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유물멍: 가만히 바라볼수록 좋은 것들 |저자: 국립중앙박물관 편집부 |세종서적
책 만드는 사람들은 출판업계를 ‘홍대 바닥’이라고도 말합니다. 이곳에 많은 출판사가 모여 있기 때문입니다. 문화 예술의 거리로 불리우던 홍대의 옛 정취도 지금은 많이 사라졌지만, 여전히 의미 있는 책의 가치를 전하고 싶습니다. 홍대 바닥에서 활동 중인 여섯 명의 출판인이 돌아가며 매주 한 권씩 책을 소개합니다.
[북에디터 이미연] ‘분명히 외웠는데, 외웠는데….’
초등학교 사회 시험 때였다. 보기에서 설명하는 유물이 무엇인지 적는 문제를 앞에 두고 머리를 싸맸다. 교과서에서 본 사진이 떠올랐지만 그 아래 적힌 이름은 도통 떠오르지 않았다. 결국 그 문제를 틀렸다. 몇 학년 때였는지, 보기에 적힌 설명이 무엇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답이 ‘백제 금동대향로’였다는 것만 기억에 남았다.
시간이 훌쩍 흘러 성인이 된 뒤 비로소 국립부여박물관에서 사진 속의 금동대향로를 마주했다. 나도 모르게 “와!” 하는 감탄사가 나왔다. 내가 생각보다 훨씬 큰 모습에 이 이름이 ‘대’향로일 수밖에 없음을 알았다. 시험 전에 이를 직접 봤다면 이름을 굳이 외우려 하지 않아도 잊지 못했겠다.
백제 금동대향로 앞에 서서, 크고 화려하며 위엄 있는 모습에 한참을 넋이 나가 있었다. 만약 내가 6~7세기 백제인이고, 이 향로에서 향이 피어오르는 광경을 직접 목격했다면 어땠을까? 흥미로운 상상도 해 보면서.
그때 처음 이른바 ‘유물멍’에 빠졌다. 이 유물이 어떤 가치가 있고, 어떻게 발견되었고 하는 교과서 속 이야기는 어느덧 사라지고, 잡다한 생각 없이 멍하니 있을 뿐이었다. 그저 가만히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책 <유물멍: 가만히 바라볼수록 좋은 것들>은 이런 이야기를 담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운영하는 큐레이션 서비스 ‘아침 행복이 똑똑’ 구독자가 보낸 다양한 사연을 엮었다. 내가 왜 이 유물을 좋아하는지, 이 유물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는지 말한다. 박물관을 사랑하는 이들의 최애 유물 이야기인 셈.
유물만큼이나 다채로운 이야기를 보면 ‘같은 것을 보아도 만 명에게는 만 가지 이야기가 있다’(7쪽)는 설명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이를테면, 어부바를 한 듯한 모양을 한 토우를 보고 걱정인형을 떠올린 이야기(152쪽)도, 할아버지 얼굴 모양을 한 토우를 보고 그리운 할아버지, 할머니를 떠올린 이야기(160쪽)도 있다.
특히 관음보살상을 보며 ‘방문을 열었을 때 엄마가 이 자세로 앉아 계시면 재빨리 그 앞에 뭐가 놓여 있는지를 확인하곤 했다’(82쪽)는 이야기에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생각이 이리저리 일어날 때는 유물 앞에 가만히 있어 보세요. 앙증맞은 형태나 재치 있는 표현이 와닿아서든 어떤 기억을 불러와서든, 내 마음을 끄는 유물을 바라보다 보면 잡다하게 일어나는 생각이 잦아듭니다. 모닥불이나 숲, 바다를 바라보는 것처럼 고요해집니다.’ (6쪽, 프롤로그)
이 말대로, 오늘 내게 좋을 것을 찾는 마음으로 조금 천천히 책장을 넘겨 보길 권한다. 한장 한장 넘기다 보면 유물에 빠지고 이야기에 빠져 멍~한 순간이 찾아온다. 불멍, 물멍에 이어, 이제 유물멍으로 잠시 쉬어가길 바라며.
북에디터 이미연 | 출판업계를 뜰 거라고 해 놓고 책방까지 열었다. 수원에 있지만 홍대로 자주 소환된다. 읽고 쓰는 일을 사랑한다.
이지혜 기자 imari@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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