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교사 김혜인] 자동차 조수석 뒷자리 문에서 “우지끈!” 큰 소리가 났다. 지하 주차장에서 기둥에 차를 긁어 버린 것이다. 소리만 들어도 차 문이 꽤 찌그러졌으리라 짐작이 갔다.
깜짝 놀란 아이가 “으앙!”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괜찮아, 괜찮아”라고 말해봤지만 자기 울음소리에 내 말이 들릴 것 같지 않았다. 주차장이 너무 어두운데다 아이마저 큰소리로 울고 있으니 시각과 청각이 마비된 듯 정신을 차리기가 어려웠다.
발달센터 건물 지하 주차장이었다. 이곳은 꽤 좁고 늘 자리가 부족하다. 나는 기둥 바로 옆자리에 주차했는데, 다른 차를 배려한답시고 차를 기둥 쪽으로 바짝 대어 놓았다. 주차장은 만차 상태였다. 아이 치료를 마치고 차를 빼고 있는데, 새로 차량 두 대가 연달아 들어왔다. 일단 내가 후진해서 다른 차가 나갈 공간을 만들려고 하다가 낸 사고다.
잠시 후 겨우 주차장에서 빠져나와 지상에 오르니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아이도 어느새 울음을 멈췄다.
실은 전에도 조수석 뒷자리 문을 벽 코너에 긁어놓고 수리하지 못한 채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또 같은 곳을 긁었다. 어차피 이렇게 될 걸, 일찍 수리하지 않고 있기를 잘했네. 하하하! 하고 웃을 줄 알았다.
하지만 머릿속 생각과 달리 흐으윽 흐느끼고 말았다. 이전에 다친 곳을 치료하지 못한 채 다시 다친 것만 같은 심정이었다.
긁힌 곳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차에서 내려 살펴봤다. 한때 말쑥했던 차 외관은 여기저기 긁히고 눈비를 맞으며 먼지에 얼룩졌다. 바닥엔 아이가 흘린 과자부스러기에 쓰레기가 가득 찬 봉지가 굴러다녔고, 트렁크는 아이 살림으로 뒤죽박죽이었다.
이 모든 게 꼭 내 모습 같이 느껴졌다. 로션조차 바르지 못한 푸석한 얼굴과 헝클어진 머리에 후줄근한 옷차림. 양쪽 팔 여기저기에 붙인 파스가 보였다. 내 몸에 누적되는 피로와 통증을 외면하듯, 닳고 해진 차 상태를 외면해 왔다.
덜컥 걱정이 몰려왔다. 이 차, 겉으로 보이지 않는 내부 곳곳은 과연 괜찮을까.
그간 미루고 미루던 자동차 정비를 맡기러 갔다. “무슨 문제가 있어서 왔냐”는 질문에 하나씩 설명하지 못하고 말을 더듬다가 그저 “정비할 때가 많이 지난 것 같아서 왔다”고 답했다. 시간과 돈이 많이 들리라 짐작하며.
수리 견적을 내기 위해 인근 카페에서 기다렸다. 시간이 꽤 오래 지났다. 커피를 든 채 멍하니 있는 내게 걸어오는 정비소 직원 발걸음은 왠지 다급한 듯했다. 곧 뜻밖에 말을 들려줬다. “정비 결과 차 성능은 아주 양호하다”며 “차 외관은 다음에 수리하라”고 조언했다.
그의 발걸음은 단지 바쁘기 때문이었나 보다. 정비는 엔진오일과 와이퍼 교체만으로 순식간에 끝났다. 세차까지 마치니 비록 외형은 긁히고 찌그러진 구석이 있지만 훨씬 나아 보였다.
가벼운 마음이 돼 집에 돌아오니 올해 내가 국가건강검진 대상자라는 안내 문자가 들어온 게 보였다. 2년 전에도 못 했는데 올해도 12월이 되도록 계속 미뤄왔다. 가까운 병원에 전화를 걸었다. 다행히 예약이 가능했다.
나는 따뜻한 물로 목욕하고는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밝은 햇살이 들어오는 창가에 앉았다. 모든 게 훨씬 나았다.
|김혜인. 중견 교사이자 초보 엄마. 느린 아이와 느긋하게 살기로 했습니다.
교사 김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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