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종합
“벨리칙이 노스캐롤라이나 대학(채플힐)으로...터무니없는 가설이 현실이 되었다.”
프로 미식축구(NFL) 사상 최고의 명장 빌 벨리칙이 농구대학으로 유명한 노스캐롤라이나의 감독으로 취임한 것. 미국 스포츠계가 깜짝 놀랐다.
노스캐롤라이나 대는 농구의 마이클 조던과 여자축구 미아 햄의 모교로도 유명하다. 조던은 NBA 우승 6번 ·최우수 선수 6번, 올림픽 금메달 2개 등 업적은 다 헤아리기 어렵다. 미국 스포츠에서는 황제, 여제가 수두룩한 한국과는 달리 좀처럼 과장되거나 시대와 동떨어진 수식어를 선수들에게 붙이지 않는다. 그러나 조던은 극히 드물게 ‘황제’라 불린다.
미아 햄은 올림픽 금메달 2개, FIFA 올해의 선수상 2번 등으로 ‘여자 펠레’. 세계 여자축구 사상 최고의 선수로 꼽힌다.
노스캐롤라이나 대는 두 사람 외에 숱한 명선수를 배출, 미국에서 운동부가 가장 강한 대학 중 하나다. 전미대학선수권대회에서 남자농구 6번, 여자축구 9년 연속을 포함 22번, 여자 필드하키 11번. 남자 라크로스 5번 등 모두 51번 우승했다.
그러나 미국 스포츠에서 가장 인기 있는 미식축구는 그저 그런 학교. 1980년 지역 리그 우승 이후 이렇다 할 성적을 낸 적이 없다. 명성에 비해 너무나 초라하다.
미식축구는 대학 전체 운동부 유지를 위해 필요한 절대 존재. 많은 돈을 벌어 다른 운동부를 지원한다. 그만큼 인기가 높다. 미식축구와 농구는 미국대학스포츠위원회(NCAA) 모든 수입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나머지 스포츠는 이 두 종목에서 발생한 수익으로 운영된다. 남자농구도 상당한 기여를 하나 미식축구에 비교가 되지 않는다.
10만 이상 관중을 수용하는 미식축구 전용 구장을 가진 대학이 미시간 대 10만7,600 명 등 6개. 1년 평균 관중이 10만 넘는 대학만도 7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상암구장은 6만6000 명 수용 가능. 그나마 1년에 만원은 축구 국가대표 시합 등 2~4차례다. 미국의 대학 미식축구 열기가 얼마나 대단한지 짐작할 수 있다.
오하이오 주립대의 경우 2023년 전체 운동부 수익 2억8000만 달러. 그 가운데 미식축구 수익 비율이 45%, 1억2,700만 달러였다. 이 중 6,400만 달러는 입장권 수익. 그만큼 대학 스포츠에 많은 관중이 몰리는 것이다.
대학이 이 정도니 프로는 천문학 숫자의 수익을 올린다. NFL은 세계 주요 스포츠 리그 중 가장 많은 돈을 번다. 2023~2024 시즌 수익은 약 200억 달러. MLB의 116억 달러, NBA 113억 달러, EPL 65억 달러(추산)보다 훨씬 높은 인기를 누린다.
노스캐롤라이나 대 미식축구 수입은 5700만 달러. 미식축구 강자들의 절반 수입에 지나지 않는다. 그나마 농구가 워낙 강하기 때문에 3200만 달러를 벌어 전체 운동부 운영에 큰 지원을 한다. 그러나 미식축구를 제대로 키우지 않으면 앞으로 전체 운동부가 살아남기 쉽지 않다고 판단했다.
노스캐롤라이나 대는 미식축구를 강자로 만들기 위해 그야말로 통 큰 투자를 했다. 벨리칙을 데려오기 위해 그의 연봉 1000만 달러와 코치 연봉 급여 1000만 달러, 지원 직원 급여 530만 달러 등 한 해 3000만 달러 가까운 돈을 쓰기로 한 것이다.
벨리칙은 72세. 1975년 볼티모어 콜츠에서 코치로 NFL 경력을 시작했다. 2000년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의 감독이 되어 24시즌 동안 6번의 슈퍼볼 우승을 이끌었다. NFL 올해의 감독상을 3번 받았다. 수비 전략 등 천재로 인정받고 있다. 333승 178패. 역사상 3위다.
“NFL 역사상 가장 성공한 괴팍스런 천재’로 널리 알려진 벨리칙이 대학 선수들과 함께 뛰고 10대들을 충원한다는 것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전혀 뜻밖의 일. 노스캐롤라이나 대는 남자농구에서 명장 딘 스미스 감독이 36년 동안 2번의 전국 우승을 거두었다. 하지만 미식축구는 전통이 약하다. 벨리칙과 함께 슈퍼볼 6회 우승을 이끈 쿼터백이자 미래의 명예의 전당 입성자 톰 브래디조차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그러나 미식축구 관계자들은 “굉장한 투자”라고 평가한다. 벨리칙이 노스캐롤라이나 대에서 모든 대학들의 본보기가 될 새로운 모범을 세울 것으로 전망한다.
벨리칙은 프로에서 자신과 오랫동안 함께 일했던 마이클 롬바르디를 미식축구단 단장으로 데려왔다. 두 사람은 수십 년 동안 NFL에서 가장 혁신성이 높으며 잘 짜인 운영 조직을 만들어 선수 평가, 계약 협상, 자원 최적화 등의 분야에서 엄청난 경험을 쌓아왔다. 1990년대 클리블랜드에서 두 사람이 개발한 선수 가치 평가 시스템은 여전히 NFL에서 사용되고 있다. 대학에서는 아직도 이를 배우려고 노력 중이다.
지난 20년 동안 모든 NFL 구단들이 벨리칙 아래서 일했던 코치나 운영 직원들을 데려가기 위해 경쟁했다. 이제는 다른 대학들도 벨리칙이 만든 NFL 형태의 조직을 만들기 위해 나섰다. 미식축구는 물론 대학의 모든 스포츠 관계자들이 주목하는 부분이다.
취임 기자회견에서, 간결하고 말을 아끼기로 유명한 벨리칙은 “훌륭한 사람, 훌륭한 선수들을 키우겠다”며 노스캐롤라이나 대 미식축구를 프로처럼 만들겠다고 했다. 그것은 선수들 실력을 현재 프로선수처럼 키우겠다는 것이 아니다. 선수 훈련, 선수 개발, 전술 개발, 운영 방식 등에서 세계 스포츠에서 가장 앞서 있는 NFL 체계를 따라가겠다는 뜻. 벨리칙은 대학 미식축구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명확히 알게 해 주었다.
2025년, 대학은 물론 프로 미식축구에서도 가장 흥미로운 이야기는 벨리칙의 노스캐롤라이나 대 감독 첫 시즌이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비록 벨리칙이 대학 경험은 없지만 새로운 시대에 가장 적합한 감독으로 평가받는 낙관론의 근거는 간단하다. “누가 뭐라든 가장 준비된, 이미 검증이 끝난 감독.”
갈수록 사그라지는 한국의 대학 스포츠. 축구·야구·농구·배구 모두 관중도 중계도 거의 없다. 대학 운동부가 있는 지를 아는 사람도 많지 않다. 한국의 프로스포츠는 거의 전부 적자지만 그런 프로와도 비교가 안 된다.
이런 한국 대학 스포츠를 미국의 대학 스포츠와 비교하는 것은 민망하고 적절치 않은 일인지 모른다. 그러나 반성과 분발의 계기는 될 것이다. 미국은 대학조차 자체 수익을 올려 모든 운동부가 함께 살기 위해 깜짝 놀랄 노력을 하고 있음을 한국의 프로나 대학 스포츠 관계자들은 모두 알아야 한다.
손태규 객원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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