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마이데일리 = 이예주 기자] 배우 이세희가 웃음을 터뜨렸다. "너무 부끄럽다"며 수차례 주저하더니, 속내를 털어놓자마자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어떤 댓글을 봤는데, '큐티 섹시'라는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저한테 섹시는 없었는데 어른미가 조금 생겼나 싶어요. (연기) 스펙트럼이 넓어진 것 같아 좋더라고요!"
이세희의 말이 맞았다. KBS 2TV '신사와 아가씨' 속 당차고 야무졌던 박단단이 '정숙한 세일즈'에서는 과감하고 능글맞은 모습으로 돌아왔다. 여기에 고난 한 스푼과 눈물 한 방울의 서사를 더하자 자연스레 섹시함도 따라왔다. 그렇게 어느덧 완벽한 이주리로 변신에 성공한 이세희다. 18일 마이데일리는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한 카페에서 이세희와 함께 최근 종영한 JTBC '정숙한 세일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정숙한 세일즈'는 1992년 한 시골마을에서 성인용품 방문 판매에 뛰어든 '방판 시스터즈' 4인방의 자립, 성장, 우정을 그린 드라마다. 극중 이세희는 혼자 아이를 키우며 미장원을 운영하는 '금제 잇걸' 이주리 역으로 시청자를 만났다.
"주리가 피하고 싶은 건 뭘지, 좋아하는 건 어떤 것일지 생각하며 캐릭터를 잡았어요. 주리가 이미 풍파를 겪은 사람이잖아요? 그래서 긍정적이고 밝아서 웃는다기 보단, 문제 해결을 웃으면서 하는 사람이라고 봤어요. '내가 차라리 웃으면서 할 말은 하자' 이런 느낌요. 작가님께서 의도한 대로 이 어린 친구가 (역경을) 겪고 나서 씩씩하게 살아가는 것들을 보고 '잘 살고 있다, 그런 일이 있어도 괜찮아, 이겨낼 수 있어' 이런 것들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또 워낙 희망찬 드라마니 그런 텐션을 처음부터 끝까지 유지하려 노력했고요."
연기하며 캐릭터를 닮아간 걸까, '레트로', '미혼모'와 같은 설정에서 거리감을 느낄 법도 한데 오히려 시원시원하게 이를 해결해나간 이세희다.
"미혼모라는 설정이 부담스럽기도 했어요. 어떤 어려움이 있을지 잘 모르니까요. 그런데 우리 다 소중한 존재가 하나쯤은 있잖아요? 제겐 제 반려견이었어요. 물론 그 깊이감은 다를 테지만, 누구나 나보다 소중한 것이 하나쯤은 있겠다는 생각을 했죠. 또 제가 미용실에서 일을 하는 사람이니 아이를 키우면서 미용실 일을 하시는 분을 찾았어요. 직접 가서 일하는 이야기도 듣고 시대 분위기를 읽었죠."
'금제 김완선'이라는 수식이 붙은 만큼, 스타일링에도 이세희만의 섬세한 취향이 녹아들었다.
"의상이나 헤어스타일 모두 한번도 해보지 않았던 거라 기대가 되더라고요. 실제로 스타일링을 하고 나면 인물에 가까워진 느낌이 들어서 자신감이 찼어요. 91년도와 92년도의 광고 모음 영상을 보고 저와 어울리는 톤을 찾기도 했고, 김완선 선배님의 노래로 플레이리스트도 만들어서 계속 들었어요. 그 중에 제일 좋았던 곡이 '기분 좋은 날'이었어요. 그래서 첫 등장 장면을 연기할 때 그걸 흥얼거리며 연기했는데, 그대로 ('기분 좋은 날'을) 넣어주셨더라고요. 너무 감사했죠."
신이 난 얼굴로 '이주리'를 이야기하고 있었으니, '방판 시스터즈' 김성령, 김소연, 김선영의 이야기도 즐겁게 하지 않을까 예상했다. 그런데 이세희가 돌연 눈시울을 붉혔다.
"제가 사람 복이 많은 것 같아요. 너무 운이 좋아요. 성령 언니는 제가 어려우면 너무 어려울 수 있는 사람인데, 언니는 모든 스태프들에게 먼저 항상 열린 마음으로 다가갔어요. 우리를 배려하신다고 말도 더 편하게 하시고 농담도 하시고, 헛점도 일부러 보여주시고요. 소연 언니는 워낙 유명하다지만 저는 살면서 그런 사람을 처음 만났어요. 앞으로도 못 만날 것 같아요. 언니를 보면서 '저 사람은 정말 모든 스태프들에게 어떻게 저렇게 배려할 수 있지? 어떻게 매 순간 신경을 써주지?'라는 생각을 했어요. 매 순간 '감사합니다', '미안합니다'라고 하시는데 경이로울 정도였죠. 보면서 정말 대단하다고 많이 느꼈어요. 그리고 선영언니는 정말 매력있는 사람이에요. 언니는 생색도 티도 내지 않고 뒤에서 아우르고 챙겨주는 사람이에요. 언니 덕분에 빈 공간을 채우는 법을 알게 됐죠. 대사 사이에 공백이 있을 때면 정확한 순간에 딱 필요한 말을 해주시니 장면이 끊기지 않고 살아있더라고요. 정말 여러모로 너무 감사한 현장이었어요. 마지막 방송이 스케줄이 맞지 않아서 11화를 다같이 모여서 봤는데, (다들) 울면서 '너무 잘했다', 힘든 순간들도 공유하면서 잘했다, 애썼다 그런 말들을 나눴어요. 그때를 추억하니 감동도 오는데, 이렇게 결과까지 좋게 마무리돼서 감사할 따름이에요."
눈물을 흘리면서도 특유의 밝은 미소를 잃지 않던 이세희. 당차면서도 솔직하고 사랑스러운 그를 보며 '박단단', '신아라', '이주리'가 이세희여야만 했던 이유를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사극', '빌런'에 대한 욕심을 드러낸 이세희가 앞으로 시청자들에게 받아낼 수식들에게도 궁금증이 생겼다.
"제 강점은 남과 비교하지 않는다는 점이에요. 저는 (배우를) 되게 늦게 시작했고, 그러다 보니 저만의 속도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인생은 정말 너무 길잖아요? 아직 갈 길이 너무 멀어서 좋아요. 제가 아직까지는 모든 걸 잘 소화하는 배우는 아니라고 생각하는데요, 그런 만큼 제 속도대로 묵묵하게 가고 싶고, 그것 만큼은 자신있어요. 전 반쯤 부족한 사람이라 담을 것이 너무 많거든요, 천천히 묵묵하게 저만의 속도로 걸어갈거에요!"
이예주 기자 yejulee@mydaily.co.kr
- ⓒ마이데일리(www.mydaily.co.kr).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댓글
[ 300자 이내 / 현재: 0자 ]
현재 총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