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너무나 정치적인 시골살이 |저자: 양미 |동녘
책 만드는 사람들은 출판업계를 ‘홍대 바닥’이라고도 말합니다. 이곳에 많은 출판사가 모여 있기 때문입니다. 문화 예술의 거리로 불리우던 홍대의 옛 정취도 지금은 많이 사라졌지만, 여전히 의미 있는 책의 가치를 전하고 싶습니다. 홍대 바닥에서 활동 중인 다섯 명의 출판인이 돌아가며 매주 한 권씩 책을 소개합니다.
[북에디터 이미연] “제가 계속 서울에 있었으면 운전은 하지 않았을 거예요.”
타의적 장롱면허 탈출이었다. 서울에 있을 때는 내 차가 필요하지 않았다. 내 차보다 훨씬 편한 대중교통이 있었다. 배차 간격 촘촘하고 시간도 잘 지키는 존재가. 수원에서 서울로 출퇴근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서울로 오가는 시간이 오래 걸리긴 해도 노선은 넉넉했다. 하지만 서울을 벗어나자 얼마 버티지 못하고 운전대를 잡았다.
경기권역 도시에서도 이러는데 지방은 말해 무엇하나. 우리는 흔히 ‘시골에 살려면 자차가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물론 대다수는 직접 겪어보진 않았다. 그래도 시골에서 교통이 불편하다는 점을 잘 안다. 왜 시골에서 차 없이는 살 수 없을까? 차가 없거나 운전하지 못해도 편히 이동할 수 있어야 하지 않나?
<너무나 정치적인 시골살이>에 담긴 시골 교통은 더 열악했다. 저자 양미는 암호 같은 버스 시간표 때문에 버스를 제때 타지 못한 일, 긴 배차 간격으로 오늘 내로 집에 갈 수 있을지 고민한 일, 정류소 안내 방송이 없어 내려야 할 곳을 놓친 일 등 시골 버스를 타고 다니며 겪은 경험을 들려준다.
더 나아가 시골 버스가 그렇게 운영될 수밖에 없는 열악한 환경을 함께 이야기한다. 시골에서는 버스 운전 노동자로 누려야 할 노동인권, 즉 식사, 휴식, 화장실 이용 등 가장 기본적인 욕구 해결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제대로 차량 정비와 수리를 받지 못해 기사와 승객의 안전권도 위협받는다.
그렇다고 이책이 시골의 이동권만 이야기하고 있진 않다. 이동권은 6부 중 2부에 다뤘다.
저자는 무주와 진안을 돌아다니며 취재한 시골살이를 책에 담았다. TV에 나오는 치유와 낭만이 아니라 지극히 정치적인 시골의 민낯을 이야기한다. 운전자 위주의 도로 등으로 사라진 보행권도, 우리가 어디에 살든 마땅히 누려야 할 주거권, 건강권, 경제권 등도 이야기한다.
보여주기식 행정, 성과를 위한 정책도 다룬다. 구조가 만든 문제를 개인이 책임지도록 하는 대출 이자 지원 정책 등을 꼬집는다. 집수리나 자차 구입 등으로 대출을 받을 수밖에 없는 환경은 개선하지 않고 이자만 지원해 주는 생색내기 정책이다. 아이를 낳을 의료시설도 없으면서 지역 내 출산율을 자랑한 행태도 등장한다. 이쯤 되니 고개가 가로저어질 지경이다.
소수의견은 논의조차 되지 못하고 이미 만들어진 구조에 순응하는 시골 민주주의의 실종을 들여다본다. ‘나에게 시골살이란 치열한 저항’이라는 저자는 말한다.
“정치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 사람들의 삶이 괴로워진다. 배제되는 존재가 없는 촘촘한 민주주의, 반성하는 정치 시스템이 필요하다. 인구 소멸, 이주민, 교육,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농어촌, 농협과 농민회 등 다루지 못한 이야기가 많다. 앞으로도 계속 정치적인 시골살이가 이야기되길 바란다.”
농어촌을 배경으로 한 예능을 즐겨보며 시골살이를 그려본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나의 무지와 무관심을 반성했다. 낭만을 꿈꾸느라 제대로 보지 못한 시골살이가 이제야 제대로 눈에 들어왔다.
<너무나 정치적인 시골살이>에는 불편한 이야기가 가득하다. 읽다 보면 머리가 지끈거리고 한숨이 나온다. “내 로망 돌려줘.” 소리가 절로 나온다.
하지만 우리 삶은 로망이 아니라 현실에 있다. 불편한 이야기를 자꾸 꺼내고 문제를 고쳐야 한다. 도시에 살든 시골에 살든 소외되지 않고, 누려야 할 권리를 바로 누릴 날이 올까. 그날을 조금이나마 앞당기기 위해 정치적인 시골살이를 관심 있게 지켜보자.
북에디터 이미연 | 출판업계를 뜰 거라고 해 놓고 책방까지 열었다. 수원에 있지만 홍대로 자주 소환된다. 읽고 쓰는 일을 사랑한다.
북에디터 이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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