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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김나라 기자] 배우 김명민(44), 괜히 '연기 본좌'가 아니다. 정작 당사자는 손사래를 치지만 연기에 대해 논하는 한마디 한마디를 듣고 있자면 그 표현마저 부족하다.
최근 서울 종로구 팔판동 한 카페에서 김명민을 만났다. 이날 사진 촬영이 진행되지 않았던 만큼 그의 진정한 사복 패션을 엿볼 수 있었다. 스냅백을 눌러 쓴 채 힙합 스웨그를 물씬 풍기며 카페에 들어섰다. 직접 들고온 블루투스 스피커로 음악을 재생하고 딱딱한 인터뷰 분위기를 부드럽게 유도했다.
"형식적인 인터뷰로 시간 낭비하고 싶지 않아요. 최대한 가식 없이 솔직담백한 이야기를 전하고 싶은 마음이에요."
올해 연이어 두 작품을 선보인 김명민. 지난 6월 '하루'에 이어 두 달 만에 신작 '브이아이피'(V.I.P.)로 관객들을 찾았다. 각각 의사와 형사 캐릭터를 소화, 이미 여러 차례 선보인 바 있는 역할들이었음에도 그 매력은 또 달랐다. 비록 영화는 아쉬운 흥행 성적을 거뒀지만 김명민의 연기력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다.
"획일화된 충무로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역할은 한정적일 수밖에 없어요. 거의 형사, 검사, 변호사, 의사 등 전문직종에서 돌고 돌아요. 그래서 저 같은 경우 맡은 인물에 빠져들어 가서 특화하려고 해요. 학교 다닐 때 그렇게 배웠거든요. 캐릭터화되어야 한다고."
본격적으로 작품에 임하기 전, 꼭 전사(前史) 과정을 거치는 덕분에 입체감이 남달랐던 것.
"계속 상상을 펼치는 거예요. 그러다 보면 저도 모르게 옷이 싹 입혀지고 행동, 말투 등이 생겨나요. 일단 한번 머릿속에 들어온 이상 신을 찍을 때 연상되죠. 굳이 생각하려고 하지 않아도 학습이 됐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캐릭터를 구축할 수 있어요."
하지만 그는 "뜻대로는 잘 안 돼요"라며 엄살 아닌 엄살을 부리기도 했다.
어느덧 데뷔 21년 차. 뚝심 있는 연기 철학을 가졌지만 고집을 부리진 않는다. 작품의 완성도를 위해서라면 낄 때 끼고 빠질 때 빠지는 융통성이 빛나는 그다. 특히나 '브이아이피'에서 그랬다. 박훈정 감독이 직접 시나리오까지 썼기에 까다로운 요구가 이어질 수밖에 없었지만 묵묵히 따랐다.
"박훈정 감독님의 디렉션에 따라서 애드리브도 자제하고 건조하게 표현했어요. 무언가를 설정하려고 하지 말라고 하셨거든요. 물론, 의견을 제시하기도 하는데 안 먹힌다는 걸 간파하면 그때부터는 조력자 모드로 전환해요(웃음). 연출자가 최고예요. 연기라는 게 자기 신만 볼 줄 안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거든요. 우리들은 전체를 다 못 봐요. 전체를 볼 수 있는 사람은 감독님뿐이죠."
그 어렵다는 금연 성공, 끊었던 담배에 3년 만에 다시 불을 붙인 이유도 연기 때문이었다. '브이아이피' 등장 내내 담배를 태우며 고생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3년째 금연 중이었는데 영화 때문에 지난해 8월부터 다시 흡연했어요. 그러다가 촬영이 끝난 시점인 올 1월 말에 딱 끊었죠. 당시 한 시간 만에 한 갑을 피웠어요. 결국 오바이트를 하고 말았죠. 담배를 입에 물고 연기하는 것도 무척 힘들었어요. 발음도 새고 너무 불편했어요."
"아직도 갈 길이 멀어요. 하지만 막힘 없이 술술 풀리면 무슨 재미가 있겠어요. 게임도 그렇잖아요. 쾌감을 못 느낀다면 판을 떠나야겠지요. 지금 너무 행복해요. 그런데 연기를 죽을 때까지 하고 싶지는 않아요. 언젠가는 내려놓고 잃었던 것들을 다시 찾으러 가보고 싶은 생각도 있어요. 대중에게 제가 즐거움을 드릴 수 없을 때, 그게 죽은 거라고 생각해요. 지푸라기를 잡고 길게 늘이면서는 배우의 길을 가고 싶지는 않아요."
[사진 =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김나라 기자 kimcountry@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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