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한예리는 두려움과 고소 공포를 참아내며 전봇대 올라가
오랜만에 찾아온 흑백영화 ‘춘몽’은 서울 외곽의 수색동을 배경으로 그곳을 배회하는 익준, 정범, 종빈, 그리고 그들의 여신 예리가 엮어가는 한 편의 서정시와 같은 작품이다. 기획단계부터 충무로를 대표하는 세 감독인 양익준, 박정범, 윤종빈의 연기 도전으로 기대와 관심을 받았다. 특히 극 속의 캐릭터를 세 감독의 전작이자 그들이 직접 연기했던 ‘똥파리’ ‘무산일기’, ‘용서받지 못한 자’로부터 수혈 받아 현재 그들 나이의 인물로 재구성한 점이 또 하나의 독특한 부분이다. 위의 언급했던 작품들은 본인 연출작이었기에 다른 감독의 장편 주연 데뷔이기도 했는데, 세 감독이 오랜 시간 우정을 나누었던 장률 감독과의 첫 협업이기도 하여 묘한 긴장감과 함께 기대감이 동시에 흐르는 현장이었다.
양익준 감독은 세 감독 중 극 속의 상황과 마찬가지로 큰 형의 역할을 따뜻하게 담당하였다. 다른 두 감독보다 연기 경험이 더 많은 베테랑 배우이기도 하기에 두 감독과의 앙상블을 위한 안정감을 가장 신경 써줬고, 특히 세 감독과의 연기 호흡을 홀로 담당해야 했던 한예리 배우를 챙기는 데에 가장 적극적인 현장의 분위기 메이커(!).
한예리 배우 역시 그들이 하나의 형제라면, 양익준 감독을 단연 '장남' 역할을 해줬다고 두 손을 지켜 세워 줄 정도로 칭찬했다. 양익준 감독이 상대배우뿐만 아니라 현장 스태프 모두에게 따뜻한 감정을 아낌없이 나누어준 ‘춘몽’의 ‘큰 형님’이었다면, 박정범 감독은 극 속 캐릭터 ‘정범’과 다름없이 묵묵히 현장의 한 켠에서 연기를 준비하는 스타일. 장률 감독의 현장 스타일 상 시나리오 외의 새로운 설정과 씬들이 급작스레 생기기 때문에 원래 약속된 일정이 아니어도 장률 감독의 호출이면 언제든 현장으로 달려와 주었다. 역시나 현장에서 변경된 영화의 내용 안에서 하루 종일의 대기에도 막상 찍힐 수 없는 상황이 될지라도 말이다. 그럼에도 ‘춘몽’ 속 ‘정범’처럼 긴 기다림의 시간과 촬영 취소에도 불만 한마디 없이 견디고 다시 또 다음 날의 촬영을 준비했다.
마지막으로 윤종빈 감독은 소위 ‘천재’ 스타일의 배우로 현장에서 많은 아이디어와 디테일한 표현들을 제안하고, 구현해내는 장기를 가감 없이 드러냈다. 촬영이 끝난 이후에는 두 감독과 그날의 촬영분을 복기하며, 괴로워하다가도 결론에는 다음날 연기할 디테일들을 챙기면 합을 미리 맞췄다는 후문.
영화 속의 여신 한예리 배우는 장률 감독에게 ‘완벽한 리듬을 몸과 정서로 구사한다’라는 찬사를 들을 정로도 세 명의 감독과의 협업 안에서도 자신의 아우라를 명징하게 남겼다. 특히 장률 감독의 현장에서는 기존에 정해놓은 촬영 분량 외에도 즉석의 아이디어와 정서를 재현하는 작업이 주를 이루는데, 언제든 주저하지 않고 현장의 모든 배우와 스태프를 압도하는 연기로 화답했다. 영화 속 내용 중 전력기술교육원에서 실제 전봇대에 올라가 상당시간 버텨야 하는 씬에서도 안전장비 없이 홀로 두려움과 고소 공포를 참아내는 연기에서도 그녀는 어김없이 오르고야 말았다.
농담처럼 감독이 네 명인 현장일 것이라 모두들 떠올렸겠지만, 카메라가 돌아가는 순간 그들은 예리와 세 남자로 완벽히 몰입한 배우의 면면으로 완성된 시간들이었다. 물론 네 감독의 머릿속에서는 각자의 영화가 완성되고 있었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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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 = 스톰픽쳐스코리아]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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