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마이데일리 = 허설희 기자] 옴니버스 형태의 극일수록 중심을 잡는 인물의 역할이 중요하다. 각 인물을 연결시키는 동시에 작품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부담스럽지 않게 전해야 한다. 중심이 잘 잡힐수록 극은 더 단단해지고 공감은 더 깊어진다. 연극 '춘천, 거기' 속 배우 김나미의 역할이 그렇다. 그는 작품을 더 단단하게 만들고, 공감은 더 깊게 전달하고 있다.
연극 '춘천, 거기'는 아홉 남녀의 각기 다른 사랑 색깔을 옴니버스 식으로 그려내는 작품. 가슴이 먹먹해질 만큼 아픈 사랑과 확고한 믿음 아래 완성되는 사랑, 솜사탕처럼 달콤하기만 한 사랑 등 다양한 형태의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현실에서 누구나 겪었을 법한 관계와 감정으로 솔직하게 그려내 작품성과 대중성을 고루 갖춘 수작으로 평가됐다.
극중 희곡작가로서 조금은 독특한 공연을 준비 중인 수진 역을 맡은 김나미는 조금씩 여유를 찾으며 무대를 즐기고 있다. 극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전하는 소녀가 됐을 때도 더 여유롭게 내레이션을 하며 관객과 만나고 있다.
김나미는 예전부터 '춘천, 거기' 팬이었다. "'춘천, 거기' 싫어하는 사람 있을까요? 없을 것 같은데"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 정도. 내 이야기, 친구들 이야기, 아는 언니 오빠들의 이야기, 우리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피부에 밀착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이제 와서 보니까 전쟁 같은 사랑도 했었고 세진, 영민 커플처럼 집착하기도 하고 집착 받기도 했던 것 같아요. 수진의 마음으로는 '어이그~ 이 청춘들아' 이런 마음이 들기도 하고요. 많이 공감했는데 지금은 또 나이 든 사람들의 사랑에 더 많이 공감을 하는 것 같기도 해요. 아무래도 비슷한 경험들이 있죠. 구체적으로 그 상황은 아니더라도.. 그런 지난 사랑이 또 제 자양분이 되기도 하는 것 같아요. 여러가지 다 공감이 되는 것 같아요."
김나미는 극중 이야기의 중심을 잡고 있는 수진을 비롯 내레이션을 하는 소녀 역을 맡고 있기에 관객들과 더 소통해야 한다. 김나미는 "부담스럽진 않지만 이렇게까지 중심이 되는 인물인지 몰랐다"며 "내가 중심을 잘 잡아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다른 인물들이 신을 만들어 놓으면 그 쌓아 놓은 것을 무너뜨리는게 아니라 고정하는 스프레이 역할을 해요. 연습하면서 더 중심을 잘 잡아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됐죠. 다행히 함께 하는 분들이 믿어주셔서 원하는대로 할 수 있었어요. 배우들도 절반 이상이 아는 사이라 금방 친해질 수 있었고 캐스트들이 많다보니 신선함과 변수에서 오는 경우의 수가 너무 행복하고 재밌더라고요. 만나는 사람마다 다 처음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드니까 배울 수 있는 것들도 더 많아지는 것 같아요."
하지만 어려운 점도 분명 있다. 특히 독백이 그렇다. 말이 너무 어려워 "어디서 숨을 쉬어야 합니까"라고 묻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역할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한 번에 쉽게 이해되지 않는 내레이션을 쉽게 이해시켜줘야 한다는 것. 마음에 와닿는 내레이션을 고스란히 관객들에게도 전해야 한다. 그래서 더 수진과 소녀에 차이를 확실히 두려 했다.
"수진과 소녀 독백의 차별성을 둬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수진이라는 인물, 소녀로 나왔을 때 해설자라는 캐릭터만 잘 구분 된다면 다양함을 보여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죠. 수진이가 워낙 매력적인 인물이잖아요. 털털하면서 사랑 받는 여자고 아픔을 이야기할 땐 또 울컥하고 눈물이 그냥 나와요. 그러다 내레이션을 할 때는 차분함을 보여줄 수 있고 다양한 모습이 나올 수 있는 것 같아요."
가지각색의 사랑을 하는 커플 에피소드를 보면서 사랑에 대해서도 한 번 더 생각했다. 집착하기도 하지만 순수하고 눈물도 흘리는 등 다양한 자신의 모습이 스친다. 다 경험해 봤기 때문일까. "열 손가락 깨물어서 안 아픈 캐릭터가 없다"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캐릭터 하나하나가 와닿는 만큼 '춘천, 거기'는 김나미가 애정을 온전히 쏟고 있는 작품이다. 최근 '2015 서울연극제'에서 연극 '청춘, 간다'로 연기상을 수상하며 '아, 진짜 연극 배우가 됐구나'를 느낀 뒤 '춘천, 거기'와 함께 하게 돼서인지 더 본인의 모습을 자신있게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스스로 하게 된다.
"상이 너무 감사한게 내가 걷고 싶은 길을 가도 된다는 허락을 해준 느낌, 용기를 준 느낌이었어요. 이전까진 상업극을 많이 해왔는데 사실 잘 알려지지 않은 작품들이라 해도 좋은 극단에서 좋은 선생님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작품을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그런 작품에서 상까지 받으니까 내가 가고 싶은 길을 가도 된다는 생각이 들었죠. 기라성 같은 선생님들과 함께 상을 받고 하니까 여기 일원이 된 느낌, 진짜 연극하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사실 한 번도 제가 연극배우라는 생각을 해본적이 없는데 정말 행복했어요."
수상 때문이 아니더라도 '청춘, 간다'는 확실히 김나미에게 터닝포인트가 됐다.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던지는 공연이 좋기 때문에 30대 현대인의 이야기를 그린 '청춘, 간다'에 더욱 애정이 갔다. 이후 출연하고 있는 '춘천, 거기' 역시 우리들의 이야기라 좋다. 배우라는 직업에 대해서도 더 생각하게 됐다.
"처음 연기 시작했을 때는 트레이닝도 받고 소속사에 들어가기도 했어요. 근데 하고 싶었던 것들이 아닌 다른 부분도 더 신경 써야 한다는 느낌을 받으니까 참을 수가 없더라고요. 소속사 계약이 끝나고 연극 오디션을 엄청 보러 다니고 연극을 하게 됐죠. 배우로서 제가 기특한 부분이기도 해요. 제 힘으로 한 거니까요. 어릴 때는 겉 멋이 들어서 '유명해질거야!' 이러기도 했는데 그게 중요한 게 아니란 걸 알았어요. 물론 제게 너무나 소중한 시간이었죠. 열심히 하다 보니까 기회도 왔고요."
김나미는 지금까지의 배우 생활이 힘들지 않았다. 모험왕 같은 성격이고 도전적이라 배우가 더 잘 맞았다. 안정적인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더 쉬지 않고 도전할 수 있었고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다. 운이 좋았다고 할 정도로 만나는 작품, 혹은 오디션마다 좋은 기회가 동반됐다. 혼자 시작해서 이렇게 왔으니 대견하다는 생각, 열심히 살아 왔다는 생각도 든다.
"연기를 하는 게 너무 행복해요. 그냥 생활을 하다가도 대사를 읊조리고 있어서 주위에서 무섭다고 할 때도 있는데 그 자체가 재밌고 좋아요. 남자친구도 '나미야. 너는 진짜 좋아서 하는 것 같아'라고 해요. 놀리듯이 '연극계의 박지성'이라고 하기도 하는데 박지성이 공 차는 게 재밌어서 하는 거라고 하듯이 저도 진짜 즐거우니까 하게 돼요. 또 지금은 워낙 팬이었던 '춘천, 거기'를 하고 있으니 정말 행복하죠. 지금 저의 여유로운 마음이 수진에게 많이 부여가 된 것 같아서 좋아요. 늘 지금처럼만 하면 소원이 없겠어요. 제가 걸어왔던 길만큼만 해도 '나는 다 이뤘다' 할 것 같아요. 항상 선입견을 깨면서 스펙트럼을 넓히고 싶어요."
연극 '춘천, 거기'. 공연시간 120분. 오는 8월 30일까지 서울 대학로 유니플렉스 3관. 문의 02-569-1614.
[배우 김나미. 사진 = 스토리피 제공]
허설희 기자 husullll@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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