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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전원 기자] 찌질한데 악날하고, 마냥 아이 같으면서도 치밀하다. 배우 이기우가 연기한 신영진 이라는 캐릭터다. 정말 ‘신개념 악역’이었다.
최근 케이블채널 tvN ‘기억’(극본 김지우 연출 박찬홍)에서 악역 중의 악역 신영진을 연기한 이기우는 “처음하는 악역이라 그런지 너무 흥미로웠고, 그 전에 알지 못했던 연기에 대한 매력을 알아가는 계기가 됐다”고 입을 열었다.
그간 키다리 아저씨나 훈남 역할만 주로 했던 이기우는 ‘기억’을 통해 완전히 이미지 변신에 성공했다. 화려한 수트에 대비되는 비열한 눈빛과 행동, 야구 배트와 피규어를 모으는 오타쿠스러움까지 정말 독특하면서도 이해할 수 없는 인물이었다. 큰 키와 달리 말할 때 한껏 쭈그러드는 모습도 눈길을 끌었다.
“신영진이란 캐릭터를 처음 구상했을 때 수트핏이나 어깨에 구애받지 않고 좀 쭈그러져 있는 모습을 보여주려 했어요. 크게 웅크린다기보다는 손가락을 까딱 거린다거나 소심한 제스처 등에 집중했어요. 그러다 화나는 일이 생기면 어깨가 펼쳐지고 거대한 느낌이 생기죠. 웃을 때도 호탕하지 못하고 본능적으로 유아적인 제스처들이 나와요. 똘끼가 있는 경박스러운 웃음소리라고 할까요? 그게 다 신경진의 성격을 대변해주는 도구가 됐죠. 신영진 자체가 열다섯살 중학교 수준의 멘탈의 소유자거든요. 어떻게보면 천박하고 유치하죠. 하는 말도 애같고요. ‘초대박’ ‘빡돌았겠네’ 등의 언어 구사만 봐도 알 수 있죠.”
보통 악역을 연기하는 배우들의 경우 시청자들의 미움울 한몸에 받아 괴로워하거나 속상해할 경우가 많다. 악플을 보며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기우는 달랐다. 다양한 캐릭터에 대한 갈증을 느끼고 있던 차에 신영진을 만났고, 색다른 악역을 그려낸 덕이었다.
“악플같은건 두렵지 않았어요. 데뷔한지 10년이 넘다보니 그런 연기를 한다고 팬들이 등을 돌릴 것도 아니고, 오히려 다른 모습을 보여주면 좋아하시더라고요. 연기하는게 너무 재미있었고 특이한 캐릭터를 해보고 싶었어요. 그 동안 조태오, 남규만 등 악역의 아이콘으로 대변되는 분들이 있었기 때문에 신영진이 조금이라도 다른 면이 있지 않으면 안될 것 같았어요. 필사적으로 보여드려야 했죠. 그걸 감독님이 내심 기대하시는 것 같았고 주문도 해주셔서 꼭 ‘뭐라도 하나 준비해서 가야지’라고 생각했습니다. 부담은 매회 대본이 나올 때마다 있었지만, 최대한 유아적인 모습을 보여드리려고 노력했어요.”
안타깝게도 ‘기억’의 시원치 않은 결말을 답답해하는 시청자들이 많다. 신영진이 어떤 처벌을 받았는지 자세히 그려지지 않았기 때문.
“신영진이 좀 바닥까지 떨어지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는데 아쉽긴 해요. 준비된 연기를 다 못보여드린 것 같아서요. 연기에 대한 욕심을 좀 남겨둘 수 밖에 없었으니 이 느낌과 에너지를 다음 작품에서 쓰고 싶어요.”
다행히 ‘기억’의 현장 분위기는 최고였다고 전해진다. 박태석 역의 이성민을 필두로 전노민, 이준호 등 많은 배우들의 열연이 빛났고 감독, 작가와의 호흡도 최고였다고. 모든 일이 합리적으로 진행되고 배우들끼리 사이도 좋아 모두들 ‘최고의 현장’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특히 이기우는 연기적인 면에서 이성민에게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갓성민이시죠. 연기적으로나 인격적으로 너무 좋으신 분이니까요. 그래서 이성민 선배와 항상 붙어다니는 이준호, 윤소희 등이 너무 부러웠어요. 게다가 이성민 선배와는 만나더라도 극중 캐릭터가 서로 괴롭히고 복수하는 사이였기 때문에 힘들었어요. 물론 카메라가 돌아가지 않을 때는 친근하게 해주시지만, 박태석과 신영진이 아무래도 대립되는 관계라 평소에도 더 살갑게 대하지 못하는 부분이 분명히 있거든요. 그래서 이성민 선배가 앞에 계셔도 더 적극적으로 표현하지 못해 아쉽죠.”
이기우는 ‘기억’이 자신의 인생작이자 터닝 포인트라고도 말했다.
“’기억’을 하면서 마인드가 많이 바뀌었어요. 이성민 선배가 연기하는 걸 바로 앞에 보면서 연기에 대한 자극을 받은건 물론이고 감독님이나 작가님 등 오래 호흡을 맞춰오신 베테랑 분들에게 듣는 조언이 큰 자양분이 됐거든요. 그래서 더 치열하게 달리지 않으면 발전도 느릴 뿐더러 더 이상 올라갈 수 없을거라고 깨달았어요. 제가 ‘인생 드라마’라고 평가하는건 제대로 시작한 악역, 개인적으로 기념이 될만한 이슈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분명히 제 인생을 바꿔줄 좋은 분들을 만난 기회가 됐기 때문이에요.”
이기우는 당분간 휴식을 취하며 중국어 공부에도 힘쓸 예정이다. ‘기억’ 촬영을 모두 마친 후 중국어를 배우기 위해 책을 구입하고 선생님을 섭외하기도 했다고.
“최근에 중국에서 진행된 시사회에 들렀다가 중국 시장에서 일해보고 싶은 욕심이 생겼어요. 시장 사이즈도 크고 문화 자체도 다르고 제작 여건도 이곳과 차이가 있어 경험해 보고 싶었거든요. 제 큰 키가 중국 시장에서는 핸디캡이 아닌 매력으로 다가갈 수 있다는 생각도 했어요. 제 개성을 잘 살리면 될 것 같아요. 연기 욕심이 그 어느때보다 큰 상태니 최대한 빨리 좋은 모습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사진 = 김성진 기자 ksjksj0829@mydaily.co.kr]
전원 기자 wonwon@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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