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마이데일리 = 김지우 기자] 봉준호 감독이 '기생충' 이후 약 5년 만에 신작을 내놓는 소회를 밝혔다.
마이데일리는 19일 서울 여의도의 한 호텔에서 영화 '미키 17' 개봉을 앞둔 봉준호 감독을 만나 작품에 관한 얘기를 나눴다.
'미키 17'은 위험한 일에 투입되는 소모품(익스펜더블)으로, 죽으면 다시 프린트되는 '미키'가 17번째 죽음의 위기를 겪던 중, 그가 죽은 줄 알고 '미키 18'이 프린트되면서 벌어지는 예측불허의 이야기를 그리는 영화다. 할리우드 배우 로버트 패틴슨, 나오미 애키, 스티븐 연, 토니 콜렛, 마크 러팔로 등이 출연한다.
이날 봉 감독은 "'기생충' 이후 개봉까지 이상하게 5년이 걸렸다. 사실 오스카 레이스가 끝나고 2020년 2월 딱 6~7주 쉬었다. 이후 바로 일을 시작해서 꾸준히 해왔다"며 "20년 여름 원작 소설 '미키 7'을 받았다. '옥자'를 함께했던 제작사에서 보내준 걸 보고 매혹됐다. 같은 해 가을 번역본을 받아 읽기 시작했고, 21년 시나리오를 썼다. 21년 9월에 원고를 완성했고 11월 로버트 패틴슨을 처음 만났다. 모든 게 일사천리였다. 22년 가을 촬영을 시작했다. 미국 친구들도 이렇게 스무스하게 촬영이 진행된 게 처음이라고 하더라"고 초기 단계를 설명했다.
이어 "2023년 후반작업을 길게 했다. 24년쯤 개봉했으면 딱 맞는 타이밍인데 미국 배우조합 파업과 배급 일정 등이 맞물리면서 개봉을 못 했다. 그 시기엔 촬영 후시 녹음도, 홍보도 못 한다. 여파가 6~7개월 갔다. 그래서 지금 개봉하게 됐다. '기생충' 이후 만 5년 만이다. 이렇게 말하면 내가 놀러 다닌 것 같지만 휴가도 없었다. (웃음) 애니메이션 영화도 꾸준히 준비하며 과한 노동을 해왔다. 늦은 게 아니라는 변명을 하고 싶었다"고 전했다.
'기생충' 이후 내놓는 차기작에 부담감은 없는지 묻자 "상에 대해 더 바랄 게 없다. 사실 베를린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됐는데, 다른 작품이 하나라도 더 올라갈 수 있게 우린 비경쟁으로 가자고 결정했다. 모두가 편하게 즐길 수 있는 비경쟁 갈라 스크리닝을 하고 싶다고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전 '기생충' 관련 사건들이 벌어졌을 때 이미 50대였다. 흥분되고 영광스러운 일이었지만, 한 발짝 떨어져 사건을 지켜보는 두 개의 자아가 있었다. 한 명은 상도 받고 할 일을 다 했지만, 한 발 떨어진 한 명은 '난리 났네, 난리 났어. 왜들 저래' 하면서 지켜봤다. 비교적 침착하게 그 시기를 지나왔다. 신작에 대한 부담감도 없다. 계속 여러 작품을 준비하고 있었고, 지금 만드는 애니메이션도 '기생충' 후반작업을 하던 19년도에 준비를 시작했다. 계속 일을 하고 있을 뿐이다"고 답했다.
'미키 17'은 우주로 세계관을 확장한 SF 영화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기생충' 등 그의 전작 속 지질한 인물 군상을 그대로 가져간다. 봉 감독은 "'듄' 같은 대서사적 SF도 물론 훌륭하고 아름답다. 하지만 전 '듄'을 찍더라도 인물들의 양말에 구멍이 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런 캐릭터가 아니면 체질적으로 못 견디는 것 같다"면서 "우주, 먼 미래에서 일어나는 일일지라도 인간들의 땀 냄새나 지지고 볶는 삶들은 결국 똑같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다. '미키 17'에서도 보면 '행성 간 송금 수수료가 너무 비싸' 이런 얘기를 하고 있지 않나. 러닝타임이 조금만 더 길었다면 송금 수수료를 비교하는 장면도 넣었을 것 같다. '○○은행은 0.4% 우대' 이런 얘기까지 갈 의향이 있다. 제 취향이 그렇다"며 웃었다.
다만 "SF 영화로서 최소한의 본분은 지키고 싶었다. 광활한 우주와 크리퍼들의 스펙타클함을 연출할 때는 정말 흥미로웠다"며 "미국의 한 지인에게 처음 시나리오를 보여줬을 때 '인간은 미래, 첨단의 시대, 우주에 가서도 이렇게 변함없이 찌질하고 어리석구나. 이게 솔직한 인간의 모습 아닐까'라는 말을 들었다. 이 리액션이 반가웠다. 시나리오를 각색하며 집중했던 부분이다. 그 중심에 미키(로버트 패틴슨)가 있다. 슈퍼히어로는커녕 평범에도 못 미칠 듯한 그런 친구 말이다"라고 덧붙였다.
김지우 기자 zwm@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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