 결정적인 차이점 한 가지가 더 발견됐다. 바로 경기에 임하는 치열함이었다.
▲차원이 다른 캔자스대학의 치열함
캔자스대학과 독일의 남자농구 결승전은 유니버시아드 최고의 명승부였다. 두 팀은 2차 연장까지 가는 대혈투를 벌였다. 2쿼터 중반까지 크게 앞섰던 캔자스대학은 독일의 지역방어에 고전했다. 패스 흐름이 뻑뻑해지면서 외곽포가 지독히 터지지 않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독일 높이의 장점이 극대화됐다. 미국 가드들은 독일 높이를 의식, 골밑 슛을 많이 놓쳤다. 또한, 독일보다 1경기를 더 많이 치른 캔자스대학의 체력은 많이 떨어져있었다. 가드진의 수비가 느슨해졌다. 결국 독일은 무차별 3점포로 완벽히 주도권을 가졌다. 3쿼터 막판 역전한 독일은 4쿼터 막판까지 캔자스대학을 몰아쳤다.
하지만, 독일도 크게 달아나지는 못했다. 그리고 캔자스대학은 끈질겼다. 덩크슛을 꽂으며 쇼타임만 선보일 것 같은 선수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일단 전투적인 리바운드와 앞선에서의 수비가 살아났다. 득점 후 곧바로 압박, 볼을 빼앗는 공격적 수비가 살아났다. 루즈볼에 몸을 날렸고, 끊임없이 속공을 시도했다. 6점 뒤진 상황에서도 서로 얘기하며 수비 동선을 체크했고, 박수로 끝없이 용기를 북돋아줬다. 승부처에서 엄청난 전투력이 다시 나왔다. 결국 캔자스대학은 극적으로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다. 1차 연장전서도 비슷한 흐름이었다. 2차 연장전서는 그렇게 터지지 않던 3점포(프랭크 메이슨)가 결정적인 순간 터졌다. 그러자 독일이 먼저 지쳤고, 무너졌다.
사실 캔자스대학으로선 이번 대회 통틀어 가장 나쁜 경기력이었다. 독일의 장점에 효율적으로 대처하지 못했기 때문. 하지만, 승부처에서의 지배력은 명불허전이었다. 그 지배력은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표출된 치열함이 근본적인 원동력이었다. 무너질 듯하면서도 끝내 일어섰고, 고비를 넘겼다. 위기에서 슛 셀렉션이 급해지거나 실책을 속출할 수도 있었지만, 놀라울 정도로 냉정했고, 침착했다. 빌 셀프 감독은 "승부처에서 집중하고, 다음 플레이를 먼저 생각하는 게 중요하다"라고 했다. 또한, 현장 관계자는 "캔자스대학은 저런(격렬한 대접전) 승부를 엄청나게 많이 경험해봤다. 매년 격렬한 토너먼트를 치른다.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라고 했다.
▲KBL, WKBL 16개 구단도 배워라
캔자스대학이 패배의 위기에서 보여준 강인한 전투력은 아마추어 대학이라고는 믿겨지지가 않았다. 정말 부끄러운 얘기지만, KBL과 WKBL 팀들보다도 훨씬 더 뛰어났다. 한국 농구에 수 많은 문제점들이 있지만, 이 문제는 농구의 핵심적 컨텐츠인 경기력과 직결된다는 점에서 절대 간과할 수 없다.
국내 농구관계자에게 "겉멋 든 선수가 적지 않다"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승부에 대한 치열함이 부족하다는 얘기다. 운동능력도, 기본적인 테크닉도 부족한데 승부에 임하는 치열함마저 부족하다는 쓴소리. 또 이 관계자는 "지난 시즌까지 국내에서 승부처에서 가장 강했던 팀은 모비스다. 그런 모비스도 개개인의 기량만 놓고 보면 결코 10개구단 상위권이 아니었다"라고 회상했다. 실제 모비스 유재학 감독에게서도 백업 멤버들의 기량이 부족하다며 지적하는 모습을 많이 봤다. 하지만, 모비스는 승부처에서 강력했다. 승부처에서 냉정한 판단으로 개개인에게 명확하게 역할을 분담시키는 유재학 감독의 능력이 대단했고, 선수들은 유 감독의 지시를 충실히 이행했다. 거기에 유 감독의 리더십에서 나오는 특유의 단단함이 선수들의 정신적 느슨함을 배제하면서 치열함으로 연결됐다.
그러나 문제는 모비스, 여자농구의 우리은행 정도를 제외하면 그런 전투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팀이 많다는 것이다. 충분히 더 좋은 경기력을 보여줄 수 있는데 무너지는 경우가 많다. 국내 프로농구에는 멤버 구성이 좋은데 꼭 무너지는 팀이 한 시즌에 1~2팀씩 나오는데, 이런 케이스가 많다.
사실 국내 남녀 16개구단 선수들의 테크닉 차이는 한국과 미국의 엄청난 격차를 감안하면 종이 한 장 차이다. 적어도 국내 프로농구에서 그 차이는 승부에 임하는 치열함으로 상당 부분 극복할 수 있다.(국제무대서도 기본적으로 가져야 할 부분.) 그게 경기력의 일시적인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고, 팬들의 흥미를 끌어올리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국내 몇몇 선수들의 프로답지 않은 느슨한 마인드가 아쉬움을 불러일으키는 경우가 적지 않다. 기본적인 맨투맨 수비를 등한시하고, 의지 부족으로 공을 따라가려다가 멈춘다. 노력 부족으로 슈팅, 드리블 테크닉이 답보 상태에 머무른 선수가 부지기수다.
물론 기본적인 역량이 많이 떨어지는 한국농구에서 테크닉과 파워의 향상 없이 치열한 마인드만 갖는다고 해서 경기력이 올라가진 않는다. 더구나 캔자스대학은 기본적인 테크닉과 운동능력이 최상급인 선수들이 모인 명문대학. 객관적인 전력이 강력한 상황에서 승부처에서의 엄청난 치열함까지 가미되면서 더욱 위협적인 힘을 뿜어냈다. 객관적인 한계가 명확한 국내 프로 구단들이 그 정도까지의 시너지효과를 발휘하지는 못해도, 적어도 캔자스대학이 보여준 치열함의 의미, 명승부의 원동력을 되새겨볼 필요는 있다.
캔자스대학은 프로가 아니다. 순수한 아마추어 정신, 헝그리 정신이 살아있다. 농구로 돈을 버는 국내 남녀 프로농구선수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하지만, 농구라는 본질 앞에서 갖춰야 할 치열함은 아마추어든 프로든 기본적으로 갖춰야 한다. 오히려 많은 연봉을 받을수록 더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기 위해 더 큰 사명감을 가져야 한다. 결국 선수들의 의식, 즉 마인드부터 바뀌어야 한다. 캔자스대학의 치열함 속에 한국농구의 지향점이 숨어있다.
[캔자스대학(위), 캔자스대학-독일 결승전(가운데, 아래). 사진 = 마이데일리 사진 DB, 광주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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