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성영화
[마이데일리 = 이예은 기자] 살아왔고, 여전히 살아있는 그리고 앞으로도 살아갈 69세 여성의 이야기다. 영화 '69세'가 약자의 시선에 서서 유의미한 화두를 던졌다.
11일 오후 서울 성동구 성수동 메가박스 성수에서 영화 '69세'(감독 임선애) 언론시사회가 열려 임선애 감독을 비롯해 배우 예수정, 기주봉, 김준경 등이 참석했다.
'69세'는 비극적인 상황에 처한 69세 효정이 부당함을 참지 않고 햇빛으로 걸어나가 참으로 살아가는 결심의 과정을 그린 작품으로 제24회 부산 국제영화제 뉴커런츠 부문에 선정돼 소개된 후 관객들의 열렬한 지지 속에 관객상을 수상했다. 이러한 호응에는 영화가 지닌 메시지에 있다. 어느 한국 영화에서도 한 번도 다루지 않았던 장년 여성의 이야기를 통해 여성으로서, 노인으로서, 사회에서 약자가 감내해야 할 시선과 편견에 대한 화두를 던져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메가폰을 잡은 임선애 감독은 신중하면서도 날카로운 통찰력으로 데뷔작임에도 불구하고 높은 완성도를 선보였다. '사바하', '남한산성', '화차' 등 스토리보드 작가로 활동했던 임 감독은 "우연히 웹 검색을 하다가 여성의 성폭력 피해 사건을 다룬 칼럼을 봤다. 충격을 받았다. 제가 인상 깊게 받았던 문장이 '노인을 무성적 존재로 보는 사회적 편견이 도리어 가해자들이 노인 여성을 타겟으로 삼는다'였다. 신고율이 낮고 잘 드러내지 않을 거라는 약점을 잡는 거다. 그걸 바로 시작하지 않고 마음에 담아뒀다. 여성 노인이 주인공인 영화가 많지 않다. 누군가는 꼭 해보고 싶었다. 또 중년, 노년의 이야기를 좋아하기도 했고 도전의식이 있었다"고 기획 의도를 밝혔다.
제목의 나이를 '69세'로 설정한 배경에 대해서는 "저는 시나리오 쓸 때 나이나 이름을 정확히 써놓고 시작하는 편이다. 그래서 효정의 나이대를 언제로 설정할지 고민했다. 중년과 노년의 경계인 나이로 정하고 싶었다. 70세는 아니고, 69세가 적절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저희 어머니도 60대인데 여전히 젊은 엄마로 보인다. 제 선입견이었다. 오히려 제 선입견이 그렇게 작용했다"고 솔직히 털어놨다.
영화 '신과 함께-죄와 벌', 드라마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 등을 통해 다채로운 스펙트럼을 자랑했던 예수정은 사회가 정해놓은 노인의 틀에서 벗어난 노인, 효정을 연기했다. 효정은 남들에게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 옷을 차려 입고 늘 정갈한 자세를 유지하는 것이 노인답지 않다고 듣는 인물. 눈빛과 뒷모습만으로도 효정을 표현해낸 예수정은 혼란과 강인함을 동시에 품었다.
예수정은 "소재가 낯설었지만 소재에 국한하지 않고 넓은 개념으로 생각을 해봤다. 우리나라도 노령사회로 접어든다고 재앙처럼 걱정하는데, 사실 가보지 않은 것처럼 그 사회를 접하지 않아서 '노령사회'라는 집합체로 생각을 한다. 사회는 다양하게, 연령과 관계없이 변화하고 있다. 개체로서 볼 기회가 없었다. 하지만 이 작품을 보니 상당히 그 나이의 개인적인 삶이 있어서 굉장히 좋다고 생각했다"고 애정을 드러냈다.
효정(예수정)의 든든한 조력자로 활약하는 남동인 역의 기주봉은 "작품에서 책방 주인으로 나온다. 도저히 융합할 수 없는 의의가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그래서 작품을 하게 됐다. 또 고맙게도 감독과 예수정 씨가 저를 찾아줬다"고 출연 계기를 밝히며 "10대나, 20대나, 60대나, 70대나 여자 분들이 그런 일을 당한다면 똑같은 마음이 들 거다. 나이 먹었다고 해서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지나갈 수 없다. 그래서 동인 캐릭터가 나선 게 아닐까 싶다. 예수정 씨가 감독과 끊임없이 토론을 할 때 참 보기 좋았다"고 전했다.
부부도 아닌, 연인도 아닌, 친구도 아닌 효정과 동인의 오묘한 관계는 예수정의 아이디어로부터 시작했다고. 예수정은 "극중 동인과 효정이 참 중요한 관계라고 생각했다. 효정에게 동인이라는, 요즘 사람 말로 '남자사람친구'가 없었다면 과연 마지막 한 발자국 햇빛으로 나아가는 용기를 낼 수 있었을까 싶다. 없었을 것 같다. 그래서 동인은 굉장히 중요한 인물이다. 제가 상상을 해봐도, 사람이 혼자서 용기를 내는 것처럼 보이지만 뒤에는 용기를 내게끔 해주는 가까운 사람이 있다는 걸 믿는다. 현장에서도 그랬다. 기주봉 선생님이 있으면 늘 든든하고 따뜻했던 기억이 난다"고 치켜세웠다.
임선애 감독 역시 "저는 행운아다. 제 마음속의 1순위 두 분을 캐스팅했다. 공교롭게 기주봉 선생님은 안 될 뻔해서 포기하고 있었다. 그러다 예수정 선생님이 출연을 확정했는데 선생님이 '효정은 아무나 해도 되는데 동인은 기주봉만 할 수 있다'고 하시더라. 그래서 바로 연락을 드렸다. 다행히 기주봉 선생님이 하시려던 영화가 홀드가 됐다"고 전했다.
그러자 예수정은 "사실 기주봉 선생님이 캐스팅이 안 되면 기다려야겠다 싶더라. 칙칙하지 않고 인간미 풍기는 동인 캐릭터의 면모는 연기로 되는 게 아니라고 생각했다. 배우 자체에서 나오는 거라고 생각했다. 제가 생각하는 기주봉 선생님과 잘 맞는 역할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해 기주봉을 웃게 했다.
이중호 캐릭터를 연기한 신인 배우 김준경은 "이런 천인공노할 놈을 어떻게 연기해야 할지 고민을 많이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체가 주는 이야기에 기꺼이 희생하고 싶었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내더니 "처음에는 연기를 해야 하는 배역이니까 이해를 해보려고 했다. 하지만 이해가 잘 안 가더라. 그러다 어디서 인터뷰를 봤다. 중범죄자들은 죄의식이 없다고 한다. 이 사람은 일을 벌일 때 진짜 좋아해서, 죄라는 의식이 없을 거라고 합리화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재판을 받을 때도 억울한 느낌을 표현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한편, 임 감독은 열린 결말로 끝을 맺은 것과 관련해 "열린 결말이 중요했다. 운동권이나 다른 인물들을 설정해서 사건 해결을 할 수 있었겠지만 저는 두 사람이 서로에게 영향을 받아서 끝까지 해결해나가는 영화로 봐주시길 바랐다"며 "영화를 시작할 때는 여러 의도 등을 담아서 배치하지만 개봉 후에는 제 몫이 아니다. 물론 제가 생각한대로 읽어주시는 분도 계시겠지만 이 영화를 단순히 시놉시스나 예고편으로 판단하지 않으시면 좋겠다"고 기대를 당부했다.
기주봉 또한 "이런 사회적인 현상을 담은 영화로, 남녀노소가 서로 인간으로서 존중할 수 있는 메시지가 전달되기 바란다"고 덧붙였다.
이밖에도 김중기, 김태훈 등이 출연해 영화의 진정성을 더한 '69세'는 오는 20일 개봉한다.
[사진 = 엣나인필름 제공]
이예은 기자 9009055@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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