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마이데일리 = 대구 김진성 기자] 이쯤 되면 말로 설명이 안 된다.
두산 박세혁은 올해 정규시즌 96경기서 타율 0.219에 홈런을 1개도 치지 못했다. 더구나 두산 마운드는 도저히 정상이 아니다. 주전 포수로서 포스트시즌이라는 큰 무대서 투수들과 호흡을 맞추는데 모든 신경을 집중하는 게 맞다.
이런 박세혁이 포스트시즌서 홈런을 친다? 그것도 삼성이 자랑하는 특급 마무리 오승환에게. 심지어 박세혁은 LG와의 준플레이오프까지 포스트시즌 통산 30경기서 단 1개의 홈런도 치지 못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선수가 결정적 순간에 시리즈 흐름을 바꿔놓거나 그에 준하는 임팩트를 남기는 일. 두산이라서 그 상상이 현실화될 수 있다.
박세혁은 9일 삼성과의 플레이오프 1차전서 4-3으로 앞선 9회초 2사 주자 없는 상황서 오승환의 141km 패스트볼을 잡아당겨 우월 솔로아치를 그렸다. 두산은 여세를 몰아 1점을 더 내며 승리에 쐐기를 박았다.
두산은 2020년 가을만 해도 KBO리그 판 '라스트댄스'가 눈 앞이라며 전력유출에 대한 우려를 샀다. 실제 오재일(삼성), 최주환(SSG), 이용찬(NC)이 작년 겨울에 두산을 떠났다. 이미 수년간 주축들이 빠져나갈 대로 빠져나간 상황이었다.
실제 올 시즌 두산의 투타 응집력, 밸런스는 2015년 김태형 감독 부임 후 최악이었다. 한때 7위까지 처질 정도로 '정말 안 되겠구나'라는 평가까지 받았다. 그러나 9월 급반전으로 4위까지 치고 올라왔다. 여세를 몰아 키움과의 와일드카드 결정전, LG와의 준플레이오프까지 잇따라 통과했다. 그리고 삼성과의 플레이오프 1차전마저 잡고 7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에 1승만 남겨뒀다.
기본적으로 현역 KBO리그 최장수 사령탑 김태형 감독의 '타짜' 기질이 엄청난 힘을 발휘한다. 와일드카드결정전서 예상치 못한 더블스틸, 준플레이오프서 이영하의 4이닝 투구 등은 김 감독의 경험과 감이 축적된 '단기전 직관력'에서 기인한다.
두산에는 이제 2010년대 후반 왕조시절을 경험하지 못한 선수가 경험한 선수보다 많다. 그래도 플레이오프 1차전서 구원승을 따낸 홍건희는 "형들이 큰 경기를 많이 경험했다. 큰 경기를 많이 한 선수들이다 보니 즐기면서 하는 느낌이다. 부담감 없이 즐기면서 편하게 임한다"라고 했다.
포스트시즌은 1~2명의 미친 선수가 지배하는 무대다. 가을야구 경험이 많은 정수빈이 유독 돋보이는 이유는 경험으로도 설명된다. 그러나 홍건희나 LG와의 준플레이오프 3차전 이영하처럼 포스트시즌 경험이 그렇게 많지 않은 선수들까지 펄펄 나는 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단순히 김 감독의 용병술이라고 봐야 할까. 전력분석의 힘일까.
결국 두산 특유의 가을 DNA는 단순히 데이터 혹은 경험으로 설명이 힘든 영역에 들어섰다고 봐야 한다. 객관적 전력만 볼 때 두산은 절대 LG와 삼성을 앞서지 못한다. 그럼에도 승부처를 지배하며 경기를 가져온다.
분명한 건 개개인의 가을 DNA가 팀으로 빠르게 전염된다는 점이다. 대화든 소통이든, 내부적으로 단단한 건 확실하다. 홍건희는 "후배들을 보면 내가 힘든 시절 겪었던 모습이 생각나서 방향 제시를 많이 해준다. (이)승진이가 올해 안 풀려서 힘들었는데, 얘기를 많이 했다. 아직 나이도 창창하니 성장할 수 있다. 이겨낼 것이다"라고 했다.
정작 홍건희도 작년에 KIA에서 이적한 뒤 혼란을 겪었다. KIA 시절 선발투수로의 연이은 실패에 약점인 제구를 보완하고자 스피드를 의도적으로 떨어뜨리려고 했다. 그러자 두산 코치들은 홍건희에게 "네 강점이 스피드인데 왜 스피드를 줄이고 제구를 잡으려고 하냐. 강점인 패스트볼로 밀어붙여라"고 했다. 그 한 마디가 홍건희를 살렸고, 오늘날 두산 필승계투조가 됐다.
다시 박세혁으로 돌아가자. 박세혁은 1회 최원준의 슬라이더가 삼성 좌타자들의 배트에 계속해서 걸리자 2회부터 김 감독과 상의 끝에 패스트볼 위주의 패턴으로 바꿨다. 포수로서의 본연에 충실하면서도 아무도 기대하지 않던 한 방까지 터트렸다. 물론 박세혁도 오승환을 무너뜨리기 전까지 뭔가 유의미한 과정과 계기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7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에 1승 남았다. 이게 두산 가을 DNA 실체다. 말로 설명이 안 된다.
[두산 선수들. 사진 = 대구 유진형 기자 zolong@mydaily.co.kr]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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