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마이데일리 = 후쿠오카(일본) 박승환 기자] "이제 졸업했다고요? 정말요?"
두산 베어스 김택연은 4일 일본 후쿠오카현의 후쿠오카 PayPay돔에서 열린 소프트뱅크 호크스 1군과 스페셜 매치에서 1⅓이닝 동안 투구수 15구, 무실점으로 퍼펙트 투구를 뽐냈다. 경기 결과는 두산의 2-5 패배였지만, 프로 유니폼을 입은 이후 처음으로 팬들 앞에 선 '특급유망주' 김택연의 성공은 승·패 이상의 값진 수확이었다.
김택연은 지난해 신인드래프트 1라운드 전체 2순위로 두산의 선택을 받았다. 김택연은 인천고등학교 시절부터 150km의 강속구를 뿌리며 스카우트들의 눈을 사로잡았는데, 그의 가치가 급상승한 것은 2023 WBSC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U-18)였다. 당시 김택연은 선발과 불펜을 오가며 6경기에 등판해 2승 1세이브 평균자책점 0.88로 엄청난 성적을 남겼다. 훌륭한 활약과 함께 주목을 받았던 것이 9일 동안 무려 247구를 던졌다는 점이었지만, 드래프트 순위가 급상승하는 순간인 것은 틀림이 없었다.
당시 '최대어'로 손꼽히던 장현석이 LA 다저스와 계약을 통해 미국 무대에 도전장을 내미는 것이 확정됐고, '좌완 최대어'로 불리던 황준서가 한화 이글스의 지명을 받을 가능성이 높은 가운데, 전체 2순위의 지명권을 보유하고 있던 두산행은 매우 유력했다. 때문에 당시 김택연에게는 '두택연'이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그리고 이변은 없었다. 두산은 김택연만을 위한 특별한 유니폼을 제작, 지명 순번이 되자 고민 없이 김택연의 이름을 호명했다. 그리고 황준서와 같은 계약금 3억 5000만원을 안겼다.
청소년 국가대표 시절 '혹사' 논란의 중심에 섰던 만큼 두산은 김택연을 지명한 뒤 '특별관리'에 나섰다. 일반적으로 '루키'가 프로의 선택을 받은 후에는 마무리 캠프 등을 통해 프로라는 수식어에 걸맞은 몸을 만드는 작업에 돌입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투수는 투구, 타자는 타격 연습도 함께 병행한다. 하지만 두산은 메디컬 테스트 결과 휴식이 필요하다는 소견에 따라 김택연에게 훈련의 임무를 주기보다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그리고 해가 바뀐 후부터 조금씩 컨디션을 끌어올렸다.
두산은 1라운드에서 지명권을 행사, 전체 1순위 황준서와 같은 금액을 안길 정도로 김택연에게 큰 기대를 품고 있었던 만큼 2024년 호주 스프링캠프 명단에 '루키'의 이름을 포함시켰다. 그리고 벌써부터 김택연은 자신이 지닌 가치를 맘껏 발휘해 나가고 있다. 김택연은 지난달 17일 호주에서 열린 자체 청백전에서 1이닝 동안 두 개의 삼진을 솎아내며 무실점 투구를 펼치더니, 24일에는 세 개의 삼진으로 소프트뱅크 호크스 2군 타선을 잠재웠다. 그리고 27일 세이부 라이온스 1군과 맞대결에서도 1이닝 1피안타 2탈삼진의 투구를 선보였다.
특히 김택연은 27일 세이부전에서는 수비 실책이 발생하는 등 1사 1, 3루 위기에 몰렸는데, 연달아 삼진 두 개를 솎아내며 압권의 투구를 기록했다. 이에 이승엽 감독은 "정말 김택연의 투구를 잘 봤다. 끝내기 상황이었는데, 2만명 이상의 관중 앞에서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정말 담대하게 던지더라. 어린 나이에 정말 많은 걸 갖고 있는 친구라고 느꼈다"며 "훈련과 경기를 하는 태도와 모습을 봤을 때 아직까지 흠 잡을 데가 없다. 18세의 나이에 저 정도라면, 씨가 다르다고 봐야 한다. 확실히 스타가 될 자질을 갖고 있다"고 극찬을 쏟아냈다.
두산 관계자에 따르면 김택연은 27일 경기가 끝난 뒤 세이부 라이온스 토요다 키요시 1군 투수 코치에게도 특급칭찬을 받았다. 토요다 코치는 지난 1995년 세이부 라이온스에서 데뷔해 요미우리 자이언츠, 히로시마 도요 카프에서 뛰는 등 현역 시절 558경기에서 66승 50패 81홀드 157세이브 평균자책점 2.99의 성적을 남긴 레전드. 2002-2003년 센트럴리그 세이브왕 타이틀을 손에 넣었다. 두산 관계자는 "토요다 코치가 고토 코치에게 라인을 통해 연락이 와 "마지막으로 나온 투수(김택연)가 좋더라. 홈플레이트 부근에서 치고 들어오는 힘이 좋다"고 엄지를 치켜세웠다.
김택연은 연습경기에서의 인상적인 활약을 바탕으로 3일 열린 소프트뱅크 호크스 1군과 스페셜 매치 명단에 포함됐다. 그리고 압권의 투구가 펼쳐졌다. 김택연은 1-2로 뒤진 4회말 2사 1, 2루의 위기에서 마운드에 올랐다. 김택연의 첫 맞대결 상대는 일본프로야구 통산 '218홈런 슬러거' 야마카와 호타카. 야마카와는 성폭행 혐의로 인해 이미지가 바닥에 추락했지만, 일본 국가대표로 수차례 국제대회 무대를 누볐고, 퍼시픽리그에서 세 차례 홈런왕에 오를 정도로 실력에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는 선수.
김택연은 야마카와를 상대로 포수 파울플라이를 유도하는데 성공, 위기 상황을 매조졌다. 이는 시작에 불과했다. 김택연은 5회에도 마운드에 섰고, 나카무라 아키라를 우익수 뜬공으로 잡아낸 뒤 이마미야 켄타를 3루수 땅볼, 이노우에 토모야는 삼진 처리하며, 무결점의 투구를 선보였다. 이날 김택연의 최고 구속은 개인 최고치인 152km. 일본 중계화면 상에서는 직구의 RPM(분당회전수)는 꾸준히 2500을 상회했다.
경기가 끝난 후 취재진과 만난 김택연은 등판 직후 맞붙은 타자가 '홈런왕' 출신임을 인지하지 못했었다고. 그는 "일단 위기 상황에 올라왔으니, 상대 타자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고 내 공을 던지는 것에 집중했던 것이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 그리고 마운드를 내려오니, 형들이 '잡은 타자가 홈런왕이었다'고 말을 해주시더라. 영광이었다. 홈런왕 타자를 상대로 중요한 순간을 막았다는 것 자체가 좋았다"고 활짝 웃었다.
반대로 야마카와도 김택연이 '루키'라는 점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야마카와는 경기 후 믹스트존 인터뷰에서 "초구 바깥쪽 직구는 볼의 스핀이 굉장히 좋았다. 효과가 있었다. 아주 좋은 투수"라며 일본 '닛칸 스포츠' 기자의 '고졸 신인'이라는 말에 눈이 휘둥그레지며 "이제 졸업했다고요? 정말요?"라고 반문했다.
이 '닛칸 스포츠'의 베테랑 기자 또한 당초 '마이데일리'와 대화 중 '이제 고등학교를 졸업했다'는 말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계속해서 그는 "정말 대단한 볼을 던지더라. 벌써 152km의 공을 뿌린다면, 앞으로 더 빨라질 것 같다. 고졸 루키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다. 이 실력이라면 지금 당장 1군에서도 통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김택연이 올해 개막전 두산의 엔트리에 들 가능성은 얼마나 되나?"라고 물어보기도 했다.
이는 배터리 호흡을 맞추지 않은 양의지도 마찬가지였다. 양의지는 "(김택연은) 모든 사람들이 좋다고 생각할 것 같다. 구단에서 좋은 선수를 뽑아줬다. 잘 성장한다면 큰 무대에도 갈 수가 있는 선수인 것 같다. 택연이는 신인 같지 않다. 자신의 공을 (오)승환이 형처럼 던진다. 그냥 과감하게 (승부를) 들어가는데, 최근 본 신인 중에 최고의 투수가 아닌가 싶다"고 혀를 내둘렀다.
아직까지 시범경기도 시작하지 않은 단계. 시즌을 치르다 보면 분명 고전하는 시기가 찾아오기 마련이고, 현재의 좋은 모습이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모두가 감탄을 쏟아낼 정도라면, 김택연이 올해 1군 무대에서 실패를 겪을 확률은 다른 유망주들에 비해 낮은 것은 분명해 보인다.
후쿠오카(일본) = 박승환 기자 absolute@mydaily.co.kr
- ⓒ마이데일리(www.mydaily.co.kr).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댓글
[ 300자 이내 / 현재: 0자 ]
현재 총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