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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김미리 기자] 7월말 중국에서는 보이지 않는 압박이 시작됐다. 일명 한한령(한류 금지령).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배치에 따른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한국의 연예인들이 하나 둘 중국 활동에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고, 한국과 관련된 방송 프로그램에 제제가 가해졌다. 홍길동이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한 것처럼, 중국에 진출한 연예인의 소속사 혹은 제작사 역시 한한령이 있다고 똑 부러지게 이야기하지 못한다. 중국 내 지켜보는 눈이 있다 보니 공식적인 입장을 밝힐 수 없다는 것.
하지만 한한령은 실재한다. 지난달 중국 외교부 대변인 겅솽은 정례브리핑에서 한한령이라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사드를 언급하며 “중국인들도 이에 불만을 표시했고, 관련기관도 이런 정서를 주의해야 할 것이라 본다”고 사실상 한한령을 시인했다. 꼭 겅솽의 발언이 아니더라도, 최근 일어나고 있는 일들은 한한령이 아니고서는 설명되지 않는다.
실제 중국에 진출한 많은 국내 연예인들이 하차하거나 모자이크를 당했다. 유인나는 중국판 ‘인현왕후의 남자’인 중국 후난위성TV ‘상애천사천년2’ 여자 주인공에 확정됐지만, 대만배우 곽설부가 그의 자리를 대신했다. 송중기와 전지현이 모델로 나섰던 CF의 경우 중화권 배우로 교체됐으며, ‘함부로 애틋하게’ 김우빈과 수지의 팬미팅도 갑자기 취소됐다.
뿐만 아니다. 중국에서 큰 인기를 누리던 황치열은 ‘쾌락대본영’과 ‘도전자연맹’에서 편집 당했고, 중국판 ‘아빠 어디가4’에서도 하차했다. 이를 두고 많은 중국 매체들은 한한령 때문에 하차 수순을 밟은 것이라 보도했다. 싸이와 아이콘도 예외는 아니었다. 강소위성TV ‘THE REMIX’에 출연 중이던 싸이와 아이콘은 8회까지는 정상적으로 등장했지만 9회에서는 통편집됐고, 전체 화면에서는 모자이크 된 채 전파를 탔다. 최근까지 이런 경향은 계속 됐는데, 지난달 중국 맞선 프로그램에 출연한 한 한국 남성 출연자의 경우 국적이 모자이크 처리됐다.
중국으로 진출한 한국 PD들도 한한령을 피해갈 수 없었다. ‘별에서 온 그대’의 장태유 감독의 경우 중국에서 연출을 맡은 ‘하지미지’에서 감독 이름이 교체되는 어이없는 일을 당했다. 바이두에서 ‘하지미지’를 검색할 경우 장태유 감독이 아닌 ‘한양’이라는 인물이 연출한 것으로 검색된다. 심지어 다른 작품들도 크레딧에서 한국 스태프들의 이름이 삭제되고 있다는 것이 국내 드라마 관계자의 말이다. 그동안 그나마 한한령의 직접적 타격을 받지 않았다 여겨졌던 중국 온라인 동영상 플랫폼에서도 갑작스레 다수의 한국 작품들이 자취를 감췄다. 중국의 광전총국은 웹영화산업 발전을 규범화할 것이라 밝혔지만, 이 역시 한한령의 여파라는 게 국내 관계자들의 판단이다.
특히 지난달 한한령이 강화된 후에는 더욱 한류 콘텐츠가 설 자리가 좁아졌다. 한국 스태프들의 중국 진출길도 막혔으며, 한국 연예인들이 출연하는 방송 콘텐츠의 중국 내 송출이 금지됐다. 공식화된 문서는 없지만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한한령은 한류 콘텐츠가 설 자리를 점점 빼앗고 있다.
이 가운데서도 한한령의 여파는 조금씩 갈리고 있다. 중국에 진출한 한류 스타의 경우는 그나마 조금 나은 편. 한한령이 강화된 후 중국이 아닌 한국에서 활발히 활동을 이어가며 또 다른 기회를 모색할 수 있고, 이런 방법을 택한 스타들도 적지 않다. 경우에 따라서는 부각되지 않았을 뿐이지 꾸준히 중국 활동을 이어가는 경우도 있다. 반면 제작사의 경우 회사가 휘청일 만큼 큰 타격을 받은 경우가 부지기수다. 기존 논의 중이던 중국과의 비즈니스도 중단되거나 무산된 경우가 허다하다.
한 드라마 제작사 관계자는 “굉장히 심각한 상황이다. 완전히 얼어붙었다. 비즈니스 논의도 다 멈췄다”며 “최근 아시아 최대 규모의 방송영상콘텐츠 마켓인 BCWW(국제방송영상견본시)가 열렸다. 지난해에 비해 참여도가 적었고, 중국에서 방문한 바이어들의 수도 적었다. 내년에는 더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왔다. 직접 작품을 거래하고 협업하는 것은 물론 포맷을 수출하는 것도 현저히 줄었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중국에게 한류 콘텐츠는 여전히 매력적이라는 게 국내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중국 내 수요가 높을 뿐 아니라 제작능력 향상에도 적잖이 기여 중이며, 시청률까지 담보한다는 것. 한한령에 잠시 주춤하고 있을 뿐, 한국 관계자들에게도 중국은 여전히 기회의 땅이다. 이런 가운데, 한한령이 언제까지 자연스레 양국의 흐름을 강제적으로 묶어 놓을 수 있을지 많은 이들의 눈길이 쏠려 있다.
[‘상애천사천년2’유인나-곽설부, 중국 스마트폰 비보의 모델이었던 송중기와 현 모델 펑위옌, 오포 모델이었던 전지현과 현 모델 안젤라베이비(위부터). 사진 = ‘상애천사천년2’ 포스터, 비보·오포 웨이보 캡처]
김미리 기자 km8@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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